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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ㆍ읽은 이유: 1.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2. 표지가 특이해서
ㆍ키워드(소설인 경우, 책을 읽고 사흘 후까지 내 머릿속에 남은 단어): 헨리 치나스키, 헨리, 행크, 치나스키, 임시 집배원, 보결 집배원, 존 스톤, 순로, 배정, 사무원, 순로, 숙취, 엉덩이, 조이스, 제라늄, 피카소, 파리 떼, 새, 경고장, 집세, 경마, 경마장, 페이, 딸, 휴식 시간, 야간 근무, 어지럼증, 부자 동네, 착한 아저씨 G.G.
ㆍ저자: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년 독일 안더나흐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살았다. ...그는 평생 60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으며, 마지막 장편소설 『펄프』(1994)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94년 3월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한다.)
ㆍ원서: 『POST OFFICE』1971
ㆍ옮긴이: 박현주(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옮긴 책으로 제드 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과 『죽음의 본능』,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다수가 있다.)
- 리뷰
강렬하다. 가식이 없다. 돈도 없다. 먹고 사는데 필요한 돈은 노동으로 번다.
경마장에 간다. 경마장에선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당연하다.
우체국에 간다. 3년 후, 정규 집배원이 된다. 3년 동안 매일 모자를 벗어두었던 곳(분류함)에 모자를 두지 말라는 공고문이 붙는다. 치나스키는 당연히 3년 동안 해왔던 대로 분류함에 모자를 벗어둔다. 경고장을 받는다. 깜빡한다. 또 경고장을 받는다.
다음날 아침 스톤(현장 주임)이 아예 미리 만들어가지고 온 경고장을 들고 서서 치나스키가 모자를 분류함에 두는지 어쩌는지 지켜 보고 서 있다. 모자를 벗어 분류함 위에 둔다. 스톤이 경고장을 들고 뛰어온다. 읽지 않는다. 휴지통에 던져 버린다. 모자를 그대로 둔 채 일을 한다. 스톤이 타자기로 다시 경고장을 작성한다. 두 번째 경고장도 휴지통에 던져 버린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
다음 날 치나스키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정오까지 잔 다음에 곧장 연방 우정 사업 본부로 간다. 사직한다. 결국 치나스키는 3년 동안 보결 집배원으로 일한 뒤에 정규 집배원이 되는데 얼마 안 가 모자를 계속 분류함 위에 얹어 놓지 못하게 하는 우체국에 사직서를 낸다. 치나스키로서는 당연하다.
그런데 그가 사직한 건 우편 분류함 위에 모자를 벗어두지 말라는 새로운 규정 때문인가, 아니면 집배원들이 새로운 규정을 지키도록 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 스톤 때문인가. 반복 업무, 인간성 상실 업무를 벗어던지기로 한 건, 그래, 치나스키로서는 당연하다.
2년 후 다시 우체국에 간다. 이번에는 사무원이다. 1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처음 150명인지 2백 명인지 중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남는다.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헨리 치나스키다. 일자리가 필요한 치나스키가 다시 우체국 사무원으로 돌아간 건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우리의 헨리 치나스키가 우체국 사무원으로 11년 넘게, 12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단 말이지. 당연한가? 당연하냔 말이다. 아니지. 당연하지 않다. 안 당연하다고!
『우체국』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바로 이거다. 나로서는.. 헨리 치나스키가 우체국 사무원으로 11년 넘게, 12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 그는 오른팔만 움직이는 우체국 사무원 일을 12년 가까이 했다. 덕분에 84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는 101킬로그램이 되었고, 딸이 태어났고, 어지럼증이 생겼고, 계속 술을 마셨다. 그리고 결국 다시 사직한다. 사직 이유는, ‘희망 직업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 어째서 사직하시는지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제재 처분 절차 때문인가요?
- 아닙니다.
- 그러면 사직 이유가 무엇이죠?
- 희망 직업을 추구하기 위해서요.
- 희망 직업을 추구해요?
남자는 나를 보았다. 나는 이제 8개월만 있으면 쉰 살이 되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 무슨 직업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가?
- 음, 말씀드리죠. 강 후미 지역의 덫사냥은 오직 12월부터 2월까지만 합니다. 나는 벌써 한 달을 낭비했어요.
- 한 달요? 하지만 여기 11년이나 있지 않았나요?
- 맞아요. 그러니까 11년을 낭비한 거죠. 루이지애나 주 라푸르슈 만 지역에서 덫사냥을 하면 3개월에 1~2만 달러를 벌 수 있답니다.
- 뭘 하시려고요?
- 덫을 놓아서 사향쥐, 뉴트리아, 밍크, 수달....... 너구리를 잡아야죠. (......)(235p.)
헨리 치나스키는 우체국을 나왔다.
아직 살아있었다.
기적이다.
p.s『우체국』을 읽으며 4월을 맞았다. 지난 3월 한달 동안 내가 가장 자주 만난(만났다기보다는 그저 잠깐 마주쳤다는 표현이 정확하지만..) 사람은 바로 택배 기사 분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마주쳤는데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택배 회사마다 다른 분이 오시니까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일주일에 한 번씩, 3월 한 달만 해도 서 너 번은 마주친 얼굴인데도 기억이 안난다. 다만 어떤 분은 목소리가 아주 우렁차고, 어떤 분은 항상 수줍어 하며, 또 어떤 분은 늘 서두른다는 느낌을 준다는 정도... 그러나 누가 알겠나. 그 분 들 중에 전 세계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찰스 보코스키 같은 작가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나!
- 밑줄
그만두기로 결정하자마자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28p.)
아주 진한 블랙커피였다. 이미 썼던 커피 찌꺼기로 다시 만든 것 같았다. 이제까지 마셔 본 커피 중 가장 형편없었지만 뜨겁기는 했다. 세 잔을 마시고 한 시간 동안 앉아 있노라니 몸이 완전히 말랐다.(28p.)
이전에 고참 집배원이 자기 심장을 가리키며 해주었던 말을 기억한다.
<치나스키, 언젠가 여기 생길거야. 바로 여기 생길 거라고!>
<심장마비요?>
<봉사에 대한 헌신 말이야. 자네도 알게 될 거야. 집배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테지.>
<니미럴!>
하지만 그 남자는 진지했다.(41p.)
어느 날 아침 일찍 G.G. 옆에서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 G.G. 그의 실제 이름은 조지 그린이었다. 하짐나 몇 년 동안 G.G.라고만 불렸고 얼마 지나자 정말 G.G.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는 20대부터 집배원이었고 이제는 60대 후반이었다. 목소리도 맛이 갔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깍깍거릴 뿐이었다. 깍깍거리게 되자 별로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인기가 있지도 않았지만 미움을 받지도 않았따. 그저 거기 있을 뿐이었다. 주름이 잔뜩 진 얼굴을 이상한 골이 생기고 흉하게 처졌다. 얼굴에선 더 이상 빛이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기 일을 다 해버린 꼬장꼬장한 늙은이일 뿐이었다.(50p.)
아침 동안 몇 번이나 그가 멈칫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일을 하다 멈추고 환각 상태에 빠져 있다가 퍼뜩 깨어나서 편지를 좀 더 쑤셔 넣었다. 내가 그 사람을 딱히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그리 멋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예 똥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가 멈칫할 때마다 뭔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우직한 말 같았다. 아니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멈춰 버린 낡은 차 같거나.(53p.)
그래서 할아버지는 조이스에게 큰 액수의 수표를 써주었고 우리는 결국 이렇게 됐다. 언덕 위에 작은 집을 하나 빌렸고 조이스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도덕주의를 주장했다.
「우리 둘 다 직업을 얻어야 해요.」조이스가 말했다.「아버지랑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돈을 노릴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면 우리가 자립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해요.」
「자기, 그건 초등학생 같은 생각이야. 어떤 바보 멍청이라도 구걸하면 일은 얻을 수 있어.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거지.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요령 있다고 하지. 나는 요령 있는 훌륭한 백수가 되고 싶어.」
조이스는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타고 다닐 차 없이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고 우겨 보았다. 조이스는 전화를 걸었고 할아버지가 돈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새 플리머스를 타게 되었다. 조이스는 새로 산 고급 양복을 입히고 40달러짜리 신발을 신겨 나를 거리로 내보냈다. 젠장, 용이라도 써봐야 할 텐데. 배송 사무원. 내가 할 만한 일은 그뿐이었다. 제대로 된 기술 하나 없으면 나이 서른여덟에 이렇게 된다. 배송 사무원, 접수 사무원, 창고 정리. 구인 광고에서 본 두 회사에 가봤는데 둘 다 나를 채용했다. 첫 번째 회사는 너무 일터 같은 냄새가 나서 두 번쨰 회사에 취직했다.(78p.)
저녁인지 점심인지 먹은 후(열두 시간씩 근무를 한 후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말했다. 「이봐, 자기. 미안하지만, 이 일 때문에 내가 미쳐 가고 있다는 거 모르겠어? 저기, 그냥 포기하자. 그저 빈둥빈둥 누워서 섹스나 하고 산책이나 하고 얘기는 조금만 하자. 동물원에 가는 거야. 동물을 구경하자. 차를 타고 내려가서 바다를 구경하는 거야. 45분밖에 안 걸려. 오락실에 가서게임도 하고. 경마장이나 미술관, 권투 경기에 가자. 친구도 사귀고. 웃자고. 이렇게 살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거야. 이러다 죽는다고.」
「안 돼, 행크. 우리는 보여 줘야만 해. 아빠랑 할아버지에게 보여 줘야만 한다고.....」
텍사스 시골 천년이 할 만한 말이었다.
나는 포기해 버렸다.(93p.)
더는 못 참겠다. 새장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피카소가 따라왔다. 파리 1만 마리가 허공에서 똑바로 솟아올랐다. 새장을 땅바닥에 놓고 새장 문을 연 다음 계단에 앉았다.
새 두 마리가 새장 문을 보았다. 저것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까, 못 할까. 저 조그만 머리들이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음식과 물이 여기 있긴 한데, 저 열린 공간은 뭘까?
노란 가슴 초록 깃털이 먼저 나왔다. 새는 가로대에서 열린 문을 향해 풀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철사를 꽉붙들고 앉아 있었다. 새는 파리 떼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려는지 15초 정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 놈의 자은 머리에서 뭔가 딸각거렸다. 아니, 년이라고 해야 하나. 새는 날지 않았다. 하늘 속으로 똑바로 솟구쳤다. 위로, 위로, 위로, 위로, 곧장 위로! 화살처럼 똑바로! 피카소와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것이 사라졌다.
이제 초록 가슴 빨간 깃털의 차례가 되었다.
빨간 새는 훨씬 더 오래 망설였다. 새는 초조하게 새장 바닥을 거닐었다. 결정하려니 머리 터지겠지. 인간이건 새건 모든 것은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 어려운 게임이다.
그래서 이 빨간 새는 서성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노란 햇빛. 윙윙 나는 파리 떼. 쳐다보고 있는 남자와 개. 무엇보다 하늘, 그 모든 하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빨간 새는 철사 쪽으로 풀쩍 뛰어 올랐다. 3초.
휙!
새는 사라졌다.
피카소와 나는 빈 새장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102~10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