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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기 보고서 - 은지와 호찬이 1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53
심윤경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11년 10월
평점 :
나는 어린이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님이나 선생님하고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나는 어린이책, 그림책을 많이 읽는다.
갖고 있는 책도 꽤 된다.
순전히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그림책을 살 때가 있는데
그럴땐 스스로도 '정신과에 한 번 가봐야 될까?' 하고
고민스럽기도 하다.
최근에 '틱낫한 스님의 심리 처방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신간『화해』라는 책을 보면 '내 안의 아이 치유하기' 또는
'내 안의 아이와 화해하면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말이
나온다.
"옳거니!"
이거구나. 내가 어린이책에 빠져드는 이유.
어린이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안의 아이'를 만나는 거였구나.
이젠 당당하게 떳떳하게 자연스럽게 적극적으로 더 많이
어린이책을 읽을 수 있겠다. 으헤헤
『화해하기 보고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어린이책 전문가가 추천하는 이달의 어린이책 중 한 권이다.
주인공은 강은지와 강은지 엄마.
책소개 글만 읽어도, 그림만 쭈르륵 훑어봐도 내용 파악은 다 된다.
강은지가 엄마 말을 안들어서 엄마한테 혼이 나고
강은지는 울고 엄마는 화나고
강은지 더 울고 불고, 엄마 더 화나고 쿵쾅 쿵쾅 으아 으아 고릴라 엄마 되고
엄마 이성을 되찾고(붙잡고) 수습 모드로 진입하고
엄마랑 강은지랑 화해하고 뽀뽀하고 해피엔딩
그러다 또 강은지 엄마한테 혼나고
강은지 울고 엄마는 화나고...
빤한 스토리 아닌가?
그래도 나는 강은지처럼 억울하기도 하다가
강은지 엄마처럼 속터지기도 하면서
흥미진진, 빤한 스토리에 빠져든다.
왜?
강은지가 내복차림으로 대문 밖으로 쫓겨난 순간
강은지는 더 이상 강은지가 아니고, 바로 어릴적 내가 되고
강은지 엄마는 더 이상 강은지 엄마가 아니고, 바로 '울엄마'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어릴때 대문 밖으로 쫓겨난 적이 있었다.
엄마랑 싸우고 내 발로 밖으로 뛰쳐 나갔는데
엄마는 문을 잠궈버렸다. 날은 추웠고 내복 차림은 아니었어도
잠바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신발은 커다란 아빠 슬리퍼를 신었으니
멀리 어디로 갈 수도 없었다. 내가 그렇게 쎄게 나가면 엄마는 황급히
나를 쫓아나와 괜찮다, 다 괜찮다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줄
알았는데... 철컥. 대문 잠기는 소리.
"니 맘~대로 해봐라 어디!" 또렷한 엄마 목소리.
"엄마, 잘못했어요! 이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 말씀 잘 들을게요! 저 좀 다시 키워 주세요!
집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강은지는 엄마한테 사정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강은지처럼 다급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잘못했다고 비는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이 그러는 모습을 보더라도)
필요 이상 굴욕감을 느낀다.
'쳇. 빌거면 애초에 그러지를 않았지.
차라리 밥을 안 먹고 말지. 차라리 고아가 되고 말지.
차라리 내가 혼자 살고 말지.'
정말 정말 오래 전, 나 어릴적 고래고쩍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밖에서 꼼짝 않고 서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여기 있다가 감기 걸리고 아프면,
차라리 여기서 죽어버리면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그때는 엄마가 잘못을 알겠지. 아이 고소하다.'
엄마는 오래지 않아 대문을 열고 나를 보며
"지독한 년" 한마디를 하셨지만
책처럼 '화해보고서'를 쓰거나 껴안고 뽀뽀하는 절차는
없었으므로, 그랬으므로 내가 오늘 이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는 것이므로...
엄마! 고집 쎈 나를 안 버리고 이만큼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데 모시고 다니고 맛있는거 많이
사드릴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