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부터 독립했다. 독립!

간단한 문장이다.
쓰기는 쉽다.
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야말로 한 치의 주저함 없이, 한 오라기의 스스럼 없이, 내 맘 내 손으로 이 문장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했는지, 그 생각을 하면 휴우우, 어렵다.

엄마는 정말, 대단한 엄마다.
엄마는 열 한 살에 혼자서 엿을 만들었다.
밥이 아니다. 엿이다!
어른들이 들로 일하러 나간 사이에, 그 옛날 아궁이에 나무를 땔감으로 무쇠솥에 밥 해 먹던 시절에, 혼자 궁리하여 갱엿을 만들어놨더니 일하고 돌아온 어른들이 보고 혀를 찼다고 했다.

˝머리를 써. 머리를!˝
ㅡ부엌에서 엄마한테 제일 많이 들은 말.

˝먹어 치워!˝
ㅡ밥상머리에서 엄마한테 제일 많이 들은 말.

˝써글년(썩을 년: 누구나 죽고 죽으면 썩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무니다. 넵)˝
ㅡ집에서 엄마한테 제일 많이 들은 말.

˝쉬워!˝
ㅡ따로 살면서, 나랑 통화하면 엄마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이거, 쉬워! 쉬우니까 해 먹어, 오이만 사다가 오이지 담가 먹어, 나물 무쳐 먹어, 콩나물밥 해 먹어, 깍두기 담아 먹어, 부침개 해 먹어, 식혜 담아 먹어, 만두 해 먹어, 쉬워!

엄마는 참 대단하지. 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서 알아낸 것을 어떻게 알고 맨날 나한테 쉬워 쉬워 하셨는지. 흐흐. 엄마한테 주입식 쉬워 교육을 받은 덕분에, 나는 겁없이 김치도 담그고 막 잡아온 가자미(펄떡거리는 가자미, 아직 죽지 않은 가자미, 죽이지 못해 죽을 때까지 기다렸던 대물 가자미 일곱 마리, 여덟 마리였나? 아무튼)도 사가지고 오고, 마늘을 두 접씩 사고, 막 캐 온 더덕이며 도라지, 나물같은 거는 도대체 그냥 지나가지를 못하고 사 들고 오고 그렇게 일 벌이기 선수 생활을 한 지 어언 20년! 이제 나는 내 생일에 엄마한테 쥐꼬리 만 한 용돈을 보내며 ˝어이구 오마니! 이 더위에 나 낳아 키우느라 정말 고생하셨네! 시원한 냉면이나 한 그릇 사 드셔!˝ 하며 큰소리 뻥뻥 친다. 큰소리 치던 통화가 끝나기 직전에 문득 깨달았다. 아하, 나 오늘 완전 독립! 독립인!

사람노릇 하며 살다 가는 일만 남았다.
개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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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27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팔딱거리는 게를 여러 마리 사와서는 어떻게 죽여서 된장 풀고 게찌개를 끓여야 하는지 몰라 헤매다가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끓는 물에 넣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고 칫솔로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닦아 찌개를 만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저는 비위가 상해 먹지 못했고, 그런 걸 모르는 식구들은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입니다. ㅋㅋ

잘잘라 2021-08-27 15:35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ㅎ 게! 페크님은 게로 저는 가자미로! 이후로 활어를 산 적은 없지만 생선 반찬은 잘 먹어요. 음... 오늘 저녁은 딱 정했네요. 곤드레나물밥 식당으로! 거기 가면 반찬으로 가자미 튀겨주시걸랑요. ㅎㅎㅎㅎ

2021-08-27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7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8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8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1-08-28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잘라님, 어머님의 쉬워! 비법 전수자시군요.
뭐든 잘 하실 것 같아요. 독립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잘잘라 2021-08-28 22:2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두요. ^^
8월의 마지막 주말! 즐겁고 신나는 시간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