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은경의 톡톡 칼럼 - 블로거 페크의 생활칼럼집
피은경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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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어게인, 피아노어게인, 발야구어게인, 뜀박질어게인, 편지어게인... 이것은 '다시' 하고 싶은 것들이고, 좝 어겐, 봐디 어겐, 휴먼 어겐, 뤼딩 어겐... 이것은 '새롭게' 하고 싶은 것들이다. 


      중단했던 것을 다시 하고 싶다거나,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하고 싶다거나, 결국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고 심심하다는 뜻이고 지루하다는 뜻이고 좀이 쑤신다는 뜻인데, 이럴 때(이런 기분일 때), 나는 그저 떠오르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뭐든 시작하고 움직인다. 그러다 얼마 못 가 힘들고 지치고 흥미를 잃고, 그런 기분은 마음에 들지 않고, 심심하고 지루하고 좀이 쑤시고, 떠오르는 대로 뭐든 시작하고 움직이고 얼마 못 가고 췟, 췟, 췟, 췟바퀴 속을 돌다가 알라딘을 만나고 아주 신이 났었다. 매일 새로운 책,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알라딘 동산에서 나는 오랫동안 심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정지. 그날, TV 앞에서 모든 것이 멈췄다. 멈춰버렸다. 기분 정지, 생각 정지, 판단 정지, 분석 정지, 믿음 정지, 신뢰 정지, 명랑 정지, 유머 정지, 나눔 정지, 교류 정지, 노래 정지, 춤 정지, 배움 정지, 정지, 정지, 정지. 물론, 알라딘도 정지....했나? 진짜? 이러고 서재 들어와서 비공개로 잠궈 놓은 글들 뒤져보니까, 엄마야. 그것은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새빨간'으로는 부족하다. '씻뻘건' 거짓말이다. 화내고 분통 터뜨리고 소리 지르고 먹고 자고 전화하고 축하하고 시험공부 하고 읽고 쓰고 그리고 웃고 떠들고 술먹고 노래방 가고 별 거 별 거 할 거 다 했다. 몇 년이나 지났다고 그래, 멀쩡한 얼굴로 그래,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그래, 철면피가 따로 없네 그래, 허 참 나 원.


      이래서 어디다 뭘 남기는 건 참 신중해야 한다. 문서로 남겨두지 않았다면, 그냥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면 그만이고, 불리하면 기억 안난다고 하면 그만이고.. 얼마나 편리한가. 온라인이 됐건 비공개 글이 됐건 아무튼 이렇게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어쩔 계획인지, 그런 말을 남겨둔다는 건, 언제고 내가 변절자가 되고 거짓말쟁이가 되고 배신자가 되고 악당이 될 수 있는 화근을 남기는 것과 다를 게 없질 않나? 온라인으로 남기는 것만 해도 이렇게 위험한 노릇인데, 그 글을 모아서 아예 책을 낸다니! 어느 누구든지 손에 쥐고 읽을 수 있는 책을, 언제 어느 때고 똭- 증거로 들이밀 수 있는 책, 책, 책을!!!!!!!!!......자 자 잠깐. 이거 이거 이게 아닌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나? 나 지금 페크님 책 리뷰하고 있는 거 아닌가? 정신차리자.


      그렇다. 페크님이 책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글을 올리셨을 때, 난 마냥 해맑은 얼굴로 축하합니다, 환영합니다, 꼭 내돈내산으로 읽겠습니다, 했다. 알라딘 서재에 올라온 페크님 글을 읽으면 언제나 넓고 맑고 깨끗한 호숫가에 서서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항상 주변이 산만하고 기분대로 내키는대로 살아온 나와는 달리, 글에서 느껴지는 페크님은 뭔가 정돈된 느낌, 생각이 깊고 차분한 분위기여서 페크님 글을 좋아한다. 뭔가 기분대로 막 쏟아내고 싶은 날에도 페크님 글을 읽고 나면 많이 진정이 되서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그러면 또 뿌듯한 기분으로 페크님 서재를 나와서는 제법 어른스러운 몸짓으로 차분하게 다른 이웃 서재를 돌며 사부작 사부작 장바구니를 채워서 나가는 날도 많다.(이것은 제가 읽은 책에 대해 하나하나 리뷰를 올리지 않는 핑계가 아니,.. 아니고, 핑계가 맞습니다.ㅋ)


      어디까지나 이것은 『피은경의 톡톡 칼럼』이 나오기 전까지의 얘기고, 실제로 책이 나와서 알라딘 판매가격 11,700 원에 올라와 있는 지금,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핑계를 대고 앉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두 달도 아니고 지난 수 년 간 신세를 진 페크님의 글에 대해서 저도 뭔가 역할을 해야한다는 자각이 일어났달까요.(그러고보니 어느새 제가 존댓말을 쓰고 있네요. 음.. 독자를 의식했다는 의미일까요? 리뷰에서조차 참, 산만함을 드러내고야 말았네요.) 아무튼 저는 페크님 책이 올라오자마자 주문했습니다. 즉 제가 이 책을 받아 든 것은 지난 해 여름이었다는 말입니다. 거의 반 년 만에 리뷰를 올리는 셈이고 그간의 사정은 이렇습니다. 


      책을 받고 저는 적잖이 실망을 하였습니다. 2020년 출판 시장에서, 먹고 싶은 건 참아도, 갖고 싶은 책은 못참는 제 입장에서 보자면, 딱히 누가 디자인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표지 디자인이며 제목, 부제, 구성, 종이 질감, 인쇄 상태, 어느 하나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책을 갖지 않기로 했습니다. 알라딘 중고 매장에 내다 판 것이지요. 어차피 페크님 글은 알라딘 서재에서 계속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바로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페크님 글을 읽을 때마다 뭐랄까, 아무튼, 좀처럼 밝고 맑고 차분한 호숫가 풍경이 펼쳐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것참 큰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페크님 글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그 기분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니.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간에 페크님과 알라딘에 오래 같이 다닌 시간이 빛을 발하여 제가 책을 사는 의미, 책을 읽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행동파입니다. 잘못은 시정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저는 곧 페크님 책을 다시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밑줄 치며 읽고, 메모하며 읽었습니다. 읽었던 글을 읽고 또 읽는 읽는 셈이 되었습니다. '새로나온 책이 하도 많으니 나는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두 번은 안 읽을 거야.' 하던 치기 어린 생각도 고쳤습니다. 읽은 글을 다시 읽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습니다. 보이지 않던 마음이 보이고, 행간을 읽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수풀로 뒤덮여 어수선하기만 하던 제 머릿속 세상에 조금씩 조금씩 생각의 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사는 의미, 책을 읽는 의미'에 더해 '책을 출판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메모하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제 인생에서 책이 주는 의미를 의미있게 생각하게 하는 뜻 깊은 책, 『피은경의 톡톡 칼럼』을 써주신 페크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출처: 페크님 서재 「(단상81)독서가 삶에 도움이 될까 안될까」

https://blog.aladin.co.kr/717964183/6914253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시는 페크님의 글,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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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4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5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1-02-0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느껴지는 페크님은 뭔가 정돈된 느낌, 생각이 깊고 차분한 분위기여서 페크님 글을 좋아한다.˝

˝읽은 글을 다시 읽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습니다. 보이지 않던 마음이 보이고, 행간을 읽으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습니다. 수풀로 뒤덮여 어수선하기만 하던 제 머릿속 세상에 조금씩 조금씩 생각의 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래저래, 제 인생에서 책이 주는 의미를 의미있게 생각하게 하는 뜻 깊은 책, 『피은경의 톡톡 칼럼』을 써주신 페크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써 주셔서 제가 감사합니당~~~

잘잘라 2021-02-05 19:28   좋아요 1 | URL
흐흐흣 ^^ 😀 역시 페크님!
댓글 마저 이렇게 차분하게 써주셨네요. 히힛.. 페크님 다음 책 기대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