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F 문학은 현실의 상황이 녹록치 못함을 이상적 방향으로 펼쳐 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지구의 지속가능함에 대한 의심을 우리는 과거에서 부터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다.

종말론이 그렇고 외계 행성들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충돌설이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위험과 불안들이 오늘날 우리의 이상적 방향성을 담아낸 SF문학으로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다다르고 보면 SF문학을 통해 인간의 간절함이 담긴 그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상상력의 창조라 신선하고 새로운 모습으로의 세계를 만날 수 있지만 현실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상하고 낮선 모습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현실과 이상적 세계에 대한 이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음이 색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쉬 그러한 능력을 맛볼 수는 없다.

뛰어난 SF 문학, 더구나 어린이를 위한 SF문학의 뉴베리상을 수상한 작품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지구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하며 2061년 혜성이 지구에 충돌할 것이란 예측으로 부자들과 학자들이 연합해 우주선을 만들고 '세이건' 이라는 다른 행성으로의 대규모 이주를 꾀하는데, 남겨진 사람들을 뒤로 하고 소설의 주인공인 페트라는 이륙하는 우주선에 타고 있었다.

페트라의 부모는 과학자이고 새로운 행성 세이건으로 향해 가는 항해 동안의 380년을 잠들어 있어야 하고 잠들어 있는 시간에 기술적 지식으로의 전문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는 그야말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러함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잠자리에서 마저도 공부해야 해? 라는 물음을 가질 수도 있을것 같다.

항해하는 380년의 시간이 흐른 후 수면포드 안에서 깨어난 페트라의 눈에는 어떤 모습이 펼쳐질까?

앞서 이야기 한 잠자며 수면각성을 통해 기술적 전문가로의 삶을 살도록 하는 일이 깨어난 상태에서 뇌가 그러한 존재감을 그대로 표출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심리학적 기술의 일부라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수면 포드에서 깨어난 페트라는 자신이 제타1, 식물학 및 지질학 전문가로 봉사하려 한다는 울림을 듣고 의문을 갖는다.

그러한 울림은 뇌가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스스로 각성하기 위한 세뇌과정이라 할 수 있기에 

심리적 혼란을 느끼며 페트라는 제타 1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한다.

아이들의 모습이 전혀 아이들 같지 않고 감정이 죽은 모습은 지구를 떠나면서 갖게 된 혜택이? 과연 이런거 였을까 하는 의문과 모종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페트라는 부모와 동생을 찾아 우주선에서 탈출하려는 계획을 세우는데...


수 많은 SF문학들이 항상 유토피아적인 이상향만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디스토피아 역시 존재하기 마련이며 인간의 미래는 인간 자신이 결국 주체권을 가지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지구를 지켜내지 못하고 다른 행성으로 떠난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적 환경의 시작임을 알리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새로운 행성에 새로운 세계를 창설하겠다는 콜렉티브와 사령관은 새로운 지배자로 읽혀진다.

세뇌되는 아이들, 미래의 희망이 어떤 목적으로 세뇌 당한다면 이미 그러한 사회는 희망적이 않다고 볼 수 있다.

SF 문학은 글로 읽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생생히 그려지기 보다는 신비로운 무언가를 보듯 그 느낌이 다르게 전개된다.

미래 지구의 지속가능함을 어린이들이 짊어지고 있듯 콜렉티브 역시 세뇌된 어린이들에 짐지운 사령관과 어른들의 행태는 변함 없는 착취의 과정임을 뜻하고 있다.


쿠엔토는 이야기를 뜻하는 스페인어라 한다. 그야말로 인간 삶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삶은 미래를 여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 해답은 어쩌면 과거에서 부터 기원한 인간의 삶에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마치 페트라가 '쿠엔토'를 통해 오랜 지구의 이야기가 인간을 더욱 인간적이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듯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살게 하는지를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전달해 주는 작품이라 판단할 수 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타르튀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4
몰리에르 지음, 김보희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교는 인간의 의식을 얽매거나 오도하게 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맹목의 믿음을 갈구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신도들에 대한 행위와 신도들의 구원을 바라는 염원이 부딪혀 종교의 다양한 비리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음이 과거에서 부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하기에 17세기의 교회 실정을 풍자한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읽혀지고 오늘에 까지 전해지고 있다.

아마도 과거에는 그러한 종교적 문제 역시 풍자의 대상이자 희곡의 주제로 많은 사람들을 일깨워 주고 있지만 독신자인 타르튀프에 의해 폭로되는 신앙에 대한 경고의 음을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러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읽어 볼 수 있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읽기 쉽게 풀어 쓴 현대어판 타르튀프" 는 17세기 베르사유 궁전에서 초연 된 이후 금지된 공연의 내용으로 종교인의 위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어 어느 시대건 시대를 아우르려는 성직자들의 미움의 대상이 된 인물의 이야기를 담아 전하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종교적 신앙에 대한 회의와 반문으로 진정한 신앙에 대한 물음을 촉구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현실에 있어 현명함을 갖춘 인물이 정체를 알수 없지만 성자와 같은 모습을 갖춘 어떤 사람으로 인해 변화하고 자신의 가족조차 돌보지 않는다면, 더하여 자신의 딸을 그와 결혼 시키려 한다면 이는 심각한 맹신을 두려워 해야 하는 모습일게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의 세상에서는 그러한 일들이, 종교를 빙자해 일어나고 있는 빈번함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흑심이 도를 넘어서 듯 그러한 인물인 타르튀프는 자신에게 딸을 주려는 오르공의 아내 엘미르에게 흑심을 품는데..

그러한 상황을 목도한 오르공의 아들은 타르튀프의 위선을 폭로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는 형국이 된다.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요, 막장의 끝판이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인간 세상의 삶은 악하고 끝판에 가까울 수록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기억되는 이상한 흐름이 존재한다.

타프튀프의 이야기 또한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현실의 많은 소설이나 작품들에서는 권선징악이 아닌 다양한 주제가 등장하지만 인간세상에서의 다양한 일들의 끝에는 항상 권선징악의 주제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타르튀프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되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 보다는 철저히 독선적이고 향락적인 모습에 복종적인 타르튀프의 모습에서 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반문해 보아야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

오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면 그러한 타르튀프의 모습을 종교의 왜곡된 모습속에서 찾을 수 있다.

나, 우리의 맹신에 가가운 종교관에 대한 비판이자 인간의 욕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한 타르튀프의 이야기가 왜 시카고 플랜의 일환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언제까지고 인간 사회에서의 인간의 역할에 대한 정체성을 깊이 인식하고 깨달아야 하는 의미를 이 책은 밝혀준다 할 것이다.

그러한 인간적인 면모와 올바른 종교관에 대한 이해를 구축할 수 있고 타자와의 토론을 통해 확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겠다.

일독 뿐만이 아니라 토론으로 더 많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해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로트 인문학 - 우리들의 트롯, 철학으로 듣는다,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박성건.이호건 지음 / 미디어샘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때 버려진, 아니 늙다리 늙은이나 좋아하는 음악이 바로 트로트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최근의 트로트 열품은 날씨로 치자면 이상현상 이라 지칭해도 틀린말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트로트 인문학이라니? 과연 트로트가 인간의 심중을 울리고 웃기는 요물처럼 행세하기에 인간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트로트를 인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겠다는 여겨진다.

무려 30년 전에는 '뽕짝' 으로 트로트를 표현 했지만 그것이 일본의 엔카를 표절한 노래라는 인식이 강해 일본이라면 질색을 했던 우리의 의식과 배치되는 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트로트에 보여준 우리의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트로트는 어떠한가?

최근 몇 년 사이에 TV종편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이 인기를 끌고 소위 거기서 뜬 스타들이 트로트를 전국적으로 붚무질 하면서 트로트는 이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생각하게 된다.

트로트 인문학이 무엇을 담고 또 트로트가 어떻게 인문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전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트로트 인문학" 은 엔카에서 비롯된 왜색의 가요가 아니라 우리의 민요에 뿌리를 둔 가요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흥이 많고 놀기 좋아하는 우리 민족, 나,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출 수 있는 리듬감으로 흥을, 마음을 일으키는 노래라 할 수 있기에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는 우리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다가서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즉 트로트는 우리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샹송과 같은 음악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는 왜 샹송이 좋은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그 가치는 무엇인지를 쉬 알수는 없어도 나, 우리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트로트에 대해서는 그러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나름대로의 말을 전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 '너 자신을 알라'는 말에 대한 인식 역시 딱딱하고 철학적인 의미로 이해되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웃기는 일보다는 무미건조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그에 비하면 가수 나훈아의 '테스형' 은 얼마나 익살스럽고 세상 삶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쉬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수 백번 네 자신을 알라는 말보다 세상이 왜 이러냐고 테스형에게 묻는 과정에서 나, 우리는 진정 자신에게로 향하는 삶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이해하며 풀어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트로트는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방향타 역할을 하는 존재감을 갖고 있다.

철학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 역시 인문학의 범주에 들어 있고 그 또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임을 생각해 보면 어렵고 난해한 철학적 물음과 답에 기대를 거는것 보다는 쉽게 이해하고 따라 부르거나 흥얼거림으로 나,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 풀어 낼 수 있는 트로트가 오히려 더욱 인문학적 가치로서는 크기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15가지 주제로 트로트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저자는 트로트가 던지는 철학적 화두에 대한 우리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어 목놓아 부름으로 그 간절함을 토로하게 한다.

간절함 만큼 나, 우리에게 바램을 담는 일은 없다. 그러한 간절함을 담아 부르는 트로트 한 소절, 나,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한 트로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해 본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절초풍 익살주머니 딱지 시리즈 4
송완식 지음, 장유정 옮김 / 두두 / 2022년 10월
평점 :
절판



웃음기로 깔깔 호호 마냥 웃는 모습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인간사에 웃음은 만병통치약 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맛깔난 말로 재담을 나누고 익살스런 이야기로 웃음을 지어내 건강한 삶을 살고자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대에 따른 재담집이 존재하겠지만 식민지시대의 재담, 익살스런 언어의 향연을 펼쳐낸 책은 쉽사리 만나 볼 수 없어 역사, 문화, 인류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 대상이 될 수도 있으리라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시대를 살아간 많은 사람들에게 눈물과, 웃음을 선사한 웃음기 머금게 한 언어로의 익살주머니는 나로서는 처음 만나게 되는 일이다.

시절의 흐름이 달라져 많은 감정적 완고함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지만 사람의 삶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듯 요절초풍 익살주머니에서 보여주는 재담, 익살스런 웃음기는 세사에 닳고 무뎌진 나의 마음을 조금씩 허물어 마음의 여유를 챙기게 해준다.

그 익살스러움을 새롭게 번역해 세상에 드러낸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요절초풍 익살주머니" 는 딱지본 소설이라 현대 소설의 완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딱지본 소설들의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어 어릴적 우스개 소리로 슬그머니 웃음기 머금던 내 얼굴의 미소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글들을 마주하게 되는 책이다.

시대적으로는 100년 전이라니 그리 오래지 않을듯 도 하지만 요즘과 같이 극적인 웃음을 기대하게 하는 우리의 마음에는 밍숭맹숭한 느낌의 언어의 유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익살과 재담, 즐거움으로 웃음기를 선사해 삶의 청량제 역할을 했을 것임을 생각하면 어이없게도 오늘날의 개그(Gag)가 바로 그러한 딱지본 소설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

저자의 말처럼 이야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함은 인간 삶의 지속성에 맞춰 이야기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생성되고 발전되어 나간다는 의미와 통한다 할 것이다.


웃음만이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울음 역시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웃픈이란 언어처럼 웃지만 슬픔을 간직한 모습, 혹자는 어떻게 평가 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모습의 웃음도 나름의 이유와 까닭이 존재함이고 보면 언어의 유희가 보여주는 웃픈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생생함을 읽어내고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100년 전의 일상 속에 흐르던 우리의 웃음 발생기를 100년 후의 우리가 만나보는 기회는 100년 전의 웃음과 지금의 웃음에 대한 서로 다름의 의미를 이해하고 건강한 웃음을 통해 삶을 환기 시키려는 저자의 목적이 숨겨져 있다 판단할 수 있겠다.

혹여 100년 전의 용어들이 무색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에 저자는 친절히 후미에 원문의 전문을 실어 독자들의 이해력 향상을 돕고자 한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닌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처럼 나를 웃게하는 익살주머니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웃음을 웃어보자.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치 보며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 -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이치, '눈치'에 관한 40편의 에세이
임세화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사는 사람들 중에 눈치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지만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면 그러한 생각을 가졌던 나의 생각이 짧았다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 보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눈치보며 사는 사람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눈치 본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일관할 필요는 없다 판단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다양한 방법론이 있다.

그러한 방법론에서 눈치는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게하는 이치이자 인간 삶의 행복을 위한 기제로도 판단해 볼 수 있는 눈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눈치 보며 사는 것이 뭐가 어때서" 는 비굴하고 어리석은 모습으로의 눈치가 아닌 당당하고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수단으로의 눈치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당당하게 눈치보고, 눈치를 활용하자고 한다.

그렇다. 우리 역시 지금까지의 '눈치' 에 대한 부정적 의식을 배재하고 눈치가 가진 새로운 의미로의 '센스'와 '배려'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할 필요성이 있다.

사람간의 관계에서 촉발되는 의식적 무의식적 행동들이 존재하는데 눈치는 그러한 관계를 더욱 빛나게 하거나 좋은 쪽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생각만으로 그칠 수 있는 일들을 접해 좀더 쉽고 편하게 마무리 하거나 할 수 있엇다면 이는 그러함을 배려해 놓은 사람의 눈치 덕을 본것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눈치밥으로 인한 간사함을 연상하기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눈치에 대한 기억을 바꾸어 줄 수 있다.

과연 이러한 센스와 배려감 있는 눈치를 긍정적으로 판단치 않는다면 나, 우리의 인식이나 생각의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센스와 배려를 한다고 해서 나와 타자의 관계에서 내가 주눅이 들거나 하수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자세를 가진 나, 우리로의 당당함이 일의 진행에 있어 더욱 탁월한 선택임을 보조할 수 있는 기회를 곁들여 준다.

나,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한 자존감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지만 그러함에 매몰되다 보면 오롯이 나 이외에는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다.

함께라는 공동의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나, 우리로서는 '눈치'라는 조미료를 통해 함께 어우러지는 맛난 음식을 조리할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눈치라면야 언제라도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당당하게 눈치 보고 당당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눈치에 대한 의식을 환기하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이 반갑게 느껴진다.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