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7만 5천여 종이 출간되나 성인 60%의 1년 평균독서량이 1권도 안되는 상황에서 그 많은 책이 다 어디로 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 라고 서울리뷰오브북스 서문에서 말했다. 아마 20:80법칙을 따를 것이다. 표지독서라도 하는 소수가 있을 것이다. 100부 밖에 발행안된 책을 열심히 보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아마 미술전시도 그럴 거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뒤에 등재된 갤러리만 500여군데다. 모든 전시를 다 가야 미술을 하는 것도, 미술사를 다 알아야만 작품을 만드는게 아니니 미술가만 전시를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전공자라도 관심있는 아트러버는 전시를 다닐테다. 




월초에 계획을 가지런히 세워 부지런히 다니고 월말이 되면 리스트를 놓고 찬찬히 검토해본다. 간 곳보다 못 간 곳이 더 눈에 밟힌다. 본디 예술은 눈에 보여지기 위해서 존재하니 작품은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며 한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기억나는 첫 전시는 로댕미술관이다. 플라토로 바뀌었다가 없어진 삼성미술관이다.





네이버에 500군데 핀했다. 아직도 진주, 영암, 창원을 못 갔다. 갈 곳이 옆나라는 더 많다.





소수의 전시탐험가들이 있다. 그중엔 과학도와 기업인도 있는 모양이다


작년에서야 엑셀로 방문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올해 쓰레드를 하면서 전시회 다니는 전문가들을 알게 되었다. 많이 배웠다. 그들의 방문과 인상은 나의 시각을 확장해주었다. 어차피 개인이 모든 곳을 다 갈 수는 없다. 전공은 겹치면 경쟁이 되지만 애호는 겹치면 상호보완적이다. 당신의 방문은 나의 방문을 방해하지 않으며 당신의 관람 공유는 오히려 나의 이해도를 더 높여준다.



일본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무명의 애호가들의 존재를 알게됐다. 생업을 따로 가지면서 취미로 예술을 좋아하고 작품평을 꼼꼼하게 글로 써서 남기는 사람들. 눈빛이 다르다. 원래 교회, 성당, 절도 순환근무하는 성직자보다는 한군데 몇 십년 다닌 어르신의 신앙이 더 깊다하였다


20:80의 법칙을 되새김질해보면, 모든 사람이 발매되는 모든 음악을 들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 찾아듣고 음악사를 꿰뚫는 소수의 아피시오나도가 클래식, 랩, 락 등 각 분야마다 있다. 진정한 전문가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이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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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2024-11-09(토) ~ 2025-04-06(일)


원앤제이

〈두번째 피부〉: 이동기

2025. 3. 20. – 4. 30




1. 청담에 있는 원앤제이 갤러리.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 바로 앞에 있다. 걸어 올라간다면 꽤 경사.


2. 전시장까지 다다르기까지 경사가 있는 다른 곳을 문득 생각해보니

1) 효창공원의 시청각 

2) 경리단길의 ERD, 인가희, P21 

3) 한남의 바톤, 타데우스로팍, 그라프

4) 남산의 화이트스톤, 눈, uhm

5) 성북의 우손서울, 제이슨함,LKate

6) 평창의 가나아트,자인,누크,

7) 광화문의 헬렌에이,떼아트


물론 그 경사의 최고봉은 자하와 목석원이다. 하이힐은 금물. 등산화는 OK. 전기자전거 같은 전동식 개인형 이동수단으로도 힘들다.


3. 생각해본 김에 경사가 있지만 버스편이 존재해서 걸어가지 않는 경우를 지도에서 살펴보았더니

1) 서울대/신림/낙성대 세 곳에서 접근 가능한 서울대미술관

2) 서초의 예술의 전당

3) 장충 신라호텔 셔틀버스 타고 가는 조현화랑서울

4) 성북02타고 가는 우리옛돌/뮤지엄웨이브

5) 삼성역의 S2A가 

있는 것 같다.


4. 돌아와서 원앤제이. 단체전인데 들어가자마자 이동기 작가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이동기, <A의 머리를 들고 있는 A>, 2012, 캔버스에 아크릴. 



물론 이는 누가봐도 카라바죠의 작품을 현대 카툰식으로 오마쥬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대 서울에서 카라바죠의 바로 그 작품을 볼 수 있다. 예술의 전당에서



Caravaggio,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c. 1600-1601, Oil on wood,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5. 이동기 작가의 팝컬쳐스러운 작화를 보니


작년에 판교에서 했던 전시가 생각난다. 그라픽스 작가.


판교 더 스탠, Alter Ego Era 대체자아의 시대

2024.08.30-12.08


그라픽스 작가의 작품도 저런 해맑은 컨셉의 캐릭터를 주제로 삼았다.



위는 그라픽스, 아래는 김세동(sambypen)작가다.






6. 정통과 변주


바로크 회화의 정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카라바조의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구도를 귀여운 비주얼 스타일의 현대 팝 컬처 캐릭터로 오마주한 이동기 작가의 작품을 보니


정통과 변주가 감각적으로 충돌하는 데서 발생하는 효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카라바조가 극적인 테네브리즘(명암대비)으로 표현한 잔혹하면서도 깊은 심리적 긴장감을 


현대 팝 컬처의 언어로 쾌활하고 발랄하게 바꾸어 놓는 순간


귀여움과 잔혹함이 강한 언밸런스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원작의 심오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사라지지만 여전히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구도에서 시각적 불협화음이 발생한다.


역설적이다. 이 시각디자인과 내용의 인지적 부조화는 예를 들어 한국 웹툰 FFF급 용사나 일본 애니메이션 마법진 구루구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FFF급 용사는 전형적인 RPG 판타지 세계관을 차용하면서도 주인공이 영웅서사를 따라가지 않아서 판타지아의 교직원들에게 FFF성적을 받아 유급해 다시 모험을 반복하는 이야기다. 귀여운 그림체에 행동은 마왕처럼 악독하고 반항적이다.





마법진 구루구루는 아기자기한 캐릭터 디자인과 동화적인 분위기가 일품이지만 실제로는 비틀린 유머와 예상을 깨는 전개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귀여운 외형과 그에 반하는 이질적인 내용이 결합될 때 우리는 일종의 인지적 충격을 경험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외관과 내면을 구별하여 이해하도록 돕는다. 아울러 이러한 불일치는 새로운 해석을 상상하도록 유도하며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되던 감각을 세분화하여 보다 정교하게 탐색할 수 있게 한다.


https://namu.wiki/w/%EB%A7%88%EB%B2%95%EC%A7%84%20%EA%B5%AC%EB%A3%A8%EA%B5%AC%EB%A3%A8



러버덕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할 수 있다. 


보통 귀여움은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대상에 대한 감정이다. 그러나 2014년 한강에 전시된 노란색 러버덕은 거대함과 귀여움을 조립해 인지적 부조화를 통해 낯설게 하는 효과를 촉진했다. 보통 하나의 개념으로 여겨지던 감정을 분리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https://namu.wiki/w/%EB%9F%AC%EB%B2%84%EB%8D%95%20%ED%94%84%EB%A1%9C%EC%A0%9D%ED%8A%B8



귀여운데 거대하다. 낯선 감정이다. 보통 귀여우면 작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면 이 개념미술의 의도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초다.


보통 귀엽다고 한다면 웹툰 <토끼와 흑표범의 공생 관계>의 비비나 웹툰 <던전리셋>의 뽀뀨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작은 대상을 귀엽게 여기는 감성은 포유류의 새끼들이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특성에서 비롯된 본능적 반응이다. 유전적으로 형성된 DNA적, 모성애적 기제라고 볼 수도 있다. 귀여움은 곧 작은 존재에 대한 귀여움이다.




거대함은 공포와 두려움과 연관되어 있다. 왜냐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큰 대상에 위압감을 느끼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거대한 존재는 생존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때론 거대함은 숭고함과도 연결된다. 사람들은 광활한 대자연이나 압도적인 규모의 구조물 앞에서 먹먹함과 경외감을 느낀다. 그러니 거대함+두려움, 거대함+숭고함이 결합되어 있고, 작음+귀여움이 결합되어 있는데 러버덕은 이 두 조합에 균열을 내고 크로스해서 거대함+귀여움으로 재구축했다. 그 결과 평소 깊이 고민하지 않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우리의 뇌를 말랑말랑하게 하고 사고를 유연하게 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이끌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은 기존 바로크 유화에 있던 어두움+잔인함을 잘라내어 밝음+잔인함으로 재구성해 작품뿐 아니라 감정마저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현대적 패러디는 카라바조의 원작을 단순히 베낀 것이 아니라 원작과의 대화를 통해 맥락을 다시 조명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창의적인 변주는 원작의 가벼운 차용이나 일방적 계승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동적 과정이다. 단순한 시각적 충격이 아니라 원작과 패러디 사이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만드는 적극적인 미학적 전략인 것이다.


8. 이외에도 미학과 심리학에서 귀여운 스타일과 잔혹한 내용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설명하는 개념이 있는지 챗지피티에 물어보니 다음과 같이 정리해주었다. 참고삼아 복붙한다.


1) 인지적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제시한 개념으로, 서로 상충하는 정보나 기대와 다른 요소들이 결합될 때 인간이 느끼는 심리적 불편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귀엽고 친숙한 팝 컬처 스타일이 잔혹한 주제를 담고 있을 때, 관객은 이에 대한 인지적 충격을 받고 이를 해석하려는 심리적 노력을 하게 됩니다.


2) 낯설게 하기 (Defamiliarization, остранение)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토르 시클로프스키(Viktor Shklovsky)가 제안한 개념으로,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재구성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카라바조의 어두운 회화를 밝은 팝 컬처 스타일로 변형하는 것은, 원래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보도록 하는 ‘낯설게 하기’의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3) 불협화음적 미학 (Aesthetic Dissonance)

미학에서 조화로운 형태나 구성이 미적 쾌감을 준다면, 불협화음적 미학은 의도적으로 조화를 깨트려 충격적이고 도발적인 감각을 유발하는 방법론입니다. 귀여운 그림체와 잔혹한 주제의 조합은 미적 불협화음을 형성하며, 관객에게 예상치 못한 정서적 반응을 끌어냅니다.


4) 바디 호러 (Body Horror)와 귀여운 공포 (Cute Horror, Kawaii Grotesque)

일본의 ‘기묘한 귀여움’(Kimo-kawaii, キモかわいい) 개념처럼, 귀엽고 익숙한 것과 불쾌하고 무서운 것이 결합될 때 느껴지는 양가적 정서를 설명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Madoka Magica나 Happy Tree Friends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며, ‘귀여운 공포’라는 미학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5) 아이러니적 거리 (Ironic Distance)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으로, 작품이 스스로를 풍자하거나 기존의 미적 규범을 전복할 때 생기는 거리감입니다. 귀여운 스타일로 심각한 장면을 표현하는 것은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관객은 이를 해석하며 기존의 규범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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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생각해보는 메가서울권 전시장 특징

예쁘고 비싼 것을 무료로 보고 싶다면: 북촌, 서촌, 성북, 청담, 한남, 청담의 갤러리

예쁘고 비싼 것을 유료로 보고 싶다면: 예전 한가람, 리움, 롯데

우리 것을 보고 싶다면: 국중박, 예전서예, 국현미 덕수궁, 민속

지역의 강자: 강동의 소마, 성북의 석파정, 은평의 사비나, 파주의 미메시스+헤이리, 광화문의 세화/성곡, 기흥의 백남준, 안산의 경기도미술관

인스타그래머블한 힙한 전시: 그라운드시소, 푸투라, 성수

서울시립미술관 SeMA 분관특징

1) 북서울: 매년 타이틀매치 흥미로움, 아래층 어린이전시는 매우순한맛, 윗층 성인?용 현대예술 전시는 매우매운맛

2) 본관: 걍 믿고 봄(2층 늘 천경자 선생님)

3) 남서울: 건축(1층 권진규 상설조각, 2층 대체로 건축)

4) 평창아카이브: 작가연구. 전시를 보러가서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나옴

-여의도벙커는 이제 없는 듯. 특이한 공간이었음

5) 서서울: 기후환경, 도시미디어, 페미니즘



도쿄 국립서양의 모네전이 교토 교세라로 옮겨가 전시되고

서울 예당의 반고흐전이 대전시립으로 이어 전시된다

재작년 국중박 영국내셔널갤러리전은 홍콩고궁박물관에서도 순회전을 했는데 일본에서 한 번 재미를 보았기 때문일 듯. 그때는 더 많은 콜렉션으로 했었다

프랑스 퐁피두센터 26-30년 휴관 중 작품 놀리지 않고 공사비를 벌려고 한국에 대여하는 것이겠지 63빌딩 아쿠아리움 자리에 올해 개관한다

올해 개관하는 미술관 중 사실 퐁피두보다 서서울미술관을 더 기대하고 있는데

현대미술의 높은 진입장벽을 감안하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시대의 최전선 아젠다에 대해 발언하는 작가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기 때문

기후환경, 페미니즘, 미디어, 도시로 특화된 전시를 선보여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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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85960.html


조선의 국가 재정 7할, 여성이 감당했네 [.txt]

강명관의 고금유사

수정 2025-03-08 14:25


한 걸음 더 나아가자면 여성은 국가의 경제를 떠맡고 떠받치고 있었다. 조선의 국가 재정은 쌀과 면포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면포는 오로지 농민 여성이 생산하는 것이었다. 여성은 쌀의 생산에도 노동력을 쏟았으니, 실제 조선의 재정 중 60~70%는 여성의 노동에서 나온 것이었을 터이다. 그러니 조선의 국가 경제는 사실상 여성이 떠받치고 있었다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역시 농촌의 젊은 여성의 노동력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별로 이상한 말은 아닐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인구가 많았던 경상도와 전라도 농촌의 여성은 신발, 봉제, 가발 등의 산업에 투입되었다. 또 일부는 가정부로, 버스 안내양으로 갔다. ‘공순이’라는 비칭을 들으며 번 돈으로 학교에 다니는 남동생과 오빠의 등록금을 댔다. 지금도 부산의 고무공장, 마산의 수출자유지역에서 쏟아져 들어가고 쏟아져 나오던 젊은 여성들이 눈에 선하다. 여성 노동자들은 예외 없이 저임금이었다. 실제 한국 산업화 과정의 자본 축적은 여성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서 가능한 것이었을 터이다.


2.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185747.html


여성의 삶 옭아매는 ‘빚’, 벽장에서 꺼내 모두의 문제로 [.txt]

부채는 성차별적 폭력 연결고리 

금융자본과 가부장제의 결탁 

공론화해 ‘종속의 사슬’ 끊어야

박다해기자

수정 2025-03-07 09:12


빈곤과 여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당장 한국만 봐도 그렇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고 한들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격차마저 좁혀진 것은 아니다. 대체로 여성이 종사하는 노동의 질은 남성보다 낮은 경우가 많고 평균 근속 연수 또한 짧다. 성별임금격차는 여전히 오이시디(OECD) 회원국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부채는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 이는 부채가 가진 매우 사적인 특성, 즉 ‘드러내놓고 말하기 어렵고 수치스러운 것’이란 관념 때문일 터


이들이 특히 주목하는 건 출산·가사노동·돌봄 노동 등 부채가 사회적 재생산 능력을 착취하는 지점이다. 예컨대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공공 서비스를 축소하고 각종 요금과 식료품을 달러로 지불하도록 만들면서 사회적 재생산 비용이 가족, 특히 가족 내 여성에게 전가됐다. 공적인 자원이 축소되면서 개인의 지갑이 얇아진 셈인데, 이런 위기에서 자신의 소득만으로 사회적 재생산을 충분히 해내기 어려운 여성들은 결국 부채에 기대게 된다. 이 때문에 재생산 노동에 제값을 부여하는 운동을 통해 부채를 ‘합법적으로’ 탕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3.  https://www.nytimes.com/2025/03/16/world/africa/saudi-arabia-kenya-uganda-maids-women.html


Why Maids Keep Dying in Saudi Arabia

East African leaders and Saudi royals are among those profiting off a lucrative, deadly trade in domestic workers.


By Abdi Latif Dahir and Justin Scheck

March 16, 2025


Why Maids Keep Dying in Saudi Arabia

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정부들이 계속 죽어나가는가


East African leaders and Saudi royals are among those profiting off a lucrative, deadly trade in domestic workers.

동아프리카 지도자들과 사우디 왕족들은 가사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위험하고도 수익성 높은 사업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


Lured by company recruiters and encouraged by Kenya’s government, the women have reason for optimism. 

회사의 모집 담당자(헤드헌터)의 유혹과 케냐 정부의 권유에 따라 많은 여성들이 희망을 품는다. 


Spend two years in Saudi Arabia as a housekeeper or nanny, the pitch goes, and you can earn enough to build a house, educate your children and save for the future.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정부나 보모로 2년만 일하면, 집을 짓고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하며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While the departure terminal hums with anticipation, the arrivals area is where hope meets grim reality. Hollow-cheeked women return, often ground down by unpaid wages, beatings, starvation and sexual assault. Some are broke. Others are in coffins.

출국장에서는 기대감으로 가득하지만, 도착장은 현실을 마주하는 곳이다. 뺨이 홀쭉해진 여성들이 돌아온다. 임금 체불, 구타, 굶주림, 성폭력을 겪고 기진맥진한 상태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관 속에 실려 오는 경우도 있다.


At least 274 Kenyan workers, mostly women, have died in Saudi Arabia in the past five years 

지난 5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숨진 케냐 노동자는 274명 이상이며, 대부분이 여성이다.


In Kenya, Uganda and Saudi Arabia, a New York Times investigation found, powerful people have incentives to keep the flow of workers moving, despite widespread abuse. Members of the Saudi royal family are major investors in agencies that place domestic workers. Politicians and their relatives in Uganda and Kenya own staffing agencies, too.

뉴욕타임스의 조사에 따르면, 케냐·우간다·사우디아라비아에서 권력자들은 노동자 공급이 지속되도록 유도할 만한 이득을 보고 있다. 사우디 왕실의 일원들은 가사노동자를 알선하는 업체에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우간다와 케냐의 정치인들과 그들의 친척들도 이런 인력 공급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The line between their public and private roles sometimes blurs.

공적인 역할과 사적인 이익이 뒤섞이는 경우도 많다.


The Times interviewed more than 90 workers and family members of those who died, and uncovered another reason that things do not change. Using employment contracts, medical files and autopsies, reporters linked deaths and injuries to staffing agencies and the people who run them. What became clear was that powerful people profit off the system as it exists.

타임스는 90명 이상의 노동자 및 사망자의 가족을 인터뷰하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를 밝혀냈다. 고용 계약서, 의료 기록, 부검 결과를 분석한 끝에, 사망과 부상 사례들이 특정 인력 공급업체 및 그 운영자들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지금의 시스템 자체가 권력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They(recruiters) search for people desperate, and ambitious, enough to leave their families for low-paying jobs in a country where they do not know the native language. People like Faridah Nassanga, a slim woman with a warm but detached air.

그들은(헤드헌터/모집담당자) 모국을 떠나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찾을 만큼 절박하면서도 야망을 품은 사람들을 찾는다. 모국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 현지 언어조차 모르는 나라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 파리다 나상가처럼, 마른 체격에 따뜻하지만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4. 홍콩의 동남아 이모들이 주말에 밖에 나가 공원에서 노는 것은 한편으로는 주말에 집에 있는 주인 가족들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어서 자발적으로 쫓겨나있는 것이다.


5. 한국에 유입되는 노동자들은 K-pop과 한류가 있는 잘 살고 낭만적인 이미지를 홍보하는 리쿠르터들에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속아서 오는 것. 우리 과거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그러셨고, 여전히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반복되고 있다. 폭탄 돌리기. 어쩌면 100년 후에는 <미키 17>의 익스펜더블처럼 우주 식민지에 저임금 노동하러 가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여성들이 가게되리라. 예견되는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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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송된 뉴욕타임즈 인터네셔널


종이신문 표지 1면 사설(opinion)에 재밌는 기사가 있었다.




우리 옛날에 먹어 본 적이 있다. we would have eaten a long time ago를


we woulda been done ate라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다는 것. 


흥미롭다. been + done + ate를 한꺼번에 쓰는 패턴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자는 1057페이지에 달하는 흑인 영어에 대한 박사논문에서 이 문장을 따오면서 이런 방식으로 영어의 문법이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기사의 주요지는 호주의 크레올 영어가 정식 언어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다. 가능하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은 처음에 영미인들과 무역하기 위해 단순히 단어를 교환하는 실용적이 수준에서 영어를 시작했지만, 점차 시제와 문법 요소를 추가하고 원주민 언어와 혼합하면서 독자적인 혼종 영어를 만들어냈다. 이 과정이 세대를 거듭하며 정착된 결과 크레올어라는 영어의 하위 갈래가 탄생했다. 그것이 틀린가? 라기보다는 그런 방식으로 영어가 작동할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으로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어쩌면 50년 후에는 혼종 한국어도 생길지도 모른다.


한국내의 다문화 커뮤니티에서 만들 수도 있고,


외국의 kpop팬들이 만들어낸 자생적 한국어일 수도 있다.



https://www.nytimes.com/2025/03/20/opinion/language-kriol-australia.html


John McWhorter

OPINION

How a Plane to Australia Took Me to ’90s Oakland

March 20, 2025


Take this humble sentence: “We woulda been done ate.” From the perspective of standard English, the “been done” may seem — albeit slangy or even vibrant — grammatically … askew?


It isn’t. 


We woulda been done ate” means that we would have eaten a long time ago.


That sentence is from Elizabeth Dayton’s magisterial Ph.D. dissertation on how verbs work in Black English. It clocks in at 1,057 pages, such that anyone who thinks Black English is just broken rules should consult — or at least behold — it.



문제는 종이신문에서 보고 검색하려고 보니 도저히 사이트에서 검색이 안된다는 것.


이미 인터네셔널판은 며칠, 몇 주, 몇 달 전 기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검색도 잘 안되고, 오피니언란에서도 찾기 쉽지 않다.


구글에 검색해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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