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 페로탕에 다니엘 아샴 전시가 열렸다. 작년 이맘때 7-10월에 잠실 시그니엘 6층 롯데뮤지엄에서 열린 회고전 후 1년만이다.
페로탕 전시는 8.16까지다. 폭염을 피하려는 이들은 7.25 이후에 열리는 근처 아뜰리에 에르메스전에 맞춰서 가면 좋을 것 같다. 에르메스는 매년 3, 7, 11월 년 3회밖에 하지 않는다. 아울러 근처 송은 권아람전은 8.9까지, 탕 아누크전은 8.23까지다. 그러니까 대략 7.25-8.9 사이가 적절한 방문의 시기다. 이때 지금보다 더운 폭염이 올지 극한 호우가 올지는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번 페로탕 전시에서는 아샴의 세계관 중 자동차, 스타워즈, 패션, 스포츠, 굿즈 콜라보는 제외하고 미래유물futurrelic 상상의 고고학 fictional archeology에 해당하는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사진: 작년 롯데뮤지엄 다니엘 아샴 유니버스
페인팅은 대부분 시그니쳐인 미래유물, 상상의 고고학 테마다. 현재에서 몇 백 년 전 과거유물을 돌아보는 감각이, 몇 백 년 전 미래에서 오늘을 보는 감각과 비슷하다는 화두에서 비롯된 작품으로, 원주민이 신성한 산으로 추앙하던 러시모어산에 조각된 미국 대통령 4명의 얼굴처럼 큰 바위얼굴에 조각된 콧대 높은 아그리파형 서양 두개골 얼굴을 먹먹히 바라보는 사람을 그렸다. 다만 작년과는 달리 현대 대중문화 캐릭터와 그리스로마 흉상을 반반 배치한 작품은 없어 키치한 느낌은 없다.
이번에 미래유물과 상상의 고고학을 위주로 페로탕에 배치된 아샴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미래과거시제, 톤다운된 코스믹호러다.
미래과거시제는, 미래 그 시점까지 "해두었을 거야"를 지시하는 would have pp의 미래완료시제가 아니라, 미래에는 과거처럼 변해있을거야라는 미래에서 본 과거시제라는 가상의 시제다.
현재에서 머나먼 과거를 응시하는 시간감각이 미래에서 현재를 보는 시간감각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착안해, 작가는 그 두 시차를 한 작품에 병치한다. 또한 페트라, 피라미드, 콜로세움 등 무너진 문명의 폐허에서 보이듯, 과거에서 현재가 반드시 나아지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은 아니기에 미래를 쇠락한 고대문명처럼 그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벗겨진 금속 표면과 푸르른 청동 알몸이 공존하는 작품은 전시장 외부에 대형, 내부에 소형으로 두 점 있다.
이러한 미래 시점의 회고적 시간관은 기술이 진보하고 사회가 발전해 인류가 나날이 풍요로워지다는 단선적, 선형적, 진보적, 개발주의적 세계관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인간의 잘못된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불변으로 믿고 있는 사회시스템은 무너질 수 있고 문명은 퇴보할 수 있다는 것. 찬란했던 고대문명도 시스템유지가 안되고 계승자가 나오지 않아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되면 더이상 그때 그 정교한 기법으로 조각, 건축을 만들 수 없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원래 금박으로 뒤덮여있던 그리스조각의 금을 긁어다가 무의미한 전쟁을 하느라 군비에 대고 흥청망청 써버린 후대의 무능과 퇴행탓에 지금은 제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벗겨진 청동 알몸 조각만 보게 되었다. 이에 영감을 받은 아샴은 그리스 조형에 금박이 칠해진 부분과 아닌 부분을 함께 보여주어 원형의 과거와 퇴보된 현재, 혹은 본래의 현재와 왜곡된 미래를 함께 보여준다. 지금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으면 풍요로운 미래가 아니라 쇠락한 미래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우선주의를 비판하는 환경생태주의를 암암리에 뒷받침하고 있는 아이디어일 수도 있다.

2025년 다니엘 아샴 페로탕(내부)

2024년 다니엘 아샴 롯데뮤지엄
국내 SF작가 중 배명훈의 소설이 다니엘 아샴의 화두와 닮았다.
과거 도시의 기억과 장기 게임을 활용한 고고심령학자(2017)
문명세계가 아닌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화성을 다룬 빙글빙글우주군(2020)
시간과 미래, 외계와 꿈을 다룬 단편 9편으로 구성된 미래과거시제(2023)
과 같은 작품이 특징적이다.


사진: 디즈니
또한, 압도적이고 전능한 존재 앞의 무력감이 지배적이 크툴루 신화에서 비롯된 코즈믹 호러와 닮았는데 무력함보다는 세계의 허망함이 느껴지기에 다소 톤다운 되었다고 생각한다. 노마드랜드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중국계 감독 클로이자오가 연출한 마블의 이터널스에서 대륙 크기의 셀레스티얼이 지구에 다가오는 장면에서 코즈믹 호러를 일부 표현했다. 류츠신 원작의 SF소설 삼체의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도 하늘 전체가 번쩍이는 장면에서 우주적 존재 앞의 공포가 보인다. 전시장에 걸려있는 다니엘 아샴 작품 중에서 큰 바위 얼굴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의 무리가 있기 때문에 코즈믹 호러까지는 아니고, 거대한 존재 앞에 서있는 작은 사람의 광막함은 있다. 오히려 걸리버 여행기가 비슷해보인다.

2025년 다니엘 야삼
걸리버가 12배나 작은 소인국의 릴리푸트에게 묶여있는 그런 발랄함과 용감은 단연코 아니다. 18세기 제국주의 팽창의 시대에 나온 걸리버여행기(1726)에선 로빈슨 크루소처럼 자연과 미지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진취적 희망이 가득했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다소 패배주의적인 무력함이 지배적이고 이를 표현하는듯 아샴의 페인팅에서는 거대한 문명 앞에 느끼는 먹먹함과 무상함이 느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듯.

2024년 다니엘 아샴

2025년 다니엘 아샴

사진: 디즈니
이번 전시에서는 추락하는 시계 falling clock을 확장한 기억의 건축 memory architecture이 특이하다. 고대로마조각상 두개골 안에 건물 내부를 그린 드로잉 연작으로 뇌 속 기억을 계단과 플로어라는 물성으로 시각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