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이상한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작품은 용감하게 창의적이다. 일단 어디에도 없는 오리지널한 이야기라는 점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이야기에 몰입하다가 왓더퍽! 와 씨발! 하는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충격적이다.


신체 훼손과 바디 호러가 있는데 정갈하고 냉철한 관료적 분위기가 풍긴다. 카인즈오브카인드니스 두 번째 에피소드(RMF is flying)에서 엄지손가락을 잘라 남편을 위해 요리하고, 더랍스터에서 눈을 멀게 만들고, 부고니아에서는 자살하고 몸이 폭발, 송곳니에선 발치, 더페이버릿에선 통풍과 부패, 가여운 것은 뇌절제수술 등이 있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멀리서 지켜보며 심리적 거리를 유지해 관객의 정줄을 붙잡아준다. 피 튀기는 장면을 전시해 스펙터클처럼 즐기지 않고, 크로넨버그처럼 몸을 과하지 파괴하지 않는다. 왜냐면 란티모스의 바디 호러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에서 신체는 인격과 분리되어 규율되고 교정되고 처벌되는 객체다. 다시 말해 신체는 자아의 소유물이 아니다.


신체는 가족의 것일 수 있고 (송곳니=도그투스)

순응을 요구하는 사회의 것일 수 있으며 (더랍스터)

믿음 혹은 운명의 것일 수 있고 (킬링디어)

귀족 위계사회에서 권력의 것일 수 있으며 (더페이버릿)

과학의 것일 수 있고 (가여운 것들)

계약과 시스템, 자본주의와 컬트종교의 것일 수도 있다 (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부고니아)


카오카에서 신체훼손은 공손한 협상을 통해 거래된다.

부고니아에선 이념을 전달하기 위한 매체로 전락한 육체를 전기고문을 통해 확인하고

가여운 것들에서 유아뇌가 성인몸에 이식되어 신체는 언뜻 정상적으로 작동하지만 존재론적 의미가 삭제되고 재배열되었다. 고통과 쾌락은 의학적 진단으로 판명된다.

더페이버릿에선 권력의 장식 아래 썩어가는 몸이 보인다. 권력을 통해 쇠약해진 몸에 접근한다.

킬링디어에서 신의 처벌이 신체병리로 나타나며 의술은 무력하기에 해결책은 희생밖에 없ㄷ다.

더랍스터에서 사랑은 닮아야 하며 닮지 않았다면 몸을 깎아서라도 맞춰야 한다. 신체 훼손은 사랑의 증명서고 순응의 증거는 육체에 새겨진다.



신체를 자꾸 끌고다니는게 특징이예요 더랍스터때 조금씩 사용하더니 더페이버릿, 가여운 것들에서 어안렌즈 빈번하게 보이더라구요. 요르고스 란티모스에게 엠마스톤은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케인경, 웨스 앤더슨의 오웬 윌슨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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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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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대학원생의 지적탐구 소설

ゲーテはすべてを言った의 번역본이다.


독서가라면 흥미로워할 주제에 순수한 앎에 대한 희열을 주제로 사료찾기라는 설정을 밀고 나가며 논문처럼 각주를 단 소설은 전례가 없는데 자기 현실 삶의 단계를 너무 앞서서 쓰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있다.


대학원생이 교수를 상상하며 쓴 이야기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는 되고 사보겠지만 너무 초년성공은 아닌지

스토리 자체로 승부가 안되고 2001년생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를 방어하기 위해 1년에 천 권을 읽는다는 소개문구를 넣었다.

아쿠타카와상을 노리는 수많은 중량급 문학청년들이 시셈어린 볼멘표정으로 눈을 치켜 뜨고 그를 감시하며 때이른 성공이 몰락으로 이어지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내 이럴 줄 알았다,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도 문학전공으로 교수가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저자는 속히 교수가 되어서 권위로 자신을 지켜내야하리라

다만 그때는 창작자로서라기보다 논문을 쓰는 학자로서 역량을 키워야하니 과연 그가 마흔 살 이후에도 꾸준히 소설을 생산하는 작가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다치바나 다카시, 장정일, 이권우, 보르헤스와 비슷한 계열이다. 아직 한두 편 밖에 없는 작가라서 신형철 선생의 찬사처럼 오에 겐자부로까지 언급하기엔 과하다고 본다.



P.S. 편집부에게: 227-228쪽 각주 11번과 12번 리히터와 폴란드인 순서가 바뀌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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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일방적 대상이었던 학생은 성장해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이 되어 가르침 받던 자가 시간이 지나 임계점을 넘어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


케이팝 무대를 시청하던 아이는 바라봄에 그치지 않고 반복과 모방을 거쳐 연습생이 된다.


기업 입장에서 소비의 일방적인 대상이던 컨슈머는 생산에 개입하는 프로슈머를 거쳐 모디슈머가 된다.


소설을 읽던 독자는 세계관에 적극개입해 팬픽을 쓰는 2차창작자가 된다.


깃허브 등 오픈소스 유저는 버그 리포팅을 하며 시스템에 기여한다.


알게 모르게 클릭, 스크롤, 시청시간은 알고리즘의 학습 데이터가 되니 플랫폼 이용자는 무료 데이터노동자이며


게임을 소비하던 플레이어가 룰과 세계관을 바꾸는 모더다.


회사의 수족이던 직원은 얼굴이 되어 브랜드 채널로 시장에 등장한다. 심지어 충주맨처럼 공무원의 사례도 생겼다.


유튜브를 가만히 보던 시청자는 숏폼 제작자로 거듭나며 영화를 보던 관객은 입봉하거나 AI영화를 만든다.


환자가 의사와 함께 공동연구자가 되는 사례도 있는데 예컨대 데이터가 희소한 희귀질환 커뮤니티에서 환자들은 임상데이터를 조직해 학술용어를 이해하며 스터디에 기여한다.


인간과 도구의 이분법 속에서 객체로 분류되던 로봇도 센서의 힘을 입어 IoT가 되어 이젠 생활환경과 선택의 조건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자로 기능한다. 월-E처럼 단순수행자가 아니라 인간-행위자 네트워크 속에서 함께 존재한다.


그러니까 문서작업은 마우스-키보드-워드-컴퓨터-눈과 뇌를 모두 포함하는 하나의 공동 작업과정이다. 앞으로는 스마트 글래스-AI데이터센터-SMR-스타링크저궤도도 함께 사유해야한다.

도시공간에서도 신호등, GPS, 스마트 그리드 등이 되려 인간의 행동을 조율하기까지 한다. 


이런 모든 개별 사례를 톺아보면 수용에서 모방으로 모방에서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순환패턴이 보인다.


주체와 객체의 엄격한 구분은 시간이 지나 흐물흐물 무너져내리니, 초기모델이 충분한 학습과 기술적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교체되는 과정이다.


변화는 예외가 아니라 기본 상태다. 제행무상이다.


보는 이는 무엇을 보다가, 보던 자가 보던 것 안으로 천천히 편입되어 시스템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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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알이 생겼어 노란상상 그림책 127
주아나 바라타 지음, 엔히키 코제르 모레이라 그림, 오진영 옮김 / 노란상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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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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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많아서 줄줄이 소시지로 볼 수 있거나

두어편 모두 아이코닉한 외국영화감독 73명 (한국, 아시아 제외)

물론 전자의 경우 다작이 태작이라는 말은 아니고

후자도 과작이라는 사실이 대작을 반드시 담보하지는 않는다. 케바케다.

어쨌든 이런 영화감독은 2편 이상 볼만하고

73명x2편x2시간, 인생에 후회없는 292시간이다.


Christopher Nolan(1970)

Chloé Zhao(1982)

Coen brothers(1954, 1957)

Wes Anderson(1969)

Martin Scorsese(1942)

Peter Jackson(1961)

Steven Spielberg(1946)

James Cameron(1954)

Christian Petzold(1960)

Sam Mendes(1965)

Todd Phillips(1970)

Denis Villeneuve(1967)

Quentin Tarantino(1963)

Alfonso Cuarón(1961)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1963)

Mel Gibson(1956)

Daniel Kwan(1988)&Scheinert(1987)

Kathryn Bigelow(1951)

Francis Ford Coppola(1939)

Guillermo del Toro(1964)

Clint Eastwood(1930)

Leos Carax(1960)

Alice Rohrwacher(1981)

Damien Chazelle(1985)

Paul Thomas Anderson(1970)

Francois Ozon(1967)

Jean-Pierre Dardenne(1951) and Luc Dardenne(1954)

James Gray(1969)

Taylor Sheridan(1969)

Gareth Edwards(1975)

Kogonada

Edward Berger(1970)

Chris Columbus(1958)

Luc Besson(1959)

Joseph Kosinski(1974)

James Mangold(1963)

Jim Jarmusch(1953)

Greta Gerwig(1983)

Francis Lawrence(1971)

David Yates(1963)

Peter Weir(1944)

George Miller(1945)

Adam McKay(1968)

Lars Von Trier(1956)

Tim Burton(1958)

Alex Proyas(1963)

Roland Emmerich(1955)

Ridley Scott(1937)

Matthew Vaughn(1971)

Brian De Palma(1940)

Kenneth Branagh(1960)

François Truffaut(1932)

Jean-Luc Godard(1930)

Éric Rohmer(1920)

Sergio Leone(1929)

The Wachowskis(1965&1967)

Alfred Hitchcock(1899)

George Orson Welles(1915)

Lulu Wang(1983)

Martin McDonagh(1970)

David Fincher(1962)

Adam Wingard(1982)

Alexander Payne(1961)

Yorgos Lanthimos(1973)

Luca Guadagnino(1971)

Brad Payton(1978)

Jonathan Glazer(1965)

Richard Linklater(1960)

Lee Isaac Chung(1978)

James Gunn(1966)

Wim Wenders(1945)

Ari Aster(1986)

Federico Fellini(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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