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모던코리아 한국미술 2부작 보았다(12.27.토/28.일 방영분)


제작자의 시각은 최소화하고 70년대 영상자료와 25년의 인터뷰를 교차편집해 날것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어 시청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좋은 다큐의 표본이다. 현대미술 미디어영상에서 많이 보이는 신스사운드가 몰입도를 높이며, 보이스가 프레임 앞으로 미리 틈입해서 컷 간의 전환이 좋다.


1부는 민족기록화

2부는 여성민중미술로

1부가 소수, 엘리트, 국가, 순응적 태도, 토착화, 시대정신, 우리 것 찾기가 테마였다면

2부는 다수, 소수자, 여성과 민중, 저항의 태도, 시대적 장벽 속에 여성미술가의 위치찾기가 테마로 대비된다.


공교롭게도 1부의 박광진, 2부의 김인숙은 올해 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각 1,2층에서 전시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각기 다른 지향을 지닌 사람이 한 공간에서 다시 만났다. 관객들은 무심히 지나가고, 간혹 눈 밝은 이와, 시대를 함께 견뎌 온 이만이 다른 스타일의 두 전시가 한 뿌리임을 알아본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시대를 헤쳐 온 이들이다. 전자는 정부의 오더를 받아 민족기록화를 그렸고 후자는 성차별, 투쟁의 노동현장을 그렸다. 보여주고 싶은 한국의 성장하는 모습을 영웅적이고 역사적인 풍취로 그린 전자와, 숨기고 싶은 한국의 부끄러운 모습을 투박하고 원색적인 색채로 그린 후자는 모두 한국현대사의 핍진한 한 모습이다.


질문도 다르다. 세계와 후대에 한국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같은 거시적 관점과 여성으로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라는 미시적 관점의 차이다. 지역이라는 수평적, 시간이라는 수직적 관점과 사회-집단-개인으로 이어지는 자아 소속감과 효능감은 행위자 범위가 다르다


유홍준과 고 이어령의 모습도 보인다. 1부는 JP, 박정희, 박근혜, 박서보, 하인두, 박광진의 흑백 영상과 함께 박서보의 아들 박승호, 하인두의 딸 하태임의 오늘날 인터뷰가 담겼다. 2부는 60대가 된 80년대 학번 민중미술 여성화가들의 현재 인터뷰와 과거 20대때 그녀들의 모습에서 시차가 느껴진다.




https://vod.kbs.co.kr/index.html?source=episode&sname=vod&stype=vod&program_code=T2025-0633&program_id=PS-2025239470-01-000&broadcast_complete_yn=N&local_station_code=00§ion_code=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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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직역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에 따라 의역을 한 좋은 예시


1. 기묘한 이야기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living in a bubble


2. 캐셔로

명색이 변호사인데 이름이 변호인이야

이름이 직업이라는 한국어의 말장난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you wanna win Byeon a reasonable doubt? Then Ho-In is the man to call

합리적 의심 하나로 승부하고 싶어? 그럼 호인이가 답이지(부를 사람이지)


여기서 원어민 입장에서 

비욘드 자리에 변을 넣어도

win beyond a reasonable doubt라는 문장 한 덩어리가 자동호출된다


음성적으로도 비연드나 변이나 비슷하게 들리기도 하고

앞서서 명함으로 변-호인이라는 이름을 자막으로 보여줘서

변이라는 성씨를 넣은 말장난임을 이해하게 된다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서(beyond)이기고 싶어?

합리적 의심을 변(Byeon)해서 이기고 싶어?

그걸 해줄 사람은 호인이야


생각 많이 하고 의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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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맛 - 피아노 조율사의 우리 국수 탐방기 피아노 조율사의 탐방기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 / 린틴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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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중국집, 2021년의 경양식집, 2025년의 국수집. 2028년이 가기 전에 빵집, 피자집, 국밥집 내놓으세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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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의 맛 - 피아노 조율사의 우리 국수 탐방기 피아노 조율사의 탐방기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 / 린틴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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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평범한 피아노 조율사가 있다.

대개 매장에서 근무하다가 가끔 전국으로 출장을 나가길 어언 30년


"일주일 내내 꼼짝없이 매장에서 근무하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고 불현듯 어디론가 떠나는 버릇이 있는(p78)" 그는 문을 열자마자 산책하러 튀어 달려나가는 보더콜리처럼 전국 각지의 맛집을 하나 둘씩 다니기 시작한다.


어느덧 맛집 정리 노트는 빼곡해지고 그 리스트를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와 함께 책으로 빚어 우리에게 선보인다. 삽화가는 이윤희, 조율사의 맛집 책 세 권을 모두 그려 이제는 그녀가 없으면 앙꼬 빠진 찐빵, 로다쥬 없는 마블 같다.


이번 책으 2018년에는 중국집, 2021년에는 경양식집, 이제 2025년에는 국수집 탐방기가 나왔다.

그래서 3년 주기로 기대하고 있어 2024년에 기다렸지만 1년이 늦었다.

3년마다 작품 하나씩을 내던 일본의 호소다 마모루 감독도 코로나때문인지 최신작은 1년이 늦어 25년에 나왔고

AI 활용에 대한 미국 작가조합의 반대로 인해 마블 신작도 개봉일정이 밀렸던 것과 같은 이치일까


소개하는 맛집과 저자의 삶의 방식과 책의 서술 스타일은 모두 일치한다. 담백하고 슴슴하다. 역대급, 전국유일, 충격적인, 압도적인 같은 오염된 마케팅 용어 범벅도 아니다. 반드시 가야하는, 기간지역한정, 지금 아니며 종료되는 같이 당위성으로 우리를 압박하지도 않는다.


미슐랭이나 블루리본, 푸딘코 같은 지도기반 전문 가이드도 있고, 망고플레이트나 일본의 타베로그 같은 실시간 맛집 평점 사이트도 있으며, 책으로는 진수씨 성찬씨를 주인공으로 하는 허영만의 전국 맛집 만화도 있는데 이 책은 무엇이 특별할까? 


특별함이 없어서 특별하다. 수식어는 화려하나 결론은 없고 은유만 있고 정보는 없는 와인 시향투의 표현이 없다. 의도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향의 공존이라느니, 잔향에는 아직 열리지 않은 편지 봉투의 가장자리 같은 긴장이라느니, 첫 노트에는 막 비가 그친 뒤의 오래된 도서관 마루 바닥에서 헤진 가죽 제본의 라틴어 서적을 읽는 것 같다느니. 적어도 노포에서 오늘의 식사를 하는데는 어울리지 않는 톤이다.


VIP가 대접받는 고가의 파인다이닝에서 얼마나 비싸고 희귀한 식재료를 얼마나 숙련된 테크닉으로 조리했는지,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백년맛집 타이틀을 붙인 로컬 식당을 홍보하는 것도 아니고, 비룡왕처럼 심봉사의 눈도 뜨게 하는 메뉴를 자랑스럽게 내어주는 곳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책은 평범한 가운데 특별함을 표방한다. 이 책의 맛집 리스트를 도장깨기하듯 다닐 필요가 없다. 소개한 음식점은 물론 퀄리티 있는 메뉴가 있지만 충분히 대체가능한 곳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평범한 하루에 약간은 다른 지역에서 약간은 다른 음식을 먹는 풍경이 인상적인 책이다. 비유하자면 캐릭터는 한국판 고독한 미식가이고 분위기는 리틀 포레스트풍의 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묵묵히 노동하는 일상의 한 순간을 담아낸 이 책은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며 열심히 일한 하루의 끝에 적당한 식당을 찾아나가는 보통의 하루를 기록한 일기장이다.


피아노 조율에 대한 묘사는 특별함을 주되 과하지 않아 글 진행을 위한 좋은 에피타이저가 된다. 예컨대 "영창의 U121NFG, 잭 플랜지가 위펜에서 떨어져"(p42) 같은 전문 표현이 나오나 어렵지 않고 설령 이해하지 않아도 페이지를 넘기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그리고 "소스테누토 페달"(p204)은 삽화로 시각화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예컨대 "조율한 피아노의 현이 국수 같다"처럼 같은 이미지를 연결하다가 다음 장에서 바로 "배고프다"(p11-12)라고 하며 스피디하게 글이 이어지고

"멋들어진 피아노 곡의 전주곡처럼 김치와 매운 양념이 나왔다"(p13)고 담담히 표현하기도 하며

"뜬금없지만, 브라이들 테이프처럼 쉽게 끊어지지 않는 놀라운 걸 먹고 싶다 탱탱한 쫄면이라든가"(p91)라고 하며 나날의 우연을 어떻게 추수하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도란도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분명 사입면인데"(p38) "몇 년 전에 영동 스낵카랑 콜롬버스 스낵카는 폐업한 걸로 아는데"(p39) 같이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정보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먹는데 체할정도로 불필요한 음식 어원의 유래와 역사를 다루는 다른 맛집에 대한 책과는 달리 먹물의 언어가 없다. 먹는 동안에는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질문은 하되 머리를 써야하는 답변은 제공하지 않아 우물우물 씹는 미각의 순간의 집중할 수 있다.


"팥은 전라남도 나주평야가 주산지인데 전라북도에서 팥칼국수가 유래된 까닭이 궁금하다"(p51)

"풀짜장이 뭘까? 밀가루 풀? 걸쭉한 짜장면일까?"(p66)


그런 TMI는 모르고, 설령 안다 하더라도 내뱉지 않는다. 먹는 순간의 신비에 온전히 취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담이 없다. 과장된 화려함이나 현학적인 모습이 없어도 별 것 아닌 일상적인 하루에 깃든 경탄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식당을 알지만 특별히 단골도 아니고 위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1인분이 안되는 칡국수집에 가서 특별히 양해를 받아 먹기도 하고 분주한 점심시간에 혼자 자리를 차지할 수 없어 급히 먹기도 한다.


스낵카와 여인숙이라는 용어가 밀레니엄 이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무 일 없는 하루의 끝에 맥주 한 잔 기울이며 맥락없는 뜬금포 이야기를 나누듯 글이 진행된다. 기정떡을 좋아하나(p223) 망개떡은 모르는(p76) 아내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지고, 대학생이 된 딸에 대한 소소한 추억이 식탁에 반찬이 진설되듯 배경으로 깔리며, 부산맛집 여행을 함께 간 큰 딸이 으레 호기심 많은 청소년이 그렇듯 성인이 되기 전 술을 입에 대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일쌍다반사에 소소한 대화주제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오래 전 제주 이호테우해변 스낵카에서 우연히 만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던 대학생이 고객으로 연락해 다시 찾아주었을 때 모르는 사람이라고 담백하게 마무리하는 부분이 마치 <초속5센티미터>의 기찻길 엔딩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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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라는 거짓말 - 진정한 나를 찾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
앤드류 포터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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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은 자연스러운 본질이 아니라 사회 속의 지위 재화일 뿐이고


진정성 있는 태도란 팩트보단 감정과 인정 욕구를 드러낸다는 저자의 주장은 일리가 있어요


그런데 진정성에 대한 정의가 애매하고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말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양자 역학의 관측 효과처럼,

계속 포착하려고 해도 포착되지 않는다는 뜻인데

말의 정의를 둘러싼 유동하는 변화만 이야기하면


자기가 사용하는 용어의 확실함도 계속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스스로 젠가의 블럭을 빼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나아가, 진정성이라는 담론의 근본을 의심하고 용어를 해체하고 진정성이 숭배되는 문화의 피상성을 폭로하는데 그치고 아무런 대안이 없다면 너무 공허해요


저자가 주장하는 바, 진정성이 진실된 감정이 아니라는 말은 이해했어요

브랜드, 유기농 등등 외적으로 보여지는 모든 것이 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말도 이해했어요


다른 글에서처럼 "뭘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는가?  "책을 읽을수록 세상이 흐릿해진다"라는 말은 정확한 비판 포인트예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데 결국 자본주의를 다시 숭상하는 것 같아요 이율배반이죠 소로의 월든처럼 통나무집을 짓고 문명을 떠날 것도 아닌데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관점은 다소 도움이 되나 삐딱한 시선이 구원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공허감만 남긴다면 그 진술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무엇보다 진짜 나는 없고 내 선택과 책임에 의해 내가 끊임없이 만들어나간다는 구성주의적 관점은 비교문화적으로 여러 케이스를 비교하고 그래도 어느정도는 인식의 틀을 잡아줘야 하는데 비판적 숙고에만 머물고 사회경제문화 전반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포괄하는 정치한 언어로 엮어내는데까지는 실패한 것 같아요


그럼 표지독서만 해도 충분하고 리뷰글 읽어보는 것으로 끝이죠. 선언밖에 없고 알맹이가 없다면요


사회적 관계의 기호체계라고 할 것이라면 그 체계 전체를 니클라스 루만처럼 자기가 디자인해야하는데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은 선언적인 책에 불과한거죠


그래서 책 자체가 신기루를 비판하는 신기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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