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김영민 교수 강연에서 자기는 단 한 번도 무당에게 간 적이 없다면서

대부분 대화의 흐름이 이렇다고 지적한 바 있다

들어오자마자

"너네 집 감나무 있지!" 하고 기세좋게 기선을 잡는데

이에 대해

"헉! 어떻게 아셨어요?"라는 반응과

"아닌데요" 두 개로 나뉘게 된다

윽박이 먹히면 용한 점쟁이가 되고

윽박이 안 먹히면 "그럼 가서 심어!" 라고 말한다고

그럼 왜 감나무냐?

당시 감나무는 대부분의 집에 있었기 때문

요즘 같으면 이런 흐름이겠다

"너네 집 아이패드 있지!"

"헉! 어떻게 아셨어요?"

"아닌데요? 그럼 가서 하나 사!"

안나 카레리나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하나의 이유로 행복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행복하고 화목한 자는 점을 보러 오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자만 점을 보러 간다

삶의 형태는 제각기인데 이상하게도

고민의 종류를 비슷하다. 재물, 건강, 학업, 아이, 출산 등등

오래 사람을 대면하다보면 경험 데이터가 축적돼

걸음거리나 들어오는 것만 봐도 안다

이건 면접위원도 체험하는 거다. 20년 이상 어린 학생들이 문 열고 들어오는 것만 봐도 합격인지 아닌지가 갈린다. 20대는 공감 못하겠다고? 유치원생을 보면 얘가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이지 않은가?

게다가 고민은 나이, 직종, 성별에 따라 고민의 패턴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미혼 20대 여성이 아이의 학업 문제 고민을 갖고 올리는 없지 않은가?

대부분 애정, 학업, 진로문제겠지

기혼 40대 남성이 고민과 사별한 60대 여성의 고민이 같을리 없지 않은가?

어떤 의미에서 고민은 잡초와 같다. 자연적으로 계속 발생한다.

천연자원 같은 이 사람의 고민들을 어떻게 정제하고 처리하느냐로 돈을 번다

빙수가게, 과일통조림 공장, 방앗간, 정유산업이 돈을 버는 원리와 같다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자연에서 계속 과일의 열매가 맺히고 벼가 익고 원유가 펑펑 쏟아져 나온다

채취보다 가공단계에서 돈이 된다

사람의 고민도 끊임이 없고 이 사람이 가면 저 사람이 고민을 들고 온다

멍석 깔고 앉아 간판을 걸고 있으면 누군가는 찾아온다

잘 되는 자는 잘 상담해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자다

잘 안되는 자는 그걸 못하는 자다. 가끔 공장이나 방앗간도 망하니까

그러니 심리상담산업 전체는 대면을 통한 데이터 축적, 전달 미디어 선택이 관건이다

미디어는 집단별로 선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다르다

신점 =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한 대답을 좋아하는 사람(사주 같이 복잡한 분석 안 좋아하는 사람)

타로 = 시각문화에 익숙한 10-20대, 여성 타겟. 해석, 썰을 푸는 능력, 전달력이 관건

사주 = 4-60대 중년타겟 (특히 남성은 고급공무원, 교사, 공직 등 출세문제아니면 기업 인사과)


아까 어떤 SNS에서 오늘 자정 전에 자야하는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했다

이후에 좋은 일이 생기면 이 사람에 찾아가서 상담을 받고 수익을 올릴 것이다 좋은 일이 안 생기면? 사람들은 그냥 잊는다

그러니까 이런 프로모션은 하는게 이득이다

남발하면 신뢰를 잃지만

맞지 않아도 크게 잃은 건 없다

좋은 일이 없었다고 따지고 클레임 거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왜 좋은 기운 받는지 이유를 안 알려준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천문데이터에 근거해 오늘 23시 22분부로 명리학적 상징이 하나 바뀌는 것은 맞다. 무토에서 경금으로 바뀐다. 지난 달 진월부터 1달 이상 무토 구간이었기 때문에 에너지 흐름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무작위로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사령 구간의 변경은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고, 꽃이 피고 지는 정도의 우주의 에너지 변화를 동양학적 관점에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물리학적 현상변화의 표현이다. 어떤 사람은 여름에 좋고 어떤 사람은 겨울에 좋은데 모두 동등하게 일괄적으로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 좋은가? 자정 전에 자면 다음 날 일찍 일어나서 개운하다. 생리학적으로 말하면 23-01시가 멜라토닌 분배가 잘 되어서 다음날 컨디션이 좋다.

그정도의 말이다


당연히 11시 전에 자는 건 좋은 일이지

그런데 다들 너무 많은 기대를 하고

"좋은 기운 받는다"에 투머치 의미부여를 한다.

물론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그 이유는 모르고, 같은 시도를 한 수많은 사람들 모두 그런 결과를 얻는 건 아니다. 좋은 일이 생긴 이유는 알 수 없다.

평소 행실이 좋고 베풀어서 적덕했던 카르마의 인과일 수도

원래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좋은 일이 생긴 것일 수도

우연에 의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일 수 있다

이는 마치 약제 효과를 트레킹하는 어려움과 같다

A약을 먹으면 생기는 B효과에 대해, 생길 가능성이 높다,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반드시 A면 B다라는 엄밀한 의미의 인과관계는 어렵다는 말이다

왜냐? 저마다 백그라운드가 다르고 생활을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없는 등

약섭취라는 변인 외에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를 아예 굶기고 약 하나만 먹이는 극한실험을 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니

오늘 11시 이전 잠자면 → 좋은 기운 받는다

라는 말은 여러 부분에서 미싱링크가 많은 것

무슨 좋은 기운? 모두가? 왜? 내가 원하는 그 좋은 일? 아님 그냥 꿀수면?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런 말 듣고 싶지 않아하고 설명도 원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은 그냥 행운과 복이니까

그러니 그냥 선승처럼 알쏭달쏭한 말 던지고, 점쟁이처럼 단답을 외친다

"좋은 일 생긴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와우!" "내게도!"

실제로는 시간이 흐르고 물리적 현상이 바뀌고 기온이 오르고 날씨가 변화하며 사람들의 에너지파장이 바뀌는 것

좋은 일이 생기면 "용하네!"

안 생기면 "아쉽네!" 그리고 망각

원래 광고 카피라이팅은 핵심만 전달해야지

설명이 필요없다. 참 좋은 프로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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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네 자릿수 버스만 보다가


천안의 2번 버스를 보니 외눈박이 퀴클롭스같다


2번이라고 확실하고 강력하고 단단하게 말하고 있어서, 아.. 아.. 알겠어 너 2번이야 인정할게, 라고 말해야할 거 같다



수원 동탄을 잇는 2층 버스는 LCC같이 윗층 좌석수가 곧 수익같다. 계란 한 판의 느낌.


의왕 톨게이트에서 환승하는 시스템은 참 신선하다. 수원 여러 곳에서 일단 허브로 대동단결했다가 다른 곳으로 퍼질 수 있는 간이버스터미널. 버스노선에만 익숙해지면 편할 듯.


비행기 파일럿은 플라잉 에어버스 공유차 운전사같다. 비행기 기종은 같아도 노선과 편수가 달라 매번 셰어한다. 기장, 부기장도 서로 운전석을 셰어한다.


평생 자차를 가질 수 없고 회사차량만 얼굴 모르는 여러 동료와 셰어해야하는 운명. 더러 개인 제트 파일럿이 되었다는 소문도 들려오나.. 대대장 운전병이나 회장 수행기사 같은 것이지 엄밀한 의미의 자차는 아니다

개인이 구매하기에 너무 비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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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 - 노르웨이부터 아이슬란드까지 신비롭고 환상적인 북유럽 동화 32편 드디어 시리즈 6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 지음, 카이 닐센 그림,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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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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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미술관에 다녀왔다


의외로 멀지 않다. 반포에 있는 서울경부고속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8900원이다. 이정도면 왠만한 서울 외곽지역 고양, 용인, 안산 가는 것과 똑같은 시간이다. 버스전용 차선으로 130km로 달려서 그런가보다. 경부고속 타고 천안아산까지 적토마처럼 우다다 내달린다.


생각보다 가까워 놀랐고, 생각보다 번화가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젊은 인구가 받춰주고 유동인구와 소비인구가 꽤 되는 중소도시의 활기참이 느껴진다. 신세계 백화점 안에는 노출콘크리트와 인더스트리얼 풍의 천장 아래 서울 유명 맛집들이 입점해있고, 참깨번에 패티퀄로 유명한 다운타우너 햄버거나 눈 앞에서 츄뤽~우쮝~촵하고 자몽을 착즙해 유기농시럽과 섞어주는 아메리칸 트레일러도, 예산사과로 왕건이가 알알이 씹히는 사과파이 매장도 눈에 띈다. 중산층이 모이는 힙한 신세계를 마주보고 도로 맞은 편에는 빌딩에는 온갖 병원부터 빵집까지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업체끼리 아웅다웅 어깨를 겨누며 웅성웅성거리고 있다. 대기업과 자영업이 시장을 잘 나눠가진 좋은 예시처럼 보인다. 천안터미널과 천안역의 중심부를 약간만 벗어나도 자전거, 아시아식료품점 등 베트남 간판이 꽤 보인다. 글로벌화되는 세계에서 수도의 중심부는 선진국 중심으로 국제화하고 외곽은 개도국 중심으로 국제화한다. 충청은 조선의 지명이었으니 이제 아쉽지만 충주는 버리고 청주는 아직 건재한 편이니 놔두고 천안, 세종을 묶어서 불러야할 것 같다. 천세청? 천세도? 일산에서는 특이하게 아빠와 10대 후반 딸아이가 같이 산책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천안에서는 할머니와 10대 초중반 아이들이 같이 있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띈다. 인구는 많은데 나이가 들어가는 인구이고 4-50대는 친정엄마에게 애 맡기고 돈 벌러 다른 지역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아라리오갤러리천안과 천안시립미술관에 들렀다. 일단 천안시립부터. 가는데 버스 405타고 35분 정도 걸린다. 시립미술관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시외곽에 위치해있다. 보는데 20분도 안 걸린다. 돌아오는 버스는 유관순사적지 종점을 찍고 귀환하기에 나를 데려다줬던 바로 그 버스가 다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타면 시간이 절약된다. 지방에서 버스는 시간당 1대 있는 경우가 많이 놓치면 노답. 캐치볼이나 릴레이 같은 감각이다. 부메랑을 던지고 그 위에 올라탔다가 중간에 내렸다가 부메랑이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다시 올라타서 원래 던진 자리로 돌아가는 셈



이번 전시는 AI에 대한 테마다. 8명의 작가 작품을 볼 수 있다. 각 작가별 특징에 대해 대충 적어보면 이렇다



노상호의 작품은 인터넷 이미지의 홍수를 편집해 네모난 화면에 살짝 어긋났는데 전체적으로 맞는 4프레임을 보여주면서 이미지의 진실성에 대해 질문하고,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를 조합해서 불타는 눈사람 캐릭터를 다수 배치하기도 한다.



정아사란의 작품은 물결 포말을 물성으로 보여준 작품을 보여주며 부유하는 가상세계와 실제의 물질과 관계에 대해 질문한다. 정말 바다가 출렁이는면서 윤슬이 빛나는가? 아니면 작품에서 보여져서 그렇게 보이는가



김다윤은 타인과 교류, 군중 사이에서 스침을 회화로 나타내며 인터넷 시대의 소통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김보원은 동공이 움직이지 않는 리얼타임엔진으로 만든 3D 사람과 대화를 통해 AI 가상아바타와의 소통과 감정 교류가 가능한지 질문한다





김웅현은 엑스포와 관련된 소품을 모두 불러오고 세대별로 사람별로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이벤트를 다 다르게 기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00년대 이후에 태어나 93 엑스포를 경험하지 못한 10대 여아에게 VR기계로 체험시킨 영상작품도 만들었다



김현주는 LLM모델, 데이터마이닝, 코퍼스와 시각화를 활용한 작품을 보여주었고




이아영은 장지에 수묵화를 그리되 정확히 무엇을 나타내지 않는 사물을 그려 관객이 이게 뭐지? 하면서 계속 들여다보게한다




임현하은 디지털 이미지의 휘발성과 알고리즘 광고에 의해 제약당한 소비자 선택권에 의문을 제기하며 온라인광고를 자수로, 천으로 엮어 노동집약적인 거대한 손바느질 설치작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인사이트는
1) 전시나 작가가 AI라는 테마를 완전히 소화하지 않았다. 디지털, 온라인, 상품소비, 군중 속의 고독, 디지털 아바타, 사이버세계의 교류는 10-20년 전의 이슈다. 말이나 기술 일부만 AI로 치환한듯하고, 정말 AI에 대한 특별한 인사이트는 없었다

2)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왜 그 지점을 비판하기 위해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득이 없다.

3) 디지털 소외는 오프라인 대면이 시작점, 벤티지 포인트라는 전제에서 출발했고, 세대 간 시선의 차이는 기억의 부재가 한계라는 전제에서 출발했고, 광고알고리즘에 의한 선택은 제한이 수동성이라는 이분법에서 출발했고, 맞춤형 콘텐츠 착취문제는 개인화는 억압이라는 프레임에서, 디지털 자아의 인간미 부족은 눈을 통한 교감이 공감이라는 프레임에서, 가상 세계 속 정서적 교류 약화는 가상현실의 관계는 가짜라는 인식에서, 피상적 소비와 이미지 과잉은 가벼움은 의미없다는 인식에서,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인식은 디지털은 덜 진실하다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모두 다 일종의 고정관념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이고 그 편견은 AI가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제의식이다. 그래서 질문과 그에 대한 해결이 고루하고 올드해보인다.

공감은 눈에만 있는가? 공감의 기준은 시대마다 바뀌고 기계와 공감하기 위해 인간이 아바타화해서 그들의 무대에서 공감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눈이 아니라 프레임, 색변화 같은 비신체적 방식으로 공감할 수는 없는가?

느린 관계만이 진짜인가? 익명기반 커뮤니티 속에 공감은 없는가?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소비 속 짧게 모였다가 헤치는 강렬한 연대는 반드시 잘못되었나?

가벼우면 반드시 의미없는가? 단기간 소비되었다 바이럴은 그치지만 데이터화되어서 누군가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인터넷밈도 축적되고 아카이빙되면 의미있지는 않은가? 짤 줍줍, 밈, 반복재생gif 등에 담긴 집단 무의식이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포착하면 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물질적 실재만 영향력있는가? 촉감이 아닌 데이터 상의 연결정도, 정서적밀도도 사회적 실재를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소외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많았는데 대안은 없었지 않았나? 과계의 깊이다 단절과 연결의 이분법으로만 설명되는가? 연결 방식의 질적 전환은 안되는가? 오래된 인연만이 연결인가? 가까이있는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지 않은가? 인간 대 인간의 연결을 넘어 인간-비인간, 비인간-인터페이스간의 새로운 관계모델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손에 닿는 물리적 거리 대신 반응성을 정서적 연결의 새로운 척도로 삼아볼 수 있지 않을까?

사용자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고 능동적 주체성이 상실된다는 비판, 필터링과 알고리즘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비판은 누구나할 수 있지 않은가? 억압이 아니라 예측된 선택이라는 새로운 체계로 받아들이면 안되는가? 어차피 이전의 삶도 자본의 제약, 사회적 지위의 제약 속에 조건부 자율성 안에서 움직이지는 않았나? 최대치의 자유라는 것은 상상된 개념, 허상이 아닌가?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요즘 들어

1) 노동집약적 작품

- 여기에선 바느질

2) AI, 최신 테크놀로지 활용 작품

- 여기에선 리얼 타임 엔진 3D 모델 + 공간 이동 영상작품

- 여기에선 VR기기

- 여기에선 LLM, 시각화, 데이터마이닝, 머신러닝, 드론

3) 기억의 정치학

- 여기에선 할머니 회원증, 엑스포 소품 등 당시 관련 자료 모두 소환


이런 테마가 많이 눈에 띈다.



내일도 멀리 갈거다. 그래서 나는 이제 기생수나 마저 읽다가 자야겠다. 오늘은 영화를 못 봤다. 다른 날 두 편 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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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6)


과고에는 천상계부터 축생까지 계급도가 있다. 외고나 예고는 대치, 분당 등 지역별로 그룹과외가 형성되어 있고 학부모라인에서 단단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예고는 개인 재능이 뛰어날 수 있는데 실기샘 화실을 다니지 않으면 성적이 안 나오는 인맥문제가 있고, 과고의 문제는 너무 실력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서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아예 머리가 너무 뛰어나거나, 고급고액과외를 통해 지식을 주입받거나, 선행을 너무 많이 했거나 이 셋의 경우가 아니면 계급의 하위권이다. 그냥 지방 일반중에서 과학과 수학에 흥미가 있고 주위에 비해 조금 잘하는 것 같아서 과고를 진학하는 경우 대부분 하위권 성적 깔아주는 라인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선택했기 때문에 쉬이 자퇴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예민한 사춘기를 열등감에 보내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교과서만 봐서 문제풀이가 안되고 교과서 하나가 완벽하지 않고

내신이나 수능에 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분명 나는 중학교 때 잘했고 중학교 때 하던식으로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몇 번씩 읽고 선생님이 주는 자료도 잘 이해하고 수업 때 졸지도 않았는데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왜 쟤네들은 그게 가능할까?


부모들에게 조금 쉽게 비유해보자. 요리클래스를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어머님, 이건 강력분이구요 이건 계량컵이예요 이건 노른자고 흰자는 이 도구로 톡하면 분리된답니다 쉽죠? 흰자에는 단백질이 많구요 (끄덕끄덕)


자 그럼 이제 창의적으로 만들어보세요!


네? 뭘 만들라구요?


주변을 돌아보니 각자 크루아상, 마카롱, 수플레, 크레이프,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다.


아니 어떻게??


저쪽에서 들려오는 말 "너 뭐할거야?" 아 나는 오렌지 리큐어를 넣어서 그랑 마르니에 수플레를 만들어볼려고 "와 그거 좋다. 

나는 바닐라 크렘 앙글레즈를 띄우고 머랭을 얹어 플로팅 아일랜드를 해보려고" "오 좋은 생각이야"


???!!



"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7)


여학생은 물리화학보다 생명과학쪽을 더 친근해하기 마련이다. 일단 수식보다는 단어가 좋다.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여아들의 뇌가 남아들의 뇌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언어계통이 발달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 침묵하고 있는 남아들에 옆에서 여아들이 재잘재잘 말하는 친숙한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생명과학의 시작부분이 다른 과목에 비해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쉽다. 모르면 외우면 된다고도 생각한다.


지난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생명과학은 2단원 인체파트는 일상생활 용어라서 할만하다고 생각하다가 3단원에 축!삭!돌!기!에 와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일본이 네덜란드 해부학서를 통해 한역한 서양의학용어에 그리스라틴어 기반 영어가 어지럽게 난립한다. 그리고 그 용어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좋은 점은 한글의 풍부한 모음덕분에 어떻게 읽는지는 대략 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어나 일본어에 비해 원어에 근접하다는 점.


여기서부터는 단어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그리고 아무도 단어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학생들은 절망한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나라 책, 신문, 전시에서는 보통 용어 설명을 안하고 넘어가는 것과 달리 일본 책, 신문, 전시는 개념정의와 그 독음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데 그게 학문의 출발이자 설명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무슨 뜻인지, 어디에서 유래한 말인지 왜 그렇게 쓰는지 써있지 않다. 옛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기본 주기율표 중 규소가 실리콘인데, 왜 규소냐? 에 대한 설명이 없다.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냥 문제풀기 바쁘다. 사지선다에 없다? 내신에 안나온다? 그냥 넘어간다.


규소가 실리콘인 이유는 이렇다. 일본이 네덜란드어 부싯돌 keisteen (슈테엔은 영어의 stone과 같다)의 kei를 硅로 음차했기 때문이다. 이 한자硅를 일본인은 케이라고 읽지만 우리는 규로 읽기에 일본은 kei+원소 우리는 규+원소=규소가 된 것이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실리콘이라는 서양말도 원래 단단한 부싯돌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문제가 과학학습 내내 반복된다. 그나마 물리는 학문의 중흥기를 거쳐 안정화된 학문이라 정교하고 엄밀한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헛소리를 안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 막 발달하고 있는 청소년기의 생물학은 난리다. 그래도 암기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해도 안되는 암기할 게 너무 많다.


문제의 그 축삭돌기 다음 페이지의 일부만 읽어봐도 어려운 한자기반용어와 어려운 그리스라틴어기반 영어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항작용은.. 교감 신경의 말단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고 부교감 신경의 말단에서는 아세틸콜린이 분비된다.


와우! 그리고 학생들은 이 말이 무엇인지 모른 채

교감신경->노르

부교감->아세

이렇게 노트필기 하고 외우기 바쁘다

선생님도 진도에 치여서 그렇게 가르친다.


지방 여고 이과는 내신1등급인데 수능3등급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해 최저학력기준을 겨우 채우거나 채우지 못해 인서울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교에 직접 가보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된다




지방 여고 이과는 내신1등급인데 수능3등급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해 최저학력기준을 겨우 채우거나 채우지 못해 인서울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교에 직접 가보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된다


여학생들이 물리화학에 잼병이라 생명을 전략과목 삼는데 시험 때 단어만 외워서 시험을 본다. 그래도 학생들도 말이 너무 어려우니까 수업시간에 전멸이라 가능하다. 내신따기가 과고나 강남지역 고교에 비해 쉬운 이유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다.

아세틸콜린은 아세틸기에 콜린이 결합한 에스터 화합물이라는 뜻이고

노르에피네프린의 노르는 하나가 적다는 말로


에피네프린(혹은 아드레날린)에서 메틸기 하나 뗀 구조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리스라틴어 어원도 어렵지 않고 화학식 상으로 의미가 있는데 (아세틸기 CH₃CO 유기산이니까)


아세틸+콜린이 아니라 아세~/스틸/콜라!

노르웨이에서 피넛버터 프린스!


어이없게 이런식으로 외우고있다. 아재개그로 재밌게 외우게하는 선생님이 있거나 스스로 개발했다면 그것도 능력인데 정확한 어원이해없이 무작정 암기하는 것이다


왜냐.. 아무도 설명 안해주기 때문. 교과서에 없기 때문. 시험범위가 아니기 때문. 교과서는 너무 양을 늘리면 수능범위 늘린다고 클레임먹기 때문에 늘릴 수 없기 때문.


이런 식으로 개념은 적은데 알아서 이해하게 냅두고, 갑자기 엄청 어려운 문제풀이를 하는 기형적 구조가 탄생한다


왜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가? 과학을 과학답게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가. 과학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가


1:1 비교는 어렵지만 대학수준 교재인 Campbell Biology12판의 해당부분을 보면 훨씬 더 자세하게 써있고 , 맨 뒤 글로서리에는 발음법과 정의를 다시 써놔서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그래서 차라리 영어로 읽는게 낫다고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더 잘 쓰여졌으니까 책만 읽어도 이해가 되니까 (물론 2천페이지라는 게 함정)


생물학을 외국에서 배운 사람과 한국에서 배운 사람은 일단 용어사용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전문지식은 한국어조사만 섞어서 교포처럼 사용하게 되고 주변사람들한테 잰채한다, 재수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일생생활 대화를 하는 것과 지식전달을 하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이다.


오늘 밤 참 달이 아름답네요를

tonight 참 the moon이 beautiful하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도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페인 때리면 prefrontal cortex 활성 전에 adenosine receptor block 생겨서 homeostatic sleep pressure가 인위적으로 낮아지고 결국 circadian entrainment에 disruption 오거든


이 말은 그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마시면 

뇌가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즉, 집중력 담당 전두엽이 준비되기 전에)

아데노신 수용체가 카페인에 의해 막혀서

원래 자연스럽게 줄어들어야 할 수면압력이 억지로 낮아지니까

생체 리듬(24시간 주기 조절)이 어긋날 수 있다는 뜻


간단히 말해 잠에서 완전히 깨기 전에 커피 마시면 과학적으로 해롭다는 말이다


이런 말에 상대는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맞아맞아 나 요즘 밤에 블루라이트 계속 expose 돼서 suprachiasmatic nucleus 완전 desynchronization(디셍크)됐잖아 그럼 pineal gland에서 melatonin synthesis 제대로 안 되고 결국 sleep latency 늘어나지. 그리고 그게 장기적으로 HPA axis에 chronic stress 주면서 hippocampal atrophy로 이어지고 있는 거 같아 웹툰에도 보면 의사끼리 영어단어에 한국어조사만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에피네프린! 이라고 해야지 심근강화 및 혈관수축 작용제! 라고 긴 말을 쓰기도 어렵고,


교과서가 영어단어를 그냥 음차해서 쓰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차피 논문도 영어로 쓰는데 영어가 익숙해서 이기도 하다

그럼 애초에 왜 한자용어로 번역한거야?

왜 배울 때는 쉽게 안 가르쳐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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