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6)


과고에는 천상계부터 축생까지 계급도가 있다. 외고나 예고는 대치, 분당 등 지역별로 그룹과외가 형성되어 있고 학부모라인에서 단단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예고는 개인 재능이 뛰어날 수 있는데 실기샘 화실을 다니지 않으면 성적이 안 나오는 인맥문제가 있고, 과고의 문제는 너무 실력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서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아예 머리가 너무 뛰어나거나, 고급고액과외를 통해 지식을 주입받거나, 선행을 너무 많이 했거나 이 셋의 경우가 아니면 계급의 하위권이다. 그냥 지방 일반중에서 과학과 수학에 흥미가 있고 주위에 비해 조금 잘하는 것 같아서 과고를 진학하는 경우 대부분 하위권 성적 깔아주는 라인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선택했기 때문에 쉬이 자퇴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예민한 사춘기를 열등감에 보내게 된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교과서만 봐서 문제풀이가 안되고 교과서 하나가 완벽하지 않고

내신이나 수능에 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문제점이 있다. 분명 나는 중학교 때 잘했고 중학교 때 하던식으로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몇 번씩 읽고 선생님이 주는 자료도 잘 이해하고 수업 때 졸지도 않았는데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왜 쟤네들은 그게 가능할까?


부모들에게 조금 쉽게 비유해보자. 요리클래스를 듣는다고 생각해보자. 어머님, 이건 강력분이구요 이건 계량컵이예요 이건 노른자고 흰자는 이 도구로 톡하면 분리된답니다 쉽죠? 흰자에는 단백질이 많구요 (끄덕끄덕)


자 그럼 이제 창의적으로 만들어보세요!


네? 뭘 만들라구요?


주변을 돌아보니 각자 크루아상, 마카롱, 수플레, 크레이프,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다.


아니 어떻게??


저쪽에서 들려오는 말 "너 뭐할거야?" 아 나는 오렌지 리큐어를 넣어서 그랑 마르니에 수플레를 만들어볼려고 "와 그거 좋다. 

나는 바닐라 크렘 앙글레즈를 띄우고 머랭을 얹어 플로팅 아일랜드를 해보려고" "오 좋은 생각이야"


???!!



"교과서만 읽었어요"의 진실(7)


여학생은 물리화학보다 생명과학쪽을 더 친근해하기 마련이다. 일단 수식보다는 단어가 좋다.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여아들의 뇌가 남아들의 뇌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언어계통이 발달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 침묵하고 있는 남아들에 옆에서 여아들이 재잘재잘 말하는 친숙한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생명과학의 시작부분이 다른 과목에 비해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쉽다. 모르면 외우면 된다고도 생각한다.


지난 포스팅에도 말했지만 생명과학은 2단원 인체파트는 일상생활 용어라서 할만하다고 생각하다가 3단원에 축!삭!돌!기!에 와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일본이 네덜란드 해부학서를 통해 한역한 서양의학용어에 그리스라틴어 기반 영어가 어지럽게 난립한다. 그리고 그 용어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단 한 가지 좋은 점은 한글의 풍부한 모음덕분에 어떻게 읽는지는 대략 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어나 일본어에 비해 원어에 근접하다는 점.


여기서부터는 단어가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그리고 아무도 단어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학생들은 절망한다. 아이고 아이고


우리나라 책, 신문, 전시에서는 보통 용어 설명을 안하고 넘어가는 것과 달리 일본 책, 신문, 전시는 개념정의와 그 독음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데 그게 학문의 출발이자 설명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무슨 뜻인지, 어디에서 유래한 말인지 왜 그렇게 쓰는지 써있지 않다. 옛날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기본 주기율표 중 규소가 실리콘인데, 왜 규소냐? 에 대한 설명이 없다.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냥 문제풀기 바쁘다. 사지선다에 없다? 내신에 안나온다? 그냥 넘어간다.


규소가 실리콘인 이유는 이렇다. 일본이 네덜란드어 부싯돌 keisteen (슈테엔은 영어의 stone과 같다)의 kei를 硅로 음차했기 때문이다. 이 한자硅를 일본인은 케이라고 읽지만 우리는 규로 읽기에 일본은 kei+원소 우리는 규+원소=규소가 된 것이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실리콘이라는 서양말도 원래 단단한 부싯돌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문제가 과학학습 내내 반복된다. 그나마 물리는 학문의 중흥기를 거쳐 안정화된 학문이라 정교하고 엄밀한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헛소리를 안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제 막 발달하고 있는 청소년기의 생물학은 난리다. 그래도 암기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해도 안되는 암기할 게 너무 많다.


문제의 그 축삭돌기 다음 페이지의 일부만 읽어봐도 어려운 한자기반용어와 어려운 그리스라틴어기반 영어가 섞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항작용은.. 교감 신경의 말단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고 부교감 신경의 말단에서는 아세틸콜린이 분비된다.


와우! 그리고 학생들은 이 말이 무엇인지 모른 채

교감신경->노르

부교감->아세

이렇게 노트필기 하고 외우기 바쁘다

선생님도 진도에 치여서 그렇게 가르친다.


지방 여고 이과는 내신1등급인데 수능3등급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해 최저학력기준을 겨우 채우거나 채우지 못해 인서울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교에 직접 가보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된다




지방 여고 이과는 내신1등급인데 수능3등급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해 최저학력기준을 겨우 채우거나 채우지 못해 인서울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학교에 직접 가보면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된다


여학생들이 물리화학에 잼병이라 생명을 전략과목 삼는데 시험 때 단어만 외워서 시험을 본다. 그래도 학생들도 말이 너무 어려우니까 수업시간에 전멸이라 가능하다. 내신따기가 과고나 강남지역 고교에 비해 쉬운 이유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아니다.

아세틸콜린은 아세틸기에 콜린이 결합한 에스터 화합물이라는 뜻이고

노르에피네프린의 노르는 하나가 적다는 말로


에피네프린(혹은 아드레날린)에서 메틸기 하나 뗀 구조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리스라틴어 어원도 어렵지 않고 화학식 상으로 의미가 있는데 (아세틸기 CH₃CO 유기산이니까)


아세틸+콜린이 아니라 아세~/스틸/콜라!

노르웨이에서 피넛버터 프린스!


어이없게 이런식으로 외우고있다. 아재개그로 재밌게 외우게하는 선생님이 있거나 스스로 개발했다면 그것도 능력인데 정확한 어원이해없이 무작정 암기하는 것이다


왜냐.. 아무도 설명 안해주기 때문. 교과서에 없기 때문. 시험범위가 아니기 때문. 교과서는 너무 양을 늘리면 수능범위 늘린다고 클레임먹기 때문에 늘릴 수 없기 때문.


이런 식으로 개념은 적은데 알아서 이해하게 냅두고, 갑자기 엄청 어려운 문제풀이를 하는 기형적 구조가 탄생한다


왜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가? 과학을 과학답게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가. 과학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는가


1:1 비교는 어렵지만 대학수준 교재인 Campbell Biology12판의 해당부분을 보면 훨씬 더 자세하게 써있고 , 맨 뒤 글로서리에는 발음법과 정의를 다시 써놔서 이해하기 쉽게 쓰였다


그래서 차라리 영어로 읽는게 낫다고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더 잘 쓰여졌으니까 책만 읽어도 이해가 되니까 (물론 2천페이지라는 게 함정)


생물학을 외국에서 배운 사람과 한국에서 배운 사람은 일단 용어사용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해도, 전문지식은 한국어조사만 섞어서 교포처럼 사용하게 되고 주변사람들한테 잰채한다, 재수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일생생활 대화를 하는 것과 지식전달을 하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일이다.


오늘 밤 참 달이 아름답네요를

tonight 참 the moon이 beautiful하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도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카페인 때리면 prefrontal cortex 활성 전에 adenosine receptor block 생겨서 homeostatic sleep pressure가 인위적으로 낮아지고 결국 circadian entrainment에 disruption 오거든


이 말은 그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마시면 

뇌가 완전히 깨어나기도 전에(즉, 집중력 담당 전두엽이 준비되기 전에)

아데노신 수용체가 카페인에 의해 막혀서

원래 자연스럽게 줄어들어야 할 수면압력이 억지로 낮아지니까

생체 리듬(24시간 주기 조절)이 어긋날 수 있다는 뜻


간단히 말해 잠에서 완전히 깨기 전에 커피 마시면 과학적으로 해롭다는 말이다


이런 말에 상대는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맞아맞아 나 요즘 밤에 블루라이트 계속 expose 돼서 suprachiasmatic nucleus 완전 desynchronization(디셍크)됐잖아 그럼 pineal gland에서 melatonin synthesis 제대로 안 되고 결국 sleep latency 늘어나지. 그리고 그게 장기적으로 HPA axis에 chronic stress 주면서 hippocampal atrophy로 이어지고 있는 거 같아 웹툰에도 보면 의사끼리 영어단어에 한국어조사만 섞어서 이야기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에피네프린! 이라고 해야지 심근강화 및 혈관수축 작용제! 라고 긴 말을 쓰기도 어렵고,


교과서가 영어단어를 그냥 음차해서 쓰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차피 논문도 영어로 쓰는데 영어가 익숙해서 이기도 하다

그럼 애초에 왜 한자용어로 번역한거야?

왜 배울 때는 쉽게 안 가르쳐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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