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라 아츠시의 어른들을 위한 인상파 강의(2024년) 읽었다. 아직 번역 안 된 책인데 일본 서양화 관련 전시 굿즈 코너에 늘 있길래 집어 왔었다.


인상주의에 대해 출신계층 사회적 분석, 안료 구입와 화가의 생활 같은 경제적 문제, 화랑의 전략, 콜렉터의 서포트, 우정과 노선대립, 유대인 등의 정치 지향 등 여러 각도에서 인상주의에 대해 다루어서 재밌었다.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언어권의 책을 읽는 이유는 논점과 정보가 달라서다. 한일중영프 모두 다른 방식으로 인상주의를 다룬다.  특히 각 언어별로 왜 자국에서 인상주의가 인기를 끄는지에 대한 분석을 읽는 게 흥미롭다. (다른 언어권 책은 나중에 다뤄보자 오늘은 일본어만)


왜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가? 에 대해 저자는 20년 전 대학수업에서 제일 좋아하는 서양화가 베스트3을 꼽으라는 설문조사에 고흐, 모네, 르누아르이 나왔다며 고흐를 제외하고는 모두 인상주의였다고 운을 뗀다. 왜 그럴까


인상파의 작품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일본 미술관에 소장된 서양화가 중 인상파가 중심이기에 전시가 자주 열려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국립서양박물관, 오오하라 미술관, 아티존미술관 등.. 그리고 70년대 이후 열린 개인전 중 다수가 모네와 르누아르였다고도 설명한다.


그런 맥락을 재서술하며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일부 생략하고 번역한다.


"단적으로 말해 인상파 회화의 이해하기 쉬움과 친근함이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략) 현실의 인물과 일상을 그린 작품이기에 다가가기 쉽고 감각적으로도 쉽게 수용된다. (중략) 근대 도시 파리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에 경치 좋은 세느 강가에서 여가를 즐기는 생활양식을, 밝은 색채와 생생한 붓놀림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해낸 화가들이 바로 인상파가 아니겠는가. 그것은 곧 시민이 주역이 되는 근대 사회에 걸맞은 회화였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에까지 이어지며 보편적인 확산을 얻은 것이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해하기 쉬움 2) 친근함 3) 현실과 일상을 그려 다가가기 쉬움 4) 감각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음 5) 여가를 즐기는 밝은 생활 스타일 6) 긍정적으로 묘사 7) 근대시민사회에 걸맞음 8) 오늘 사람들의 감성에 맞음


저자의 분석에 프랑스와 같은 선진서구문명에 대한 일본의 동경이 있었다는 점 하나만 추가하면 완벽할 것 같다.


한국에서 인상주의가 흥행한 이유는 가까운 일본에서 이런 유행이 유입되었다는 점을 하나 더 추가해보면 좋을 거 같다.


그런데 하나 짚어 볼 부분은 일본 내 소장 인상파 화가가 많아 전시를 많이 열 수 있었다는 데에 대한 통계적 심리적 포인트다. 반드시 인상파가 아닐 수도 있었다. 무슨 말이냐?


통계학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일본에서 관람자가 접하는 작품군은 전세계의 인상파 작품이라는 모집단이 아니라 일본 미술관에 집중 소장된 일부 표본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 표본이 인상파라는 특정 방향으로 치우쳐 있으니 표본추출편향(sampling bias) 혹은 더 넓게는 모집단 대표성 부족(lack of population representativeness) 문제로 이어진다.


이는 심리적으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 연결된다. 인상파 작품을 많이 보게 된 사람들이 전시 후 인상파는 좋다고 말하고 다녀 그 인식이 고정되고 믿음을 반복적으로 강화한다. 많이 접할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 가 크게 작동한다.


애초에 인상파를 좋다고 생각한 마츠카타 코지로 같은 콜렉터의 취향이 반영되어 작품소장에 영향을 미치고 미술관에 인상파 작품이 많으니 전시도 당연히 많이 할 수 있으며 70년대 이후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열렸기 때문에 시간적 누적효과에 따라 대중의 인식에 자리 잡고 확증편향이 된다.


일본에 공산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면 예술과 정치혁명을 동시에 꾀한 리얼리즘이 지배를 이루었을 수도 있고 힐마 아프 크린트 같은 상징주의가 되었을 수도 혹은 야수파가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렇게 다른 경로의 역사가 있었을 수 있다는, 멀티버스의 대체적 시간선 관점에서 보자면 인상주의의 내적 특징인 보기 쉽다는 설명 또한 쉽게 반박될 수 있다. 프랑스에 가 본 적 없는 일본인들이 저 머나먼 서양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사실 공감하기는 어려웠을 수 있는데 자주 보니까 익숙해졌다. 또한 실제 프랑스에 갔다 온 당대 부자나 소설가 같은 인플루언서들의 편집된 여행기를 읽으며 동경으로 마음이 부풀어갔다. 프랑스가 아니라 얼마든지 로마에 대한 로망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동경은 아메리카나 옛 중국에 대한 그리움도 비슷한 맥락이다. 근대시민사회라든지 여가를 즐기는 밝은 생활 양식 같은 이야기는 모두 부수적이다.


결국 많이 갖고 있어 많이 보아 익숙해지고 선택편향, 빈도환상으로 연결된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일 수록 그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과도 동일한 지점이다. 첫 문단의 대학생들이 베스트3으로 꼽는 서양화가는 모네와 르누아르라는, 서양회화=인상주의=모네와 르누아르라는 생각의 지름길(mental shortcut)은 서양회화라는 모집단에서 일부 추출된 인상파, 에서 다시 일부 추출된 모네와 르누아르라는 경로를 따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흔히 말하는 “보기 쉽다”,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평가는 사실 작품이 탄생할 당시의 특성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 부여된 사후적 설명에 가깝다. 더 나아가 시각을 확장해보자. 어제 쓴 글에서 밝혔듯, 최근 젊은 세대는 디지털 공간을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2050년의 인상주의는 팝아트가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롯데뮤지엄의 옥승철전 같은 애니메이션적 감각을 지닌 팝아트 작가의 전시도 “보기 쉽다”, “친근하다”, “현실과 일상을 다루어 접근하기 쉽다”라는 인상주의 인기이유와 같은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인상주의의 인기요인을 설명하는 표현은 그러므로 어디에서든지 쓸 수 있는 만병통치약(panancea)이자 이현령비현령적 표현인 것이었다. 마치 어느 온천에 가도 류마티즘부터 온갖 병에 약효가 있다고 표현하듯, 두부든 채소등 어느 건강식 음식점에 가도 청소년 발달부터 청년의 피로, 갱년기 여성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효과가 좋다고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 쓴 글에서 밝혔듯, 최근 젊은 세대는 디지털 공간을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들에게 받아들이기 쉬운 얼굴은 사람이 아니라 AI나 로봇이나 버튜버나 애니캐릭터가 될 수 있다. 이들에게 받아들이기 쉬운 풍경은 게임인터페이스나 가상공간이 될 수 있다. 컨템포러리 팝아트가 될 수 있다. 많이 보는 것이 결국 익숙해진다는 그런 표본추출편향, 모집단 대표성 문제, 확증 편향, 가용성 휴리스틱스, 노출효과 등을 생각했을 때 젊은세대가 많이 보는 게 그렇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롯데뮤지엄의 옥승철전 같은 애니메이션적 감각을 지닌 팝아트 작가의 전시도 보기 쉽고 친근하며 현실과 일상을 다루어 접근하기 쉽다라는 인상주의 인기이유와 같은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가상공간의 풍경은 4월에 갤러리 도로시에서 했던 성태진의 <우주너머>와 같은 게임 아케이드풍이 될 수도 있다.


인상주의의 인기요인을 설명하는 표현은 그러므로 어디에서든지 쓸 수 있는 만병통치약(panancea)이자 이현령비현령적(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표현인 것이었다. 마치 어느 온천에 가도 류마티즘부터 온갖 병에 약효가 있다고 표현하듯, 두부든 채소등 어느 건강식 음식점에 가도 청소년 발달부터 청년의 피로, 갱년기 여성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효과가 좋다고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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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적의 괄사 따라 하기 : 상체 편 + 하체 편 + 얼굴 편 - 전3권 기적의 괄사 따라 하기
송사월 지음 / 용감한까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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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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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치란 라멘에 처음 갔을 때

라멘 농축 소스를 국자에 담아주는 직원의 손짓 리듬이

정말 오래 한 가지 동작을 반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년 MMCA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 양정욱은

한 가지 노동을 오래한 사람 특유의 리듬을

설치예술로 시각화한 아이디어로 반향을 얻었는데


이 쇼호스트의 환복스킬에서도

그런 전문적 노동의 리듬이 느껴진다

수만 번은 같은 동작으로 환복했을 것 같은 너무 자연스럽고 유려한 리듬이다. 


영어로는 매듭없는 말끔함을 일컬는 seamless라고 표현해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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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박물관에 다녀왔다.


수색역에 있다. 상암의 방송국과 그 아래 입점해 있는 깔끔하고 세련된 점포들이 눈에 띈다. 윗층의 방송국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이 월급을 받고 아래 내려와 일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음료와 음식을 섭취하고 다시 올라가 일해 돈을 벌고, 점포는 위에서 내려온 직장인들이 지불하는 돈으로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내고, 건물주인 회사는 임대료를 받아 월급을 주는 게 뭐랄까 자족적 시스템? 자가발전? 공생 관계? 처럼 보인다. 아니, 약육강식인가. 누가 스트레스를 주는가


영화박물관은 8.30까지 옛 만화영화 홍길동 특별전을 하고 있다. 우리가 잘 모르는 67-99년까지 개봉된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100편이나 된다고 한다. 대단하다


개중 로봇으로 상징되는 과학기술 소년물 태권브이 같은 낙양의 지가를 올린 픽션은 한국인의 심상구조를 형성했다. 베스트셀러는 당시 사회의 마음을 반영하는 재해석된 기록물이기에 픽션으로 그 시대를 일부 읽어내는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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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공간인간> 어딘가에서 자신은 20대에 운전면허를 따 여행으로 이동의 자유를 누리고 집계약을 해 자기 공간을 확보했으며 30대에 핸드폰이 출시돼 통신의 자유를 얻고 40대에 디지털 세상에 진입했다고 했다 (지금 책이 곁에 없어 내 기억에 의존한 재구성이다)


그런데 그의 자녀세대는 정확히 반대로 세상을 경험한 것 같다. 먼저 태블릿 등으로 디지털로 진입하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핸드폰이 생겨 연락을 자유롭게 하고 대도시에 직장이 있으니 대중교통 이동가능지역에 집을 얻은 다음, 차를 위한 운전면허는 부수적이기에 나중에 딴다.


그러니 부모세대는 먼저 마음에 들어온 물리적인 생활공간을 중요시하고 사람과 통화가 다음이며 SNS댓글이야 뭔 상관이냐 할 것이다.


반대로 자녀세대는 자기 세계의 전부인 SNS상의 평가와 (통화가 아닌) 카톡과 DM이 자기 정체성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며 저 멀리 교외로 여행다니는건 자산이 생긴 다음 경험할 수 있는 꿈 같은 일이다.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 the Anxious Generation>는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라는 부제의 책으로


물리적 현실세계 과보호와 디지털 가상세계의 과소보호에 대해 일갈하며(We Overprotect Children in the Real World and Underprotect Them Online)  


부모노릇의 역설(The Parenting Paradox)에 대해 다루었다.


쉽게 말해 애들 학교까지 라이딩은 시키면서 뒷자석에서 핸드폰 하는건 신경쓰지 않는 일반적인 부모의 하루를 미루어보았을 때, 물리세계의 위협에 대해선 너무 보호하지만 가상세계의 위협에 대해선 너무 손을 놓고 있다는 뜻이다.


이 역시 반대로 경험한 탓이다. 부모세대는 학교에서 선생에게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일진, 양아치에 의해서도 혹은 군대와 기업에서도 신체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 구타뿐 아니라 유괴 납치의 위협도 종종 있었다.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한 방어기제로 아이들을 물리적 현실에서 보호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물리적 공간보다 가상의 공간이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기준이다.


유현준의 경험에서처럼 자동차로 인해 물리 세계가 확장되기 전에, 자기가 번 돈에 의한 생활 공간을 스스로 확보하기 전에, 사이버 스페이스를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SNS 친구가 충분히 생기면 그들과만 대화해서 집에서 안 나오는 히키코모리, 고립 은둔 청소년/청년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물리 세계는 부수적이기 때문이다.


지진, 전쟁 같은 외부의 재난과 위협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폭염에서도 집에서 에어콘 틀고 지내면 된다. 집에 나가지 않고 이세계에 몰입해 있는 이들은 창문도 열지 않기에 더위와 습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중교통으로 접근가능한 대전, 인천은 가볼 수 있어도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태안, 공주, 부여, 보성 같은 곳은 가본 적 없고 해외처럼 느껴진다.


세계가 확장되는 순서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물리 공간에 무심한 자녀 세대를 부모 세대는 이해할 수 없고, 현실 친구와 통화하지 않는 젊은 세대는 SNS 좋아요에 목 매지 않는 부모 세대의 감성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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