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공간인간> 어딘가에서 자신은 20대에 운전면허를 따 여행으로 이동의 자유를 누리고 집계약을 해 자기 공간을 확보했으며 30대에 핸드폰이 출시돼 통신의 자유를 얻고 40대에 디지털 세상에 진입했다고 했다 (지금 책이 곁에 없어 내 기억에 의존한 재구성이다)


그런데 그의 자녀세대는 정확히 반대로 세상을 경험한 것 같다. 먼저 태블릿 등으로 디지털로 진입하고 학교에 들어가면서 핸드폰이 생겨 연락을 자유롭게 하고 대도시에 직장이 있으니 대중교통 이동가능지역에 집을 얻은 다음, 차를 위한 운전면허는 부수적이기에 나중에 딴다.


그러니 부모세대는 먼저 마음에 들어온 물리적인 생활공간을 중요시하고 사람과 통화가 다음이며 SNS댓글이야 뭔 상관이냐 할 것이다.


반대로 자녀세대는 자기 세계의 전부인 SNS상의 평가와 (통화가 아닌) 카톡과 DM이 자기 정체성을 테스트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이며 저 멀리 교외로 여행다니는건 자산이 생긴 다음 경험할 수 있는 꿈 같은 일이다.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 the Anxious Generation>는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라는 부제의 책으로


물리적 현실세계 과보호와 디지털 가상세계의 과소보호에 대해 일갈하며(We Overprotect Children in the Real World and Underprotect Them Online)  


부모노릇의 역설(The Parenting Paradox)에 대해 다루었다.


쉽게 말해 애들 학교까지 라이딩은 시키면서 뒷자석에서 핸드폰 하는건 신경쓰지 않는 일반적인 부모의 하루를 미루어보았을 때, 물리세계의 위협에 대해선 너무 보호하지만 가상세계의 위협에 대해선 너무 손을 놓고 있다는 뜻이다.


이 역시 반대로 경험한 탓이다. 부모세대는 학교에서 선생에게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일진, 양아치에 의해서도 혹은 군대와 기업에서도 신체 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 구타뿐 아니라 유괴 납치의 위협도 종종 있었다.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한 방어기제로 아이들을 물리적 현실에서 보호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물리적 공간보다 가상의 공간이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기준이다.


유현준의 경험에서처럼 자동차로 인해 물리 세계가 확장되기 전에, 자기가 번 돈에 의한 생활 공간을 스스로 확보하기 전에, 사이버 스페이스를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SNS 친구가 충분히 생기면 그들과만 대화해서 집에서 안 나오는 히키코모리, 고립 은둔 청소년/청년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물리 세계는 부수적이기 때문이다.


지진, 전쟁 같은 외부의 재난과 위협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폭염에서도 집에서 에어콘 틀고 지내면 된다. 집에 나가지 않고 이세계에 몰입해 있는 이들은 창문도 열지 않기에 더위와 습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중교통으로 접근가능한 대전, 인천은 가볼 수 있어도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태안, 공주, 부여, 보성 같은 곳은 가본 적 없고 해외처럼 느껴진다.


세계가 확장되는 순서에 차이가 있다. 따라서 물리 공간에 무심한 자녀 세대를 부모 세대는 이해할 수 없고, 현실 친구와 통화하지 않는 젊은 세대는 SNS 좋아요에 목 매지 않는 부모 세대의 감성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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