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인가 신촌 대학약국 앞 이철헤어커커에서 머리를 하면서 요즘 편의점에 디스플레이로 광고를 하던데 이거 해리포터에서 해그리드가 선물한 움직이는 부모님 사진 같지 않아요?
출판되었을 1997년에는 마법이었던 게 20년 후에는 과학기술로 현실이 되었네요, 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 분명 독수리다방 그 빌딩에 3층인가에 이철헤어커커가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폐업했는지 검색이 안되고, 편의점에 움직이는 광고영상이 나온 것도 2010년 언제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움직이는 사진뿐인가? 데일리 프로핏(마법사 신문)의 움직이는 사진은 우리가 보는 인터넷 신문의 영상(+광고)같다. 특히 나는 4권의 리타 스키터 옆에 자동으로 페이크 뉴스 써주는 양피지 펜이 GPT의 효시처럼 느껴진다.

이는 어제 올렸던 스마트 글래스 포스팅에서 했던 말과 맥락이 같다. 어제 이렇게 썼다. "질량이 낮고 에너지 소모가 적은 것이 먼저 나오고 빠르게 확산된다. 말<글<그림<영상<프토토타입기술<상용화 순이다
우주여행,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재생에너지,배터리,비행기,전기차 모두 비저너리들이 먼저 말로 말하고 글로 쓰고 예술가들이 그림으로 그리고 영상화를 거치며 이후 기술자들이 감화받아 초기모델을 만들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 겨우 투자를 받아 일반인들에게 널리 퍼진다."
그러니까 해리포터라는 픽션에서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현재는 과학기술로 상용화된 것이 있고 앞으로 미래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존재하겠고 모든 아이템이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영혼을 살인으로 쪼개 호크럭스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런데 왜 해리포터인가? 플롯이나 캐릭터가 더 매력적인 소설은 한 트럭 더 존재했겠지만 해리포터만큼 글로벌적 흥행을 해서 당대인의 상상적 영역을 발달시키는데 기여한 판타지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 줌의 소설 애호가를 넘어 소설을 평소에 읽지 않는 일반인과, 나중에는 과학기술수식만 탐닉하게 될 자연과학도가
어렸을 때는 해리포터를 읽었을 것이고, 그 상상의 씨앗이 시간이 흘러 자라나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한 마법을 과학이라는 다른 형태로 열매를 맺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이 판타지에 열려있고 또한 가족과 사회 등 주변상황도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뛰노는 것에 어느정도 유연하게 열려있지만, 커가면서도 나이를 먹으면서도 계속 픽션과 현실을 일치시키며 살면 눈초리 같은 사회적 압력을 받기 십상이다. 요즘은 재력있는 키덜트 오타쿠들에게 유연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으나 한 세대 전에는 쉽지 않았다.
고도로 발달한 마법은 과학과 구분할 수 없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1963년에 출판한 아서 클라크의 에세이집에서 나온 3법칙이다. <이계검왕생존기>라는 웹툰에서 보니 댓글에서 고도로 발달한 근육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드립으로 패러디해서 사용된다.(세밀한 근육선을 그리며 쾌감을 느낄 수도)

클라크의 3계명은 중의적으로 해석된다. 어떤 과학기술의 원리를 알지 못하면 일반인은 그것을 불가사의한 마법처럼 느낀다는 말이기도 하고, 극한으로 세분화된 최첨단 과학기술의 성과는 평범한 닌겐의 인지범위를 넘어서서 실제로 기능적 효과만 보았을 때는 마법과 과학의 경계가 무의미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뭔 말이냐고? 사실 그냥 같은 말이다. 발달한 마법은 과학과 같다는 클라크의 말은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같다는 뜻이다.
그저 기술의 수용자적 측면에서 보자면 몰이해 속에서 하이퍼 테크놀로지는 마법처럼 보인다는 것이 하나. 기술의 효과적 측면에서 보자면 기술의 본질적 도달점이 궁극적으로 마법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두 중의적 층위가 있다는 말이다.
해리포터에서 나온 마법이 이제 과학이 되었는지 찾아보면, 과학같은 마법, 마법같은 과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해리포터가 상상한 오늘날 과학기술의 초기모델은 어떤 모습인가?
아까 말했던 리타 스키터의 GPT
마법신문과 움직이는 사진=영상, 광고, 디스플레이도 있고
호그와트성의 움직이는 계단은 에스컬레이터도 있고
아 그리고 도둑지도(Marauder's Map)은 지금 GPS위치추적을 사용한 구글,네이버,카카오지도같다.
특히 카카오지도는 이제 서울 지하철 이동하는 궤적도 실시간 표시한 초정밀 지하철 표시도 가능해져서 거의 도둑 지도랑 닮았다.
나는 천하의 멍텅구리임을 선언합니다(원어: I solemnly swear that I am up to no good=나는 지금부터 말썽을 부리겠다고 엄숙히 맹세합니다)라는 주문을 외울 필요는 없지만.


또 브레인스토밍해보자면 근미래적 과학도 있겠다.
플루 네트워크 같은 하이퍼루프형 분자분해식 공간이동 텔레포트 시스템은 개발되지 않았고
메타물질을 활용한 광학위장기법을 활용한 투명망토는 지지부진하다.
아, 그런데 이런 전문용어는 없다. 그냥 작가로서 내가 있음직한 말을 지어낸거다. 꿈꾸는 이공계인이 만들어주시기를
덤블도어가 기억을 추출해 펜시브에 담가 재생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영상촬영저장이지만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로 메모리클라우드에 업그레이드하는 미래도 2100년쯤에는 상용화되지 않을까 싶다.
2권의 날아다니는 포드 앵글리아의 초기모델은 드론, 지금은 플라잉카로 개발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 미국에서 플라잉카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영어의 Flying Ford Anglia=The flying car이라는 표현은 직관적인데 한국어로 표현할 때는 약간 골치아프다.
번역어로서 '나는 차'가 문법적으로 정확하지만 'I am 자동차'라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어
'날아다니는 차'로 바뀌기 때문이다. '날으는 차'는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면 용언 '날다'의 활용형은 어간 '날-'에 어미 '-는'이 결합해
어간 끝 받침 리을이 탈락하므로 '날으는'이 아니라 '나는'이 된다.
그래서 '나는 차'가 맞지만 날다과 가다라는 두 용언을 결합한 '날아가는'을 쓴다.
오늘의 아무말 대잔치 여기까지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