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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난희(1939-), 자연, 1995, 나무에 음각, 먹, 248×82×(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비전시)
MMCA 뮤클리 박혜성 학예사의 글이다.
성곡미술관에서도 했었던 석난희.
의성어의 사용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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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성 학예사의 명화이야기
나무 위에 새긴 푸르디푸른 생명
석난희의 ‹자연›
석난희(石蘭嬉, b.1939)의 ‹자연›(1995)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린 회화가 아니라, 통나무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자른 판목 위에 드로잉을 한 뒤 이를 조각칼로 파내고, 돌출된 부분에 먹이나 잉크를 칠해 먹의 농담과 스밈이 나무표면에 자연스러운 질감과 농담을 만들어낸 작품으로, 회화, 판화, 조각, 드로잉의 매체적 경계를 허물고, 추상과 구상, 전통과 현대라는 진부한 이분법도 흐린다.
작품은 무질서한 선의 리듬이 화면을 장악한 수묵 추상처럼 보이면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또는 바람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풀잎을 그린 것처럼도 보인다. 작가가 몇 달 동안 붙잡고 작업한 조각칼이 나무 표면 위를 열심히 지나가는 소리는 어느덧 슈-욱, 슈-욱 풀을 애무하는 바람 소리가 되고, 현묘한 먹색은 다채로운 초록이 되며, 깎아낸 나무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나무 냄새는 보는 이를 상상의 숲으로 이끈다.
석난희의 판목 작업은 판화를 찍기 위한 밑작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으로, 종이에 찍어낸 목판화와 또 다른 독자적인 미감과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석난희는 평생 고집스럽게 ‘자연’을 제목으로 한 서정적인 추상회화로만 알려져 있는데,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목판화와 판목화 작업을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 판목의 규모를 키워 본격적으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