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천국은 아직 멀어(天国はまだ遠い, 2016)은 해피아워(2015)와 아사코(2018)의 사이에 있는 필모다. 2004년 소설 원작으로 2008년 드라마화된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어서(天国はまだ遠く) 마지막 단어 "멀어"를 토오쿠가 아니라 토오이로 바꾼 것 같다.

이야기의 얼개는 이렇다. 17살에 살해된 동급생 안(오가와 안)의 지박령을 통학로에서 마주친 유조(오카베 나오)가 무심코 인사한 순간부터 17년 동안 그녀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어느 날, 안의 여동생(현리)는 미국 영화학교 졸업작품으로 죽은 언니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유조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카메라 앞에서 동생이 남자의 말을 믿지 않자 언니가 남자에게 빙의되어 대화를 나누게 된다.
자이니치 배우 현리의 마스크는 한국적이다. 조선 사극에도 나오기에 적절한 전통형 얼굴로 죠몬형 얼굴, 서양인 혼혈 얼굴, 이누이트 얼굴, 중국계, 몽골계 등 다양한 얼굴형의 배우가 있는 일본연예계에서 고집스러우면서 옛스러우면서 당찬 느낌을 주는 신선한 페이스다. 오가와 안의 옆 얼굴 각도가 적절하다. 정면보다 살짝 측면의 이 각도가 연출적으로 좋다. 유령이라 동생에게 말은 못하고 응시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표정이 잘 드러나있다. CGV 하마구치 류스케 특별전 메인 포스터에 이 장면이 인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마구치 감독의 다른 작품 패턴이 그대로 확인된다. 이상한 상황이 있는데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다른 매체로 우회해서 (다소 많이) 말한다.
왜 말하지 못하는가? 부끄러움, 관계 붕괴에 대한 두려움, 혹은 발설 시 돌이킬 수 없다는 직감 등등 여러 원인이 있겠다. <영원히 그대를 사랑해>(2009)는 여자의 누드모델 전남침과의 불륜 및 임신 사실, <드라이브 마이 카>(2021)은 아내 오토의 불륜과 뇌출혈 사망,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04)는 개발업자와의 갈등고 자연-인간의 불협, <아무렇지 않은 얼굴> 중학교 시절 미야자키를 이지메했다는 대화가 여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회상 고백이 일상관계 뒤틀리게 하는 장면 등이 있다.
다 뭔가 잘못된 일이 있고, 말을 하려 하지만 못 하거나 전해지지 않아 다른 매체로 상황이 전달된다. 편지, 대본, 제3자의 전언, 전화 등등. 여기서는 유령이고, 가장 자주 쓰는 구조는 연극이다. <친밀함>에서도 료짱과 여주인공의 관계가 연극에서 부분적으로 재현되고, 앉은 자리에서 30분동안 서로를 보고 말하자는 룰에서 료짱은 자기 마음을 말하지 못하고 애꿏은 의자만 발로 차다가, 연극 무대에서 시를 읊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폭력이라고. 이런 모든 과정에서 한 마음의 의도가 다른 마음에게 깔끔하고 선명하게 전해지지 않고, 우회적 경로로 틈입한다. 완전한 정보가 아닌 파편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보는 이도 상황을 확정 못 하고 불안하게 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작품에서 보이는 설정과 스토리의 공통분모는 대략 이런 식의 패턴이다.
사건 → 공백 → 매개 → 파편적 정보
(직접 발화의 부재가 사건의 본질보다 불안을 더 증폭함)
우회 경로가 작품의 리듬을 결정
(편지, 연극, 녹음, 유령, 제3자 타인의 전언 등)
관객의 재구성 참여를 강제
(해석의 확정 불가 → 끝까지 여운과 긴장 유지하게 됨)
남주와 여주의 관계는 일본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해볼 수도 있다. 납작한 말로 정의하자면 남자는 고용이 불안하고 노후가 대비되지 않은 비정규직 언더클래스인 파견사원 인셀이다. 미츠키를 대신해 썸타던 선배에게 고백을 한 탓에 고3때 자퇴해서 중졸이다. 성인야동에 모자이크를 붙이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하며 친구가 없는 고립된 상태다. 일감 주는 원청에게 순종적이며, 혼자 마스터베이션을 하니 애인이나 가족도 없고, (바람직하지 않으나) 업소에 갈 돈도 없다. 집은 작고 낡았으며, 싱크대에서 세수한다. (목에 묻은 폼클린저를 다 닦지 않는다)
한편 여자는 언니의 죽음 이후 부모가 이혼을 했다고 해도 미국 영화학교에 유학한 28세 젊은 고학력 엘리트다. 동생이 남자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쓴 어려운 음독의 한자(구축하다)를 남자는 이해못해서 쉽게 설명해달라고 한다. 지금은 자산이 없더라도 앞으로 충분히 독립적으로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는 나이와 커리어다.
둘은 학력, 미래, 나이, 안정성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빙의했다는 말을 동생이 믿지 못하는 데에서 이 두 계층의 상호불신이 드러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학력 여성 엘리트의 저학력 남성 언더클래스에 대한 불신이다.
관객은 화면 안에 미츠키가 잡히고 유조와 대화를 하니 유령의 존재를 믿는다. 동생은 언니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언니의 존재는 유조의 말을 통해 증명될 수밖에 없다. 미츠키에 빙의된 유조는 말투 어미에 ~쟝 같은 여고생 말투를 쓰면서 빙의되었음을 알린다.
언니가 빙의되었다는 걸 증명하라는 말에 엄마 아빠 생일을 대는데 아빠 생일이 9일(코코노카)이 아니라 7일(나노카)로 틀린다. 동생은 개인정보 스토킹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제 관객은 빙의가 맞는지 의심한다. 감독의 의도된 연출장치다.
그런데 관객이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 동생은 남자의 말을 믿기 시작한다. 소학교 다니던 동생과 함께 손잡고 걸어갔던 기억을 말했기 때문이다. 서로 잡은 손의 온기를 떠올리며 동생은 운다. 도장을 넘어뜨린 기억은 미츠키마 기억하고 동생은 기억하지 못했는데 이 기억은 새록새록났나 보다.
그런데 갑자기 다큐멘터리에 찍을 좋은 장면을 건졌다고 말해 동생이 정말 믿은 것인지 아니면 연기를 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연극적 상황이다. 연극 무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카메라 앞에서 다큐멘터리 찍고 있는 이 상황이 연극적 장치다. 둘의 상황에 몰입해있던 관객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끼도록 소격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어서 미안해라고 하며 동생의 마음을 달래주고 동생은 유조를 미츠키로 생각하고 안는다. 그리고 믿은 것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 확실히 상황이 종결되지 않고 비행기 위에서 본 대류권 구름 들판을 보여주며 이야기가 끝난다. 고학력 여성은 저학력 남성을 믿어준 것인가? 그의 망상인가 아니면 정말 유령이 붙어버렸는가?
이 핵심은 미결된 상태로 영화는 끝났다. 확실한 것은 17살 이후 17살이 지나도록 남자는 그 시절에 머물러있다. 학력도 마음도 관계도 모든 것이. 유령이 붙어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이는 젠더 갈등을 넘어 일본이 마주해야만하는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은유라고도 볼 수 있겠다. 최근 출판된 <엑소더스 재팬>에서는 비정규직, 파견사원 등으로 사회에서 밀려나 있는 일본 언더클래스가 은퇴할 나이가 되면 17-19조원의 부조비용을 대야할 것이라고 말하며 와세다대학 교수와 저널리스트가 분석한 향후 암울한 일본의 미래에 대해 언급했는데 멈춰있는 사람이란 바로 유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