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영 위원의 신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는 세 가지 이유에서 좋다.
1) 잘 읽히고 2) 명확한 근거와 시각화 자료로 논거를 뒷받침하며
3) 다른 책에서 없는 디테일과 국제적 사례를 다루어 흥미롭다
잘 읽히는 이유는 저자 본인이 궁금했던 개인적 질문에서 시작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우리가 차분히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흡입력이 있고 저자가 이해했던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니 이해가 쉽다
기존 교수나 지식인이 학술대회에서 하듯 전반부는 시간 부족, 배움 부족, 학벌 부족 등 온갖 부족함 타령하면서 방어기제를 쌓다가 후반부에서는 갑자기 거만한 태도로 돌변해 대답도 할 수 없는 옛 이론가과 우리말을 이해못하는 외국학자들을 맹비난하다가 배움이 부족한 젊은 세대를 쯧쯧 한탄하며 가르침 없는 독백을 하는 것과 사뭇 다른 태도다.
나도 몰랐는데 우리 함께 알아볼까? 따뜻하게 리드하면서 겸손하되 자존감 있는 태도로 지식을 알려주는 사람이 귀하다. 최준영이 그 한 명이다.
통계나 디테일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한국인은 대체적으로 똑똑한 편이라 세계 방방곡곡의 전문가들이 등판해 이 나라의 사례는 이렇다 이 부분은 달리 봐야한다 하면서 조언을 주면 고칠 수 있다. 그 논의 과정 자체도 또 하나의 배움이 된다.
모르는 것은 자신의 단점이 아닌데도 어떤 이들은 상아탑에 있건 없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면 체면이 상하는줄 알고 감추기에 급급하다. 이런 이들 밑에서 과정과 관습에 매여서 탈출하지 못한 채 공부하는 건 참 고생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게 설교하지 않으며 지식을 나누는 이가 더 필요하다. 유투브 시대를 잘 만나 훌륭한 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박사까지 공부하고 정부에서 오래 근무한 저자 역시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공부했을지 모르겠다. 사람은 훌륭한 스승들이 가득한 무릉도원에서만 배우는 게 아니라 반면교사들 가운데서 성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 많이 한 오십대 중에 고압적이지 않고, 오래 전 지식을 사골뼈 바스라지게 울궈먹지 않고, 변화하는 트렌드를 꾸준히 따라가는 사람은 참 귀하고 더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진다. 고 이어령 선생도 죽기 전까지 디지털을 공부하셨고 이동진도 여전히 새로운 영화와 책을 본다.
책이 얼마나 잘 읽히는지 첫 장만 문단별로 분석해보자
우선 경제와 주택의 관계를 다룬 1부의 첫 장은 오스트리아로 시작하는데 행정지역까지 자세히 표시했다. 일단 이를 통해 얼마나 디테일을 추구하는지, 경제와 주택을 지리라는 큰 틀에서 해석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다.

문단은 이런 플로우다.
빈이 살기 좋은 이유→인구, 위치 등 도시 개괄→유럽대도시 주택공급 제한적이어서 가격상승 불가피→통계자료로 대도시 임대료 비교(그런데 빈은 파리의 절반이하다)→반값 임대료 그래프로 시각화
일단 이 전개에서 독자는 강하게 몰입하게 된다. 상황설명 속에 주장을 녹여내고,
왜 빈이 이례적인지 맥락을 짚은 후 통계자료를 제시해 논거를 뒷받침한 뒤 시각화까지 버무렸다. 그 다음은 이렇다.
→가디언지 인터뷰로 뒷받침→월세 비중 높은 유럽상황에서 이례적이라 설명→빈의 낮은 주택 가격은 세 가지 정책 덕분(신규주택, 임대주택 재고유지, 임대주택 재생rehab)→임대주택상황→임대주택면적충분→인구 3만명 증가 당 1만가구 임대주택 신규공급→독일과대비→관리되지않은임대주택은슬럼화 따라서 rehab중요
이후 문단별이 아니라 큼지막하게 정리→공동주택 건설해도 괜찮은 이유(공모전, 가격절감 등)→빈은 원래 최악의 도시→전쟁 후 복구 현명→정부의 조세 및 주택정책이 현명해서 토지효율적 이용 및 보급→대공황 이후 문제와 표준화 및 공정단순화 극복→결론에 이르러 행복한 주거공간의 의미, 그리고 국내 적용의 한계(땅부족)
이렇게 한 장을 다 읽으면 인과관계가 명확히 이해되고 관점이 바로 잡히니 반례를 들거나 다른 사례에 적용하며 생각을 확장해보기도 좋다.
2, 3장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사례도 과하게 한 이념으로 치중해 포장한 일부 선례와는 다르게 생생한 사례를 통해 장단점을 이해할 수 있어 중립적인 시각을 얻기에 좋다.
동남아에서 부유했던 미얀마가 왜 몰랐했는지도 자극적인 국뽕 유투브 콘텐츠였다면 남은 깎아내리고 우리는 높이기 바빴을텐데 거시적 흐름을 명쾌히 설명한다. 화룡점정은 네피도 수도이전에 대해 '정확히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p111) 이런 겸손한 태도가 책의 신뢰성을 더 강화한다.
글은 브로커나 미얀마에 없는 성씨를 언급하며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며 마무리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필요없는 잡지식이라고 생각하거나 급한 마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책, 거시경제사와 같은 큰 관점으로 서술을 이어가다가 미시사를 더해줘서 위트있게 마무리했다고 본다. 작가는 늘 엔딩이 어렵다.
이보다 더 전문적인 자료를 언급하면 논문이지 대중서가 아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으나 대중서로서 할만큼은 다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편집부의 비문 감수 부족이 아쉽다. p284 첫 문단 "왜냐하면 중국은 그동안 개혁개방의 첫째가 집단 농장을 해체, 각자가 알아서 하라고 해서 지금까지 왔는데 다시 모은다는 건 감정적으로 쉽지 않다"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된다.
전체적으로 뒷 부분이 아쉽다. 몰입도가 높은 앞 부분에 비해, 12장 인도 13장 플로리다 14장 중국 15장 호주 뒤로 갈 수록 힘이 떨어지고 덜 다듬은 티가 난다.
최근 친구가 캐나다 출장을 다녀와서 자기가 공부하던 시절의 캐나다가 아니라면서 학을 떼었는데 아마 이 책의 5장에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초반 호황이던 캐나다가 왜 망했을까? 를 다룬 챕터5는 그 이유로 주별로 다른 규제, 생산성 저하, 대도시 주택공급 부족으로 가격상승과 빈부격차 확대, 원자재 수출에 의존해 기술력 부족, 이민자 통합 실패를 꼽는다
얼마나 규제가 통합이 안되어있는지에 대한 예시로 인접해 있는 한 주는 트럭이 밤은 위험하니 낮에만 다니게 하고, 이웃 주는 트럭이 낮에는 위험하니 밤에만 다니게 한 사례를 들어 이해가 쉽다
캐나다 이민자의 무분별한 수용은 쿼터가 없는 학생비자 발급이 원인이다. 대학이 등록금 벌이로 무작정 받다가 사회통합 없이 이민자만 늘어 노인들의 불만이 많다
이외에도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주요국가와 카자흐스탄 사례도 흥미롭다. 거시경제와 지리환경으로 보는 글로벌 비교문화 시리즈가 나오면 좋겠다. 더 많은 예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