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코넬 울리치 지음, 이은경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0월
구판절판


경기가 좋지 않을 수록 점술에 관련한 사업의 규모가 커진다고 한다.아마도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 미래에는 조금 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미래란 언제나 꿈과 희망으로 가득찬 새로운 세상이다. 오늘 보다 내일이 좀 더 밝과 아름답길 바라는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반대의 상황을 바라는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이 힘겨울수록 희망찬 미래에 대해 기대를 걸게 된다. 미래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이름이기도 하다.


천 개의 눈이 지켜보는 다리 위해서 그와 그녀가 만나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홀로 밤길을 걸던 숀과 한 여성의 만남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치 그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려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 여인, 값 비싼 옷을 입고 고급 오픈카를 가진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부유한 여인이 다리 위에서 두려움에 몸을 숨기려 죽음을 선택하는 그 순간 그 곳을 지나던 횬. 그녀를 구한 형사 숀이 그녀를 다독이며 듣게 되는 그녀의 개인적인 사연이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의 주요 사건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3주안에, 정확히 자정에 그것도 사자의 아가리에서 죽을 것이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이 보이는 그녀의 사연,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에 관련한 것이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가 걱정을 담아 꺼낸 한 마디로 시작한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의 불행은 어찌보면 싱겁고 어찌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에게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닥칠 가까운 미래의 상황을 암시하는 그녀의 가정부, 그 가정부의 이야기들이 우연처럼 혹은 필연처럼 맞아떨어지기 시작하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 가정부가 그 정보를 듣는 누군가를 만나기를 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던 미래를 말하는 이의 경고를 무시한채 계속 그를 찾아가던 그녀의 아버지는 어느날 창백해진 얼굴로 돌아온다. "당신은 3주안에, 정확히 자정에 그것도 사자의 아가리에서 죽을 것이다."라는 예언을 가지고 말이다.

불확실한 미래, 그것이 주는 희망

경제적 부유함과 평안한 가정생활을 유지하며 걱정할 일이 별로 없던 부녀는 그 예언을 시작으로 불행을 맞이하게 된다. 아직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시시각각 죽음이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는 압박을 느낀 그녀의 아버지는 점점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피폐해진 자신의 아버지를 지켜보아야 하는 그녀 역시 그 불행에 전염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압박에 이기지 못해 먼저 죽음을 생각하던 순간에 숀을 만난 것이다.


당신의 미래를 알려고 하지 말라.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가장 절망적인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된 한 남자가 스스로를 어떻게 옭아매는가를 표현한 섬세함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조도 없는 상황에서 도심의 한 복판에 사자의 아가리라는 다소 황당한 상황이 그것을 맞딱드린 이에게는 얼마나 큰 두려움을 끌어오는지,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이 그 황당하고 어쩌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지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인간의 의식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그녀의 아버지인 레이드가 놓인 현실적인 상황과 그를 둘러싼 음모, 그리고 우연처럼 벌어지는 한 순회공연단의 사자 도주 사건이 맞물리며 이야기를 더욱 몰아간다. 가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으로 그대로 남겨둔채 말이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가 말하려는 것이 인간에게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 조차도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미래란 어쨋든 아직 닥친 현실이 아니며, 그 미래가 꼭 당신의 꿈처럼 화려하고 평화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쨋든 미래를 만드는 것은 현재이며 그러니 미래의 모습을 보려하지 말고 현재를 보면 당신의 미래도 보이지 않을까? 꿈처럼 화려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꿈꾼다면 미래가 아닌 현재를 보라는 것. 그것이 당신의 미래라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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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버드의 어리석음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품절


흔히 하는 말 중에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표현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거나 그럴지도 모르는 천재와 세간의 비웃음을 받거나 혹은 아무에게도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한채 존재에 대한 흔적도 남지 않을 바보가 어찌해서 종이한장 차이라는 걸까? 천재와 바보는 천양지차라는 표현이 맞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조금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천재와 바보가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말이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될 것이다. 천재와 바보는 정말로 종이 한 장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또 그 차이가 불러온 조금의 변화가 얼마간의 간극을 만들어내는지가 천재와 바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는 것 뿐.

13인의 어리석은 자들. 그들의 시작과 끝에 놓인 공통점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바로 이 천재와 바보 사이에서 간발의 차이로 바보가 되어버린 13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 다른 시대의 사람. 모두 다른 일들을 하던 사람. 모두 다른 배경과 다른 목적을 추구했던 사람들인 13인의 이 바보들은 때로는 일생을 불운하게 살아가기도 했고 때로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자신의 인생의 절정에 도달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지식인으로, 때로는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선구자로 추앙받기도 한 인물들이다. 모두다 조금은 다른 인생의 길을 걸었지만 그래도 이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시작과 끝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그 남다른 인생의 시작에 있어 모두가 다른이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성을 가진 이들이었고 그 창의성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끌거나 혹은 이끌어내려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또 그렇게 시작한 인생의 끝이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두가 망각한 존재로 마무리 되었다는 것 또한 공통점일것이다.


천재가 될 수 있었던 바보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모두 잘못된 사고와 잘못된 결정으로 옳지 못한 인생을 살았던 실패한 인생 혹은 잊혀져야 함이 마땅한 인간이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앞서 거론했듯이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의 차이이며 이 차이는 그들의 의지로 시작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의지가 아닌 것으로 시작되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인류의 위대한 인물들의 현재에 이르러 많은 존경과 추앙을 받는 것은 그들의 사고와 그들의 업적이 현대의 인류에게 거대하거나 혹은 핵심적인 가치로서 인정받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천재와 바보가 갈리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있기 보다는 역사가 혹은 인류가 그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대의 요구에 너무나 충실히 부흥했기 때문에 한때는 부와 명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던 존 밴버드나 마틴 파쿼 터퍼는 그 시대에는 선택받았으나 시대의 흐름이 그들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기에 잊혀졌고, 이타적인 목적을 가지고 인류를 위한 거대한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프랑수와 수드르는 당시의 시대에 선택받지 못했기에 이미 이전의 시대에서 잊혀져 버렸으며, 나름의 성공과 목적을 달성했으나 시대의 체제가 그를 보호하지 못한 탓으로 엉뚱한 이에게 그의 영광을 넘겨주어야 했던 이프레임 불이 잊혀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위대한 이름, 시대와 재능이 어울려야 탄생 가능한 신의 걸작품

누군가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 살아있을 당시 그의 재능과 뛰어난 지성이 빛을 발해 그에게 보상을 해줄 수 있다면 더더욱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관점이나 사람들의 요구가 상상 다채롭게 변화하는 탓에 어떤 위인은 살아생전 영광의 빛을 보기도 하고, 어떤 인물은 죽어서야 그 이름을 새롭게 알리기도 한다. <밴버드의 어리석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천재였으나 바보로 기억되는, 혹은 기억조차 되지 못하는 다양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음으로써 천재 혹은 위인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재능과 부단한 노력끝에 자신의 토양을 마련한 정직한 사람의 재능 위에 사람들의 관심과 시대적 배경의 선택이라는 거름이 있어야만 탄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천재나 혹은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은 단지 개인의 재능만을 가지고는 가능한 것이 아니며 지금 우리가 위인이나 천재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롤모델로 삼는 많은 이들이 언젠가는 어리석은 13인의 이야기 목록에 14번째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천재와 바보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예스와 노의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천재를 만드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여기에 시대의 요구와 다양한 요소들이 더해져 선택되어지는 하나의 걸작품이라는 것으로 대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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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절판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내가 나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어린 시절의 한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대면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꿈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때로는 답을 찾기 어렵고, 답을 찾아낸다고 해도 늘 같은 답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이렇듯 많은 질문을 쏟아내고 고민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나"라는 존재.. "나"로 시작되는 의문과 의심들은 그렇기에 한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리고 답을 요구한다. 사람들의 성장이란, 어쩌면 이렇게 끝없이 스스로에게 내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바꿔치기 당한 아이들의 전설

<스톨른 차일드>는 신화로 존재하여 이어내려져 온 '바꿔쳐진 아이들'을 시작점으로 하고 있다.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을 찾아 스스로의 성장을,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산속에서 야영지를 마련하고 오랜 시간을 거쳐 다시 인간의 삶을 돌아올 기회를 어렵게 가지게 되는 아이들의 이야기에는 그들이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또 다른 희생양이 되는 바꿔치기 당할 아이들에 대한 전제가 깔려있다. 그리고 파에리로 불리우는 이 아이들은 스스로가 바꿔치기 당해 파에리의 구성원이 되었듯 그들의 구성원을 유지시키며 계속해서 바꿔치기를 통해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무리로 존속된다. <스톨른 차일드>는 이 파에리 무리에 새로이 바꿔치기 당해 들어온 헨리 데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파에리 핸리 데이와 핸리데이가 된 파에리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이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애니 데이가 된 헨리 데이, 헨리 데이가 된 파에리

<스톨른 차일드>의 두 주인공인 헨리 데이와 애니 데이는 하나의 이름을 공유한 두 명의 소년이다. 어린 시절 파에리들에 의해 바꿔치기 당한 헨리 데이는 오랜 시간동안 파에리로서의 삶 속에서 파에리 애니 데이가 되고, 헨리 데이를 바꿔 치기 해 헨리의 자리에 들어간 파에리는 오랜 시간동안 헨리 데이로 살아가며 현실의 헨리 데이가 된다. 그리고 그 헨리 데이 역시 한때는 독일어를 사용하던 음악신동으로서의 인생을 살았던 또 하나의 바꿔치기 당한 아이이다. 두명의 데이는 처음에는 스스로가 놓인 현실에 적응 하기 위해 노력한다. 헨리 데이였던 애니 데이는 헨리 데이로서의 삶을 잊고 애니 데이에 익숙해지며, 파에리였던 아이는 진짜 헨리 데이가 되기 위해 바꿔치기를 하기 전부터 이후까지 끝없이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인생에 적응이 되었을 무렵 그들에게 하나의 숙제가 놓인다. 기억속에 존재하던 이전의 삶에 대한 것들. 바로 진짜 나에 대한 의문과 고뇌가 그것이다. 애니 데이는 끝없이 부모님의 집을 그리워하며,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헨리 데이는 파에리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으로 부터 하여 스스로를 찾는 과정을 시작한다.


각자의 삶을 선택하다.

소년으로 성장을 멈춘 애니 데이와 어른이 된 헨리 데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를 찾는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시작한 여정은 애니 데이에게는 이제는 헨리 데이가 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장벽과 함께 이미 헨리 데이가 아닌 애니 데이로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그 끝을 맺고, 헨리 데이에게는 파에리 이전의 삶을 찾음으로써 그가 애니 데이에게서 뺏은 헨리 데이로서의 삶에 대해 사죄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는다. 애니 데이에게는 애니 데이의 곁에 함께 했던 스펙을 그리워 하는 자신의 마음을, 헨리 데이는 파에리 이전의 자신과 함께 헨리 데이로서 살아갈 앞으로의 진짜 삶을 남겨둔 채.


나를 찾는 다는 것.

<스톨른 차일드>의 두명의 데이는 스스로의 과거를 끝없이 원하고 그리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절의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고민한다. 마음 한켠에는 공포를 간직한채.. 이야기를 읽으며 두명의 데이들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역시 어른이 되며 순수했던 어린 시절과 그 시절의 행복을 끝없이 그리워 하지 않는가. 하지만 또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그 시절을 그리워 하고 그 시절을 되찾으려 한다 해도 결국 우리가 살아가며 찾아야 할 것은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라 현재의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말이다. <스톨른 차일드>의 두 명의 데이는 아마도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애니 데이가 되어 버린 헨리 데이가 이제야 헨리 데이의 자리를 찾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스스로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파에리였던, 그리고 그 이전의 또 다른 삶을 더 가지고 있었던 헨리 데이가 과거의 자신을 찾는다고 해도, 그가 이제 살아야 할 것은 헨리 데이의 자리라는 것을 말이다. 스스로를 찾아 가는 과정은 결국 지금의 나를 바로 걷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애니 데이의 마지막 여행길의 끝에, 반드시 스펙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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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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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 소설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리소설은 언제나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는 장르이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그 수 많은 이야기들의 감동보다 때로는 삶이 녹아든 200자 원고지 서너장 분량의 짧은 글들이 내 삶을 뒤흔드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아마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나보다 조금 더 먼저 겪은 인생의 선배들이 들려주는 교훈같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들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좀 더 일찍 깨닫게 해주는 도움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절절하고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래서 바람이 선선한 이 계절은 다른 계절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조용히 읊조리듯 들려주는 다른이들의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 에세이집을 더욱 찾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의 삶을 기적처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샘터에서 오랜 시간 짧막한 글들을 연재해온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이다. 어린시절 소아마비를 앓고, 다리가 불편한 1급 장애인, 그러나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수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온 존경받는 교수이기도 한 그녀는 2009년 5월 암투병중에 생을 마무리 하였다. 일생을 목발에 의지해 남들보다 힘겨운 걸음을 걷고, 생의 마지막에는 고통스러운 암이라는 병까지 얻어야 했던 그녀의 삶은 그 누가 보더라도 너무도 힘겨운 삶이었을테다. 한걸음 떼는것 조차 쉽지 않은 삶을 이기고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녀의 인내와 노력은 얼마나 대단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라면 힘겨움을 먼저 떠올릴 것만 같은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작은 책 한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세상을 웃으며 바라보는 그녀의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그러나 생각만큼 어둡거나 힘에 겹지 않다. 아니 오히려 유쾌하고 즐거우며, 신이 나고 미소짓게 한다. 과연 이 글을 쓴 사람이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 살아가며 힘겨운 병마와 싸웠던 사람일까에 대해 의심하게 할만큼, 어쩌면 전혀 생각나지도 않을만큼 즐겁다. 또 누구나 한번쯤 했을 법한 고민과,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까지 고스란히 고백처럼 엮여 있는 이 책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제목보다는 살아가고 있는 기적이라는 느낌이 더 크다고나 할까? 어쩌면 삶이 기적 같았으나 그 삶을 너무도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여유로움이 그녀가 책을 통해 타인에게 전하고픈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들, 그리고 기적이 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해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짧지만 긴 시간을 아련하고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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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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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과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매년 휴가를 위해 발걸음하고 많은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으며, 저 유명한 화가 폴 고갱이 사랑했던 곳 타히티. 타히티는 이름만으로도 여유와 휴식이 연상되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휴양지 중 하나이다. 이미 다녀온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과 그곳의 자연이 만들어내는 꿈같은 시간에 대한 기억을 담은 곳이고, 아직 다녀오지 못한 사람에게도 막연히 꿈을 꾸게하는 곳 타히티. 많은 이들이 오가는 섬, 타히티가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그곳이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선택받은 곳이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한숨을 몰아쉬고 잠시 휴식을 꿈꾸게 하는 여유를 상징하는 '섬'이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삶에 건조해진 누군가의 무지개.
<무지개>는 타히티에 휴가차 들른 주인공이 자신의 생활의 터전인 도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온통 타히티의 이미지로 채워진 책이지만 사실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대부분의 것들은 그녀가 생활해온 도쿄, 그 안의 그녀의 일터였던 무지개라는 이름의 레스토랑 오너와의 일들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가족을 누구보다 성실한 일꾼이었다. 그리고 가족을 떠나보낸 후에도 여전히 성실하고 충실한 레스토랑 직원이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그 곳에서 일하며 그곳을 사랑하고 늘 성실하다. 그리고 어느 날 피로로 인해 기절을 하고, 이 일로 인해 가게일을 잠시 쉬는 대신 오너의 집에서 동물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로 한다. 주인공은 오너의 집에서 일하는 동안 자주 마주치지 못하는 오너와 대화하듯 그의 손길이 머무는 곳을 느끼며 그를 이해하게 되고, 그의 처지를 애처로워하며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키운다. 오너 역시 그녀가 그를 이해함을 아는것처럼 그녀에게 다가가고 오너가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매개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어느날 오너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온다. 오래전부터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조금 지쳤을때, 마음을 기대하게 하는 어떤 것.
<무지개>에 나오는 두 남녀는, 모두가 현실의 자신의 위치에 지극히 충실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크고 위대한 것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위로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평범한 이들이다. 누구나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려 애쓰지만, 그런 노력이 가장 허탈한 순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자신이 노력하는 것과 반대방향으로 달려나갈때가 아닐까? 가정이 있었던 오너에게, 자신이 노력하고 성실히 가꾸려 했던 가정이 자신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고만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허탈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그의 마음을 위로해줄 어떤 것들을 그녀에게서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과 같이 성실하고 충실하게 스스로의 일을 열심히 할 줄 아는 그녀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런 그녀라면 자신을 믿어줄것이라 생각하고, 위로받고 싶었던 마음이 그녀를 향한 또 다른 마음으로 변한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대했던 것, 엇나가게 될지도 모르는 선택
오너의 집에서 집을 가꾸며 남모르게 오너를 향한 마음을 키웠던 그녀는 막상 그의 고백을 받고 그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나를 사랑했노라 고백하는 그에게 왜 화가 났던 것일까? 아마도 자신이 바람했던 그의 모습은 충실하고 성실한, 스스로의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그런 모습이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정을 외면하고 불륜을 말한다. 그를 사랑하게 했던 마음과 원치 않은 상황에서 갈등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타히티, 무지개의 섬.
무지개는 희망의 상징이다. 동화속 찌르찌르와 미치르는 전설속의 파랑새가 있는 곳을 무지개 너머 어딘가로 생각하고 알 수 없는 그곳을 향해 떠나고, 그곳에 반드시 파랑새가 있다는 노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희망의 송가로 여겨진다. 비가 온 후 맑은 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무지개는 잠시의 어려움이 지나가면 당신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이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무지개>의 주인공인 그녀 역시 힘겨운 고민을 안고 떠난 타히티여행의 마지막에서 오너와의 관계에 대한 마지막 선택을 하고 선택후 그녀에게는 <무지개>라는 이름의 희망이 떠오른다. 그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일상은 좀 더 맑고 푸르른 빛이 아닐까? 한켠에는 무지개를 껴안은 푸르른 하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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