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살이에 빠져 산 지 이태 즈음 되었다. 종달새처럼 수시로 물어 날라 오던 택배전령이 반갑기도 했고 새로운 취미에 흠뻑 젖어 있었다. 명분이야 아이들을 위한 답시고 온갖 장비를 저울질 하며 머릿속에는 온통 들로 산으로 내달렸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다시 또 그 짓을 할 수 있을까? 그나마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위안을 삼으며 욕망을 잠재웠기에 이 정도지 막 질러댔음 그나마 있던 세간살이도 남아 나질 않았을거다.
각설하고 몇 달 전 강화 캠핑장사고로 정부에서 관련법령을 정비한다고 떠들석하다. 요즘 돌아 가는 정황을 보면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역시나를 거듭해 황망하기까지 하다. 그 옛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낡은 부르스타와 은박 돗자리에 온통 파란색 일색인 케빈텐트를 들고 다니던 시절에도 그랬고 사고는 곧 금지와 등치되었다.
야업장에 대한 규제의 골자는 강화도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이동식천막(사방이 막힌 텐트나 타프(폴대를 세...워 그늘을 만드는 천막)) 내 전기, 가스 전면금지 및 텐트 내 취사금지란다. 비 오면 어디서 밥해먹지...?
사고는 안타깝고 불안하지만 금지는 구속이고 통제다. 개정하겠다고 들고 나온 야영장에 대한 관련규정은 온통 금지로 도배했고 어떻게 이런 발상이 쉽게 안건으로 상정되고 협의를 통해 나온 것인지 도통 이해불가다. 하기사 뭐든 이 땅에 올라타면 버젓이 한자리 꿰차는 세상인데 이게 무어라고. 어느 안중에라도 있었을까?
야영이 이젠 극기가 되었고 원시체험 코스프레로 돌변했다. 아이가 있건 말건 KS품질 인증이 선연하게 찍힌 전기장판하나도 쓰지 못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체온을 공유하는 진정한 야생이 기다리게 되었다. 낭만은 고사하고 감내할 수 없는 불편과 동행해야 한다.
규제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사회통념에 맞아야 한다. 금지는 불법을 양산하고 억제는 또 다른 불만을 가져 온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감시와 처벌은 보편성과 필연성을 증가시킨다고 미셀 푸코는 말했다. 결국 주류적 판단에 인간은 구속되고 판단을 유보하게 되며 규범적 상황에 길들여지게 된다.
거창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소통없는 규제는 폭력이다. 불행하게도 폭력에 길들여지면 순응하게 되고 체념하게 되는 것이 또 인간이다. 어찌하다 힐링하겠다고 시작한 캠핑에 이런 무거운 상념까지 보태야 하는 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게 없다만 이건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