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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 스타일 - 우리 시대 모든 프로페셔널의 롤모델
진희정 지음 / 토네이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손석희, 그로부터 세상을 본다.
중국사기史記에 보면 현사가 세상에 처함에는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과 같이 곧 그 인격이 알려지게 된다고 했다. 이는 낭중지추를 뜻한다. 감출 수 없는 예리함과 명민함. 우리 사회의 저명인사 중 부합되는 인물을 떠올린다면 단연코 손석희 교수를 나는 떠올리게 된다. 그의 차분하고 흐트러짐 없는 아우라에 이따금 압도되고는 한다. 그는 룰을 아는 사람이다. 게임의 법칙을 알고 사람을 조화롭게 하는 묘한 힘을 발산한다. 그가 주관하는 토론장은 물 흐르듯 완급이 절묘하다. 그래서 우리는 손석희를 추종하는지 모른다.
이 책 <손석희 스타일>은 평전이 아니다. 손석희가 가진 역량과 일정한 틀에 집중하고 연구해서 하나의 패턴을 찾은 인물담론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미디어에 의한 영향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됨됨이나 행동습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보편화된 현상이다. 이러한 인물탐구는 그 대상인물이 만들어 내는 강점에 주력하기도 하지만 사소한 하나의 행동들이 모여 패턴을 형성하는 과정을 찾는 작업이므로 쉽게 만나기 힘들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 책을 본다면 손석희 교수에 대한 패턴분석 즉, 스타일은 우리 사회의 깨어 있는 지성인으로서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며 기준점이 되는 지침이 된다고 하겠다.
실제 손석희는 알려진 바와 같이 허점이 없다. 허점이 없다는 사실은 냉철하게 보여 인간미를 반감시키게 하지만 그에게서의 완벽함은 다르게 해석된다. 일에 대한 정열이 스스로를 매진하게 만든 것이 주효한 이유다. 한편으론 재미없고 고리타분하게 비춰질지 모르지만 그는 흔들림 없는 목표의식이 분명하다. 그를 불태우고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바로 이러한 목표의식에서 나온다. 그것이 완벽함으로 이어지고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손석희가 깎고 다듬은 패턴에 대해 청량감 있는 문구로 시원스레 해갈시켜 준다.
물론 손석희를 좋아하고 하지 않고는 개인의 취향이다. 그를 일정한 틀로 재단하고 규정하는 작업 또한 모순일지 모른다. 그는 지금도 변하고 나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블루오션과 같다. 그가 걸어 온 삶을 반추해 보아도 롤모델로서 손색이 없다. 불혹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유학길에 올라 학문적 완성을 추구하는 결단력은 어지간한 의지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시간이 형성하는 무게감과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무엇인가 결정하기에 앞 서 시기와 때를 저울질하고 논한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손석희교수가 감당했을 무게감은 상당했으리라. 현재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변화를 추구하는 그의 강단한 용기와 소신이 그를 우리에게 영원한 엘리트로 인식하며 포스트 손석희를 만드는 원형이겠다.
손석희 교수는 ‘적당히’를 거부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당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그의 분명한 의식의 바탕은 Here&Now,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 한다는 일관된 자세다. 또한 잘 하는 것에 역량을 쏟았기에 강점이 분명하다. 선택과 집중은 거창함이 아닌 사소함에서 부터다. 부유하는 무리 속에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집중하는 그의 면면은 청정한 선비정신처럼 다가온다.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비판세력에게서도 구실이나 명분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에서다.
〈100분 토론〉의 경우, 방송 400회를 넘기면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토론’이라는 포맷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되도록 물 흐르듯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온 손석희의 노력이 클 것이다. 시청자들은 토론 참가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대변해주길 바라기도 하고, 때로는 참가자들의 말에 설복되기도 한다. 결국 토론 역시 커다란 의미에서는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소통의 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 24 토론의 팔 할은 경청이다 중에서 >
이렇듯 손석희 교수로부터 세상을 본다.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오뚝이처럼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의 스타일에 매료된다. 끊어 넘치는 열정이 무엇인지, 일에 대한 프로페셔날리즘이 무엇인지 그로부터 찾을 수 있다. 어김없는 시각에 하루를 명쾌하게 열어 젖혀주는 그의 당당한 진행으로부터 막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그의 건강하고 살아 움직이는 칼칼한 비판을 통해 우리 사회는 점 점 더 좋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소외받은 자들의 대신해서 소통해 주는 영원한 대변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