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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1Q84>는 두 개의 달이 뜬다. 붙박이처럼 들러붙어 존재감을 상실한 달과 서늘한 채취를 풍기며 오롯이 떠 있는 이끼 낀 푸른 달이 뜬다.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못할 시간에게 금지된 일들이 버젓이 피어오른다. 그 속에서 생성된 푸른 달은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을 상징하는 피조물이다. 그런데 왜 두 개의 달이 존재하는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상을 놀래어 주는 비상한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상실의 시대>를 거쳐 <해변의 카프카>로 이어지는 그의 전작에서 드러난 탁월한 인물묘사와 심리전개의 칼날은 녹슬지도 않고 오히려 더욱 벼려진 모습이다. 뜬금없이 출현해 암호부호를 연상케 하는 <1Q84>의 의문부호(Q)는 강한 호기심을 확대 유발한다. 대관절 그 곳에 무엇이 있기에.
인간은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갈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를 통해 정체성을 구한다. 하지만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나 고독하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이 물질적인 풍요는 가져 다 주었을 지언즉 정신적인 만족까지는 해결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결여된 상실이다. 세상에 함몰되어 가고 자연으로부터 유리된 개성과 정체성이 사라진 상실의 전형이다.
하루키는 인간을 향한 원형적인 물음에 충실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나타내고자 한 강한 메타포(암시)도 인간성의 회복이다. 인간이 고안한 이념의 실체와 당위의 대립과 체제의 충돌이 그 기저에 유유히 흐른다. <1984년>은 또한 조지오웰의 단편선의 제목이다. 그 속에 빅브라더가 존재한다면 이 책에는 리틀 피플이 존재한다. 대립각의 극단에서 그들이 좌지우지하는 세계는 무기력함으로 물든 인간을 통찰하는 동시성을 가진다.
이처럼 하루키는 이 책의 완성도를 위해 상당 수준 노력한 흔적의 추출물이 다분히 함유하고 있다. 장중하게 깔리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위시해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케 하는 상상력과 판타지적 요소는 공력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의도되었든 우연이든 하루키는 익숙한 극적요소를 적절하게 버무려 전혀 다른 새로운 것으로 재생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뜻 언뜻 다가오는 낯익은 정경은 신비하기도하며 농염하며 동시에 지극히 보편적이고 평범하다.
책은 간결한 호흡으로 시작된다. 여주인공 아오마메(靑豆푸른콩)와 덴고의 주거니 받거니다. 그들 사이를 가르는 현실의 경계를 통해 하나로 이어지는 통로의 알고리즘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거니와 숨은 그림 찾기처럼 모습을 감춘 편린을 찾는 것도 나름 흥미롭다. 각권으로 방대한 분량임에도 지루함이나 이해를 저해하는 대목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 숨에 흐른다. 무엇을 볼 지도 어떻게 흐를 지도 예정해 내달린다. 하지만 어김없이 다가오는 종착역은 아쉬움이라는 큰 산으로 되레 버티고 섰다. 더 이상 나아갈 곳도 없으나 끝이 아닌 미완의 무엇이 있기를 간절히 갈구하는 마음이다.
아오마메는 이단종교집단인 ‘증인회‘에 심취된 부모의 손에 자랐다. 집집마다 돌며 성경에 새긴 문자 그대로 악행을 멈추고 따르기를 강권하는 혹독한 종교단체다. 아오마메는 자신의 이름만큼 수치스러워 했으며 혐오했다. 어린 자신으로부터 자유를 뺏어 간 증인회는 압제의 대상이었다. 반면, 덴고의 아버지는 NHK수금원이다. 일요일마다 어린 그의 손을 붙들고 밀린 수금활동은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둘의 공통점은 타의에 의한 지배다.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기성화 된 현실에서 유리된 현실의 대항인 셈이다. 결국 자유를 위해 희생된 단절과 결별은 고독을 잉태한다.
하루키는 그들로부터 인간에게 결락된 삶의 모습을 투영코자 하였다. 인간에게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 받지 못하는 불안정한 삶의 모습을 다양한 상념으로 녹여냈다. 설명 안 해 주면 모른다는 건, 말하자면 아무리 설명해 줘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덴고의 아버지의 의미심장한 독백처럼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지 모른다. 인간은 보이는 것에만 의지하고 믿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착각으로 당위의 부정을 추동하는 요소다.
실제 세상은 인간의 착각으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관념과 실제의 경계에서 의식이 전환되고 유형의 물질에만 집착하는 것은 무형의 가치를 파괴하는 원형이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가르고 삶이 통찰하는 가치를 분명하게 깨닫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달이 두 개일 수도 있다는 명제보다 더 어려운 대상이다.
아울러 하루키는 달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보다 내밀하게 관찰하고자 했다. Lunatic과 Insane의 미묘한 차이다. 달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중세시대의 암흑이다. 페스트가 창궐하고 어둠이 지배하던 불운한 시절 달이 인간을 광적으로 돌변하는 단초를 제공하는 원인으로 인식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도사린 공포다. 달이 기울고 차는 현상에 따라 인간도 따라 움직인다는 귀납적 추론인지 모른다. 따라서 인간에게 달은 만조에 따라 인간을 조종하기도 밝혀주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하루키는 보이는 것, 즉 존재하는 것에 착안했다.
하루키는 또한 책 속에 나타난 이단종교를 통해 기성사회의 문제점을 적시하며 통찰했다. 덴고가 디스렉시아(난독증)에 걸린 17세 소녀 후카에리의 <공기 번데기>를 리라이팅하는 계기를 통해 알게 된 코뮌(주민자치)의 변화된 모습은 인간이 걸어 온 사회적 역사를 아우른다. 안톤 체호프가 <사할린섬>에서 만난 원주민 길랴크인의 삶의 형태로부터 출발한 원시사회의 모습은 코뮌에서도 이완된 형태로 나타난다. 당위와 실재의 이상에서 코뮌은 다양한 세력, ‘선구’와 ‘여명’의 출현으로 이지러지고 변형된 해괴한 모습으로 변한다. 조지오웰이 <1984년>에서 그렸던 빅브라더가 지배하던 통제와 구속의 망령이 자유를 밀어내고 토착한 세상의 전형적인 오마주다.
원시적 충동과 현실과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은 자아다. 자의식이 인간의 감정을 다스리고 물질과 실체를 구별하고 경험을 통해 불완전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성과 동일성을 수반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하기에 하루키는 선험적인 가치에 중점을 둔 인식의 확장을 염두에 두었다. 이른바 인격의 형성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적 규범과의 관계, 더 나아가 타자와의 관계를 의미심장하게 통섭하였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예정된 하나의 지향점을 응시한다. Parallel World(패러럴 월드)의 필연적인 교차점이다. 병행하게 존재하는 세계의 출현이다. 리틀 피플이 지배하고 의식하는 자를 통해 계획하고 받아들이는 자를 통해 균형을 맞추는 어둠의 세계다. 그 곳에 떠오른 이끼 낀 푸른 달은 동시에 하나로 묶기기도 외따로이 나누어지기도 한다. 찰나의 순간을 통한 만남이 그들을 강력한 끈으로 묶은 것은 사랑이다. 상실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 불멸의 사랑이다.
기억하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란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거야.
- <세 가지 질문> 中에서 톨스토이 -
이렇듯 <1Q84>는 낯선 질감과 형질로 가공된 태생이 다른 이야기다. 인간을 이루는 단위를 쪼개고 남은 기초적인 물질로 다시금 조합하여 짜 맞추어 새로운 세계를 출현시켰다. 적확하게 분석하고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수리적 해석은 탁월한 스토리텔링의 전형을 이룬다. 달, 공기 번데기, 리틀 피플, 10살의 자아 그리고 상실. 체계적으로 조합되는 인자들은 이 책을 추동하는 힘이며 하루키의 라이팅 파워(writing power)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