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의 도시들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코맥 메카시의 글의 매력은 독특함이 주는 오묘함이 맛이다. 건조한 문체에 더 해 장중한 위압감이 꼬리표처럼 빠트릴 수 없는 이미지로 항상 주변을 맴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이야기의 흐름은 작중인물을 수시로 넘나들며 다양한 시선처리를 통해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며 의미전달자로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이렇게 모여 이루어진 이야기의 얼개는 일정한 규칙과 당위를 부여하며 행위나 대상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한다.




이 책 <평원의 도시들>은 국경 3부작의 최종편이다. 전편의 <모든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각 편마다 등장하는 인물이나 배경이 어슷비슷하게 얽혀 전개된다. 20세기 초반 빠른 도시화와 문명화의 이행기로 과는 과정에 놓인 하류 인생의 애환과 삶에 대한 집착을 명멸하듯 써 내렸다. 저자가 이렇게 탈고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유려한 문장과 상황을 지배하는 글감으로 가득 채워 져 있기에 질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완성도가 매우 높다.




전작 <핏빛 자오선>에서 작가는 인간의 파괴적 본능을 통해 악의적 모습을 사실적으로 소묘하여 섬뜩하다 못해 끝없는 공포심으로 내몰았다. 인간이 토해 내는 분노와 광기어린 행위들이 어떻게 자행되고 되풀이 되는지를 거름망 없이 날 것 그대로 구현해 냈다.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반추케 하는 역할을 <핏빛 자오선>이 맡았다면 이 책 <평원의 도시들>은 소외받은 자들의 삶의 원형을 통찰한다. 버림받고 결핍된 인간 군상들의 사랑과 애환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편인 <국경을 넘어>에서 빌리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찰하였다면 이 책에서는 카우보이 존 그레이엄의 신산한 삶을 담았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빌리와 존 그레이엄이 우연히 찾아 간 국경 허름한 매음굴에서 만난 창녀 막달리나와의 사랑을 그린 내용이다. 존과 막달리나의 사랑은 외줄타기를 하듯 위험천만한 상황과 현실로 내몰리며 어느 한 순간도 예정된 삶의 범주의 틀로 이끌 수 없다. 존 그레이엄이 소몰이의 삶을 통해 체득한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익힌 소통의 언어와 그에게 새겨진 원초적 순수함이 동시에 꿈틀 거리는 본성의 충돌은 상당한 대비효과를 이룬다. 그러하기에 그를 둘러싼 외부로의 현실은 마치 예정된 수순으로 체스 판의 말을 옮기듯 한 치의 오차 범위 없이 돌아가는 현실과의  심각한 괴리감이다.




반면 작가의 시선은 줄곧 암울하고 어두운 곳으로 향해 있어 차갑고 냉소적이다. 가감 없이 벌어지는 살육의 현장과 거칠고 말라비틀어진 사막의 정경, 뒷골목 어스름한 홍등가의 매음굴 등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모든 관점의 진실은 정해진 상황의 불투명한 미래와 현실의 불안정한 상황을 지배적으로 이용한 작가의 비범한 재능이다. 인생의 나락 저 끝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간들에게서나 맡을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거나 한 치를 예정할 수 없는 의미 없는 삶의 전형들이기에 패배감과 동물적 본능만이 똬리를 틀고 독기를 머금었다. 이처럼 그들의 윤기 없으며 각박한 일상을 지극히 건조하고 사무적으로 관망하는 모습을 전편에 걸쳐 유지하는 작가의 일관된 스토리 전개에 대단함을 감출 길이 없다.




따라서 코맥 메카시의 글의 특징은 시선의 자유로운 이동과 작중인물의 심리세계를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한 채 의도적인 억제와 거세를 끊임없이 자행하는 이채로움에 있다. 또 그는 주위 배경이나 자연 속에 있는 사물의 특성을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의인화시켜 인격을 부여함으로서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결부시켜 표현한다. 오감이 전이된 자연의 섬세한 묘사와 공감은 그를 미국현대문학의 거장으로 추켜세우는 견인차가 되며 상당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 그의 책을 접하고 있노라면 친절하지도 상세하지도 않은 낯선 풍경에 생경한 느낌마저 든다. 여기에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변두리 내지는 외곽, 경계가 주는 고정된 이미지의  고착화는 실패와 불안으로 점철한다. 그가 왜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맞닿아 있는 끝없는 사막지대에 애착을 가지고 글감으로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이중성에 상당부분 도취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작가는 서로 닮아 있는 그들을 통해 연민과 삶의 다양성 및 정체성을 찾고자 하였는지 모르겠다.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미래를 잃은 불투명한 영혼들을 통해 각자의 삶이 필연적으로 예정되었음을 의미하며 불가지론적인 무의미한 믿음이다. 작가는 작중 등장인물인 빌리, 눈먼 장님 마에스트로, 거리의 부랑자들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과 집착이 만들어 내는 헛된 소망과 번민이 모두 부질없음을 일갈한다.




전편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는 전개가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한다면 낯선 느낌이다. 아름다움보다는 추하고 역겨운 곳에서 인간의 원형을 통찰하고자 했던 작가의 노력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어려움도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난해한 생각줄기도 한 번의 긴 호흡보다 여러 번에 나누어 생각하다보면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이 책은 삶이 주는 무게감이 무엇인지 공감할 좋은 재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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