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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테러리즘
헨리 지루 지음, 변종헌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7월
평점 :
21세기는 신자유주의가 생산해 내는 문제에 대해 갑론을박이 잦다. 현재의 금융위기를 위시해서 불거져 나오는 각종사회현안문제에 이르기까지 곱지 않은 시선 일색이다. 불과 사반세기 전만해도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큼 기세가 등등하여 하늘을 찔렀던 이념의 헤게모니가 끝없이 추락중이다. 왜 신자유주의는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가? 왜 신자유주의는 탐욕과 집착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신자유주의는 어떠한 명쾌한 해답도 내 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 신자유주의의 태동은 영국의 대처수상에 의해 비롯되었다. 대처리즘으로 불리며 가라앉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획기적인 경제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그 빌미를 제공한 신자유주의는 미국으로 건너 가 더욱 공고히 다져지게 되었으며 확고부동한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이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을 중심으로 확고부동하게 다져지기 시작하여 현재 오바마정권 이전의 돌아온 탕아 부시대통령에게로 정점의 봇물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강력한 경찰국가를 지향하며 정부의 다운사이징을 기치로 공공영역의 민영화를 주도하였다. 그런데 미국이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열광하며 빠르게 시민적 가치를 소비적 가치로 재편하는 현상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미국식 제국주의의 야망이다. 누구나 능력이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도 알고 보면 신자유주의가 배출한 이념의 터전이다.
이 책 <신자유주의의 테러리즘>의 저자 헨리 지루는 신자유주의가 뿌리 내린 미국사회의 부정적 현상을 고발하고 부시정권이 다진 오만한 정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는 거시적 안목으로 사회전반에 걸친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광범위한 분석과 치밀한 자료를 통해 세밀하게 고찰하고 그 속에서 드러난 거대담론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찰하였다. 미국이라는 거대제국이 이념의 중심을 잃고 표류하던 세계정치의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한손에 거머쥐고 새로운 미국식 파시즘으로 돌변한 이유도 신자유주의라는 욕망의 정체가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실 미국의 최근 행보는 위험하고 돌발적인 깡패국가의 전형을 여실히 보여 준다. 타협과 관용은 부덕의 소치요 방종과 방임에 의한 군사주의화로의 이행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자율, 책임의 사유화, 무관용에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권위주의에 도착된 미국의 실상도 신자유주의의 이념에 경도된 그것과 같다. 정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감세를 통한 양극화를 부추기고 사회보호망을 뒤흔드는 정책의 모든 출구는 탐욕과 통한다. 소위 말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악취 나는 현실의 대변이며 분출이다. 애국심을 무기로 군국주의를 자극하고 미란다원칙을 유린하는 오늘날 미국의 현실은 시민민주주의의 자유가 송두리 채 뽑힌 희망이 얼어붙은 암울한 모습이다.
저자는 총6장으로 나누어 신자유주의로 물든 미국을 묘사하였다.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유지하며 권위주의로 탈바꿈한 미국의 모습과 신자유주의의 주된 이념을 통찰하며 속속들이 그 폐해와 문제점을 까발렸다. 결국 사회 전 방위적으로 퍼진 신자유주의정책은 정치로부터 파생된 통치행위에서부터 제반 영역의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포괄적 파급효과는 공교육의 붕괴, 인종차별, 부의 양극화의 다양한 문제의 핵심으로 부상하였다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진다.
신자유주의는 지구적 통치권에 상응하는 국내적 통치권을 나타내는 조직편성이다. 이러한 통치권은 비밀스런 첩보국가의 행위, 요컨대 기업화된 미디어, 학교, 교도소 그리고 한층 강화된 행정적, 규제적 경찰력을 위한 다양한 기술들을 통해서 성취된 것이다. (P-300)
따라서 신자유주의사상은 민주적 가치의 기본이념을 소비적 가치의 경제구조로 인식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결과에 다름 아니다. 이 책의 사례로 소개된 미국의 문화적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권위주의에 압도된 숨 막히는 탐욕과 광기만이 오롯이 남는다. 7살 유치원생이 사소하게 벌인 장난을 경찰의 무분별한 진압과 결박은 도를 지나쳐 제국의 피비린내만 연상케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사회 저변으로 퍼져 나가는 현상의 요체는 미디어의 장악에 있다. 미디어를 통한 치우친 이념의 확대재생산은 문화적 변질을 혼동을 빠르게 전파하고 사고를 경직시킨다. 무자비한 규율과 도덕적 무관심의 풍토를 사회의 문제에서 개인의 문제로 격하 시키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게 된다. 이러한 파괴적 행태는 미국사회의 문제를 떠나 전 지구적 신자유주의에 도취된 문화적 현상이다.
이것이 현재 미국의 현실이라면 과연 신자유주의의 광기는 언제까지 그들을 유린하고 목을 죄어 올까? 과연 그들은 이러한 암울한 현상을 타개할 지성과 인식이 실종된 것일까? 비판적 지성이 사라지고 견제와 균형이 요원한 세상은 희망이 없다. 공정하지 못한 출발이 자행된 게임에서 페어플레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순진한 착각인지 모른다. 신자유주의는 공공선을 승자원칙에 시장의 기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유방임이라는 허울 속으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저자가 신랄하게 꼬집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의 망령에 젖은 모습이 그들에게만 국한된 문제일까? 그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설익은 신자유주의의 정책이 남발하는 것을 보면 위태하기가 이를 때 없다. 우리는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가둘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금융시스템 뿐만 아니라 거대기업의 출현과 사회민주주의 붕괴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부의 이익으로 바뀔지 모른다. 그것은 시장의 가치가 인간의 의지마저 지배하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어둠의 세상이다.
이처럼 이 책의 저자가 통찰한 거대담론의 실체에 한 번 놀라고 매우 정교하게 정리된 그의 주장에 또 한 번 놀란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외투 속 내밀한 풍광을 속속들이 드려다 본 기분이다. 중구난방으로 드러나는 신자유주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아울러 미국이라는 거대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제사회의 협약을 비웃고(교토의정서와 관련한 환경협약) 거대 금융기구를 내세워 이익을 착취하는 실체를 제대로 바라보고 인식하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더 이상 신자유주의는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