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권의 책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파괴력은 그 어떤 이미지보다 더 강하다. 한 줄 한 줄 엮인 글자의 움직임은 무에서 유로 나아가는 경이적인 방법이다. 하여 천재작가가 쓴 이 책의 감흥은 수초처럼 온몸을 감싸는 치명적인 유혹과도 같다. 버둥거릴수록 빨려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 공포의 위력이다.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극한의 공포심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때 써야 한다. 무서움이 자극하는 인간을 향한 원형의 감정을 통해 그 상태 그대로 숨이 멈출 것 같은 두려움과 홀로 조우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공포물을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이 책이 던진 시선의 모든 것이 인간내면 심연에 깃든 어둠을 향한다. 하드 보일드한 문체에 숨은 플롯의 빼어난 전개의 간결함을 통해 감정전이의 격랑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한다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겠다. 놀라운 것은 끔찍하고 호러적인 요소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단지 행간 사이사이에 숨어 알알이 박힌 감정의 연결고리를 작가의 순발력과 창의력으로 인해 가공할 만한 상태로 이끈다는 것이며 헤집어 버린다는 것이다.

<천사의 게임>은 기대하지 못한 반전의 패러독스와 거미줄처럼 얽힌 알고리즘의 치밀함에 저항 없이 굴복당하는 모종의 쾌감을 주는 책이다. 감춰두었던 두려움의 원형과 실체를 조심스럽게 수면위로 끌어 올려 해부하고 자세히 관찰해 그대로의 상태를 보여 주는 사실적 묘사에 근접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데블스 에드버킷>에서 타락한 변호사로 등장한 어리석은 인간의 탐욕을 꿰뚫어 본 악마의 치명적인 유혹처럼, 이 책 또한 인간의 본성에 엉겨 붙은 악의 유혹처럼 타락천사 루시퍼의 욕망의 굴레에 사로잡힌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내홍으로 불타던 시절이었다. 과도기적 상황과 불안정한 정치구조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저주받은 도시처럼 암울한 시기였음을 말해준다. 침통하고 냉소적인 당시상황을 감안한다면 잊힌 책으로부터 연결고리를 찾은 저자의 모티브는 시의적절함을 넘어 딱 들어맞는다. 감정을 억압당하고 권력을 향한 폭정은 닮은꼴처럼 엇비슷하다. 따라서 불가피하든 그렇지 않든 반영되는 작가의 경험적 소산은 이야기의 얼개를 만드는 틀과 같다.

글을 쓰는 작가의 로망이라면 글로부터 촉발하는 독자와의 짜릿한 교감의 순간을 갈구하지 않을까.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란다. 창작의 고통을 오롯이 이겨내고 혼을 담은 글쓰기를 통해 타자를 사로잡는 공감의 무엇을 생산해 낸다면 오르가즘처럼 짜릿한 쾌락의 순간일지 모르겠다. 저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책에 영혼이 담긴다는 철학으로부터 사유했다.  

다비드의 타자를 위한 삶은 목적과 방향을 혼동한다.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는 얄궂은 운명에 유린당하고 고통당하는 나약한 순간을 통해 천사인지 악마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유혹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여기에 몽환적이고 암울한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배열하며 연결하는 서사구조는 인간 내면 심연의 원초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기에 적합해 보인다. 책에 담긴 사유의 바다가 영혼을 지배하고 삶을 통제하는 판도라 상자가 된다는 발상이 전환이 신선하다.

이처럼 초자연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첨가된 작품들은 인간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어 탐구하는 공통점이 있다. <파우스트>의 괴테가 그랬듯 <천사와 악마>의 댄 브라운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과 매우 근접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유혹의 손길을 뻗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대천사가 하느님의 명을 거역하고 반란을 일으켜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루시퍼의 출현과 일맥상통한다. 루시퍼를 통해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운명의 순간을 나선형 구조로 배열하고 그 속에서 번민하고 집착하는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드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비드를 둘러싼 크리스티나, 이사벨라로 묶인 애정관계 또한 이야기의 생동감을 불어 넣는 좋은 재료이자 기교적 장치다. 또한 우호적인 인물들을 배치하고 뜻밖의 인물의 등장과 출현을 통해 반전의 효과를 기대하는 구조는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반전의 순간이 호락호락 예측가능하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막다른 골목에 몰린 외길을 가는 확신의 순간을 불측의 미로 속으로 밀어 버리는 것이 진정으로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지 않겠는가. 하여 섣부른 추리로 예단하다 작가의 필력에 농락당하지 마시기를.  

어스름한 밤 혼자 읽으면 괴괴함에 오싹해진다. 칠흑의 어둠 저편으로 누군가가 바라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릴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마치 저주받은 도시로부터 날아든 천사의 밀랍이 봉인된 편지로부터의 유혹이 시간을 마비시키는 팜므파탈의 매혹과도 같다. 이로써 우리는 다비드를 따라 투영되는 세계가 현실처럼 쏟아지고 시리도록 차가운 어둠의 공포가 대기를 얼게 만든다. 밤늦은 시각 이 책을 읽지 마시라. 검은 피처럼 퍼지는 무서움에 몸서리치는 공포가 엄습할 것이며 뜬눈으로 지새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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