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내 심장을 쏴라“는 일견 섬뜩한 말이다. 지극히 은유적 표현임에도 드러난 상태는 두렵기 그지없다. 자유롭지 못하다면 죽음보다 못하다는 감추어진 의미를 차치하고라도 직설적이고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읽는 내내 편하질 못하다. 야릇하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이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마음 한편 애써 누른 저릿한 동통이 동반해 온다. 낯익지 않은 정경으로부터 오는 혼동일까? 아니면 단단한 껍질에 갇힌 불편한 진실일까?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다양한 상념에 물들게 한다. 무엇을 그리고 어떤 것을 담았기에 이토록 절절할까하는 의구심부터 성큼성큼 내지르게 만든다. 두 남자, 이수명과 류승민의 기막힌 삶. 그들은 인간으로부터 절절히 미치고 붙들려 갇혀서 제대로 미쳐 버렸다. 양극단을 오고 가는 곡예단과 같은 삶에 피멍든 20대 끊어 넘치는 열정의 영혼이다. 그런데 그들은 존재감이 상실된 무형의 인간이자 잉여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을 가둘 작위적인 명분에 의해 분류된 수리희망병원 인내반 아무개에 지나지 않았다.


저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그들을 통해 자유를 향한 원초적인 오랜 물음에 답을 구하고자 하였다. 익숙지 않은 배경을 무대로 도두라진 상호대비감을 극대화하였으며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효과를 기대하였다. 이야기는 씨줄과 날줄이 맞물려 돌아가 듯 치밀한 구성과 전개로 진하게 우려 낸 감동을 자아낸다. 한 번에 몰아치는 호흡이 아닌 여러 번에 나누어 걸친 호흡과 템포는 절정으로 향할수록 거침없이 달뜬다. 그들에게 자유의 본질을 구하는 순간부터 예견된 신념을 향한 여정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다. 아니 어쩌면 여유를 잃어 버렸는지 모른다. 이미 승민과 수명의 만남 그 순간부터 운명처럼 드리워진 삶의 무게였는지 모른다.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들이 선 곳은 정신병원이다. 그들을 둘러 싼 군상들 또한 정상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나눈 편견에 불과했다. 오히려 위선도 가식도 없는 순수함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단지 마음이 아플 뿐이지 다른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우리는 살기 위해 자유를 조금씩 양보하고 내어 준다. 그 속에서 정체성의 현기증에 타협하고 순응하며 언제 있을지 모를 미래의 그날을 갈구하며 그렇게 영혼을 갉아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이른바 정신병자다. 심각한 공황장애와 적응장애로 진단된 부적응자다. 그들은 정상의 삶을 살지 않았음에도 너무도 정상에 가깝다. 타자로부터 빼앗긴 자유의 항거는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행복추구를 위한 몸부림이며 처절함이다. 수명과 승민을 이렇게 만든 현실은 진정한 애정과 교감이 결핍된 소통과 공존의 부재에서부터다. 이해와 신뢰가 절실하였음에도 그들에게는 사치이며 벼랑 끝으로 밀려 나기에 급했다.


극단의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를 유기하여 죽음으로 던진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명의 삶에 사생아로 태어나 이복형제들과의 유산다툼에 휘말린 승민의 기구한 운명은 자신을 지배하던 통제된 삶의 전형이다. 사실 정신병원은 눅진하고 괴기스러운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제 아무리 좋게 봐 주려해도 꺼림칙한 것이 사실이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이 단조롭지 못하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간이 만든 전체를 가르는 구분에 우리는 편견의 벽을 쌓고 사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단순히 장애는 정신질환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서 치료를 받듯 정신이 병들고 힘든 상태다. 하지만 엄청난 충격에 의해 입은 내상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묻히기 쉬우며 다름을 식별할 수 없다. 편견이 생산한 착각이자 오만이다. 오만은 구속을 합리화하고 폭력에 무뎌지게 한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그들도 인간임을 뒤늦은 깨우침을 얻는다. 정신지체를 가진 한이와 지은이를 통해 인간의 기본권마저 철저히 유린당한 영혼에 분개하고 생니를 송두리째 뽑아 내 버리는 것으로 울분을 토로하는 한이의 절규에 인간을 혐오하게 한다. 누군가에게 군림한다는 것은 영혼마저 앗아 오는 것으로 인간을 오염시키는 오랜 망령이다. 이처럼 수리정신병원에 수감된 영혼들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하나쯤은 간직한 힘없는 영혼들이다.


저자의 경험칙에서 불러 온 그들을 통해 차별을 목도하고 수명과 승민을 통해 자유를 보았다. 청춘에게 받치는 거창한 헌사가 아니라도 당당히 나설 명분을 얻는다. 인간의 내밀한 본성을 치밀하게 소환해 낸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비열, 외면, 위선, 두려움의 원형은 껍질에 불과하며 세상과 맞서기 위한 수단에 불과함을 이토록 멋지게 담아 낸 그녀의 역량에 차재의 행보가 기대된다.


말랑말랑 굳어 버린 그것은 바로 자유를 향한 치열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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