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정치학 - 와인 라벨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최고급'와인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신의 물방울로 찬사될 만큼 와인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와인을 찾고 소비하는 와인인구의 가시적인 증가는 국내 와인시장을 격전지로 달구어 놓았다. 하지만 와인에 대한 인식이 덜 성숙한 상태에서 자리를 잡아서 인지 와인을 고급문화의 대표주자로 넘겨짚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와인이 종류도 많고 원산지에 따라 급이 달라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애교로 받아 들일 순 있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인 와인문화의 확산은 경계해야할 것임은 분명하다.


와인은 재배지역과 품종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부터 미국, 칠레,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와인으로 숙성하기에 알맞은 토양과 기후를 가진 재배지역에 따라 그 급과 상태가 나뉜다. 이 책 <와인 정치학<은 와인에 등급이 매겨지고 제조와 유통관계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숙성시켰다. 우리가 마시는 와인의 가격과 등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역점을 두어 서술하였기에 읽는 재미가 있다.


책은 최대 생산국인 프랑스와 미국을 중심으로 와인의 역사, 지리적 배경, 시대적 관계, 기후적 관계 등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기술하였다. 실제 와인에 정치학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가늠해 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 타일러 콜만은 뉴욕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다. 와인에 의문을 품은 작은 호기심이 시장의 왜곡현상과 지역 간 비교학적 접근으로까지 발전한 셈이다. 첨언하건데 재미에 반해 쉽게 읽히지는 않음을 밝혀둔다.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대표적인 샤토(지역)는 보르도를 꼽는다. 기독교적 문화관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는 와인을 신이 예찬한 천상의 선물로 비화시키며 와인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졌다. 와인은 빈티지(생산연도)와 떼루아(원산지 체계의 토대)를 근간으로 등급이 부여되었다. 크게 세 가지로 AOC(우수품질와인), VIN de pays (중급와인), vin de table(하급와인)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된 와인은 다시 떼루아에 따라 프랑스 와인협회인 INAO가 주도적으로 관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품질의 질적 구분에 따라 증류되거나 생산되는 지역으로 재편되게 된다. 이것이 생산자와 중개인, 유통업자의 끝없는 쟁탈을 예고하는 단초다. 와인을 고품격의 명품으로 끌어 올리며 소규모 직접거래를 시도하는가 하면 와인으로 인해 발생한 음주피해가 심각하다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내세움으로써 와인에 얽힌 이해타산을 단체의 시각으로 조율하려 하였다. 이에 더 나아가 와인에 첨가물(설탕 등)을 넣어 폭리를 취하거나 등급을 조절하는 사기를 저지르는 일이 끊임없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이 프랑스의 와인체계는 원산지제도에 강하게 묶인 태생적 한계로 누구를 위한 와인생산인지 애매한 상태에 빠졌다. 역사적 흔적을 보더라도 생산업자의 분규와 중개인의 농간은 포도의 달콤함에 매료된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국지적인 갈등이 세계적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불리함을 인식하고 원산지표시가 다소 유연해지고 희석된 위치에 이르렀다는 것은 생존의 파고를 넘는 공생의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더 풍부한 더 값싼 가격에 프랑스의 최고급 와인을 지금보다 손쉽게 맛 볼 수 있지 않을까?


미국은 와인의 토착화가 최근에 와서야 제대로 뿌리를 내렸다. 미국의 50개주마다 각기 다른 주류유통법안으로 주의 경계를 넘어 가는 것이 미국에서 독일로 수출하는 것보다 어려운 현실이다. 미국 내 최대 생산주인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적포도주는 주 내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이는 미국이 대공황의 예상치 못한 경제 재난을 겪으면서 도래한 금주령의 통속에 밀어 넣어졌기 때문이다. 금주령이 희석과실주까지 영향을 끼치긴 하였으나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하지는 못 하였다. 와인이 명멸할 수 있었던 사실도 암울한 시기를 보듬어 줄 위안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와인산업은 와인감별사 로버트 파커가 주장하듯 상당한 수준의 와인을 생산해 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와인의 국내생산과 유통망이 거대 기업의 지분참여로 단체의 주도적 개입이 희박하다. 하지만 각 이권단체마다 상당한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은 와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상당하다. 로비를 통해 전국적인 소규모 양조업 자를 규합하고 유통망을 장악하는 과정은 비단 와인에만 치중되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정치학적인 간섭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프랑스와 미국의 와인산업 변화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파편으로 돌아섰다. 프랑스의 와인 수출 감소가 고급와인수요의 갈증을 해갈시켜 주지 못하고 미국의 대량생산체계는 와인의 깊은 맛을 떨어뜨리는 현실을 생산하였다. 이처럼 저자는 와인의 선택적 지위가 소비자에게 오롯이 남겨진 것이 아님을 역설하며 와인에 얽힌 역학관계를 규명하고 보다 다양한 와인의 식별과 구분이 이루어질 것을 피력하였다.


끝으로 와인이 생태계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하였다. 포도생산지와 생태 역학적 농법의 도입으로 환경주의자의 비난을 돌파하고 지속가능한 유기농법을 도입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포도 농장은 농장개발과 관료주의가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예측 가능한 미래공존의 해법을 찾은 것 같다.


이처럼 책의 전반을 훑어 지나가는 와인에 담긴 비교 역학적 분석은 달콤 쌉싸래한 맛만큼 오묘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와인이 단순하게 포도의 생산 환경에 따라 제조과정에 따라 등급이 매겨질 것으로 판단한 순진함은 벗어 던져야 할 것 같다. 와인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에 이런 내막을 알고 즐긴다면 더 뜻 깊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