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자본주의 폐해로부터 발생하는 암울한 우리의 일상과 자화상을 오롯이 담고 있다. 인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인간 본성에 숨어 있는 야만성과 탐욕, 야비함, 비열함을 알레고리로 연결시켜 하나의 원형질로 묶어 표현해 내었다. 사라져 버린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정인 꿈, 행복, 희망이 무엇인지 다시금 일깨우게 만드는 이야기로 저자의 필력이 묻어나는 글이다.


이 책 <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은 화법이나 이야기가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그려진다. 은유적 표현과 몽환적 서사구조를 통해 작가가 의도한 바람을 신선하게 담아내었다. 저자를 통해 그려지는 인간사회의 단상은 소통하지 못하는 뒤틀린 열망의 발현과 피폐한 정신세계의 복원으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행복과 자아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이 절대 절명의 시대적 과제임을 인식할 때 이 작품의 의미는 더욱 큰 가치를 발휘하리라.


이야기는 거대자본그룹의 총수인 황금쥐와 엄마를 잃어버린 거지소년 철수, 정의와 부조리에서 갈등하는 부장판사의 관계 속에 얽히고 얽힌 갈등구조를 이룬다. 어두운 지하철 내부역사와 연결된 비현실적 판타지 세계는 시공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빠른 공간이동과 이정표를 탐하는 황금쥐의 기괴한 행위는 세상을 들여다보는 열쇠가 숨어 있다. 이정표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가늠좌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이정표가 사라진 세상은 이정표를 통해 제시된 삶의 좌표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것에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원칙과 정의, 배려가 실종된 부조리한 현실세계의 반영이다.  





일반적으로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이미지로 각인된 쥐와 어둠의 권력을 묘사하는 고양이를 차용하여 의인화한 것은 자본주의사회의 고착화된 단면을 그대로 투영하는 역할을 한다. 이른바 탐욕과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미덕과 관용, 겸손의 부재가 가져다주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과 일치한다. 꿈과 희망의 어머니가 백 년 동안 산고를 지속하면서도 출산하지 못하는 의미는 희망을 상실한 인간 본성의 열망이자 분연한 외침이다.

이 책을 꿰뚫고 지나가는 핵심은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찾는 것에 있다. 철수가 꿈과 희망을 대변한다면 부장판사는 정의를 대변한다. 금권에 휘둘려 만인을 위한 행복과 인간 기본권을 보장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권력을 비호하고 야합과 부조리로 점철된 권력구조의 상층부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겨냥한 의미심장한 일침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일종의 시대 고발적 내용을 다분히 담고 있는 내용이라 하겠다.


자본주의의 이상은 자유와 공정한 경쟁을 통해 배분의 정의가 골고루 실현되는 것에 있다. 우리 사회가 건전한 상식이 통용되고 올바른 가치관이 자리 잡을 때 비로써 실현된다. 더불어 매몰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상호간의 자리를 인정하고 겸양과 배려가 확립된다면 분명 실천가능한 일이다.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경제의 통제가 가능하다고 역설한 것의 이면에는 도덕적 인간의 완성이 필요하였음은 분명한 진실이다.

이처럼 이 책은 생각거리를 제공하게 하는 의식이 분명한 책이다. 하지만 엉성한 이야기 설정과 일관성 없는 판타지 설정은 소재의 흥미를 반감케 하는 것으로 아쉬움으로 남는다. 창작의 노고와 수고스러움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식상한 플롯의 전개는 창발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작가가 담고자 한 의도가 분명하기에 어색함을 극복할 동인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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