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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살면서 지나치는 무수한 것들 중 의미를 부여할 만큼 중요한 기준이 무엇일까?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화려하지도 특별할 것도 없는 일들이라면 아무런 감정을 싣기 힘들 것이다. 그저 시간과 공간에 당연한 귀결로 발생하는 현상쯤으로 치부될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에 잠시 비틀어서 돌려 보면 다양한 변화가 생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일지라도 분명 다른 시간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풀검은 한마디로 괴짜이며 유별난 사람이다. 전작인 <내가 정말로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의 단순함에서 오는 철학적 물음에 전 세계인을 함께 호흡하게 하는 필력을 보였던 그가 새롭게 책을 펴냈다. 이름 하여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이다.
로버트 풀검은 이제 늙수그레한 황혼의 시기에 접어든 유명한 에세이작가이다. 그는 복잡다단한 일상의 현상을 유머와 위트를 동반한 감정으로 사물을 재해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별일 아닌 일도 잊어버린 추억의 책갈피를 뒤적이게 하고 낯익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전해주는 전령사와도 같다. 그가 말하는 놀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의 질곡 속에 들어앉은 무거움을 여유로움으로 바꾼 사람이다. 그가 바로 놀 줄 아는 사람이다.
책은 저자의 일상을 따라 대상과 목적을 바꾸어 가며 주변의 일들을 기록하며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그가 일상으로부터 얻은 통찰과 지혜의 앎은 우리를 돌보게 하는 힘이 서려 있다. 실제 그가 제시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이라는 것도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노력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아주 평범함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겪은 일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휴가를 위해 아테네의 한적한 마을 크레타 섬에서 매년 몇 달을 보낸다고 한다. 그는 크레타 사람들이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습관과 타성에서 오는 다름을 발견하고 그들과 동화하는 과정을 통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크레타 사람들은 순박하고 목가적이며 전통을 사랑하고 모여 노래 부르며 즐기며 사는 태생이 낙천적이다. 스스로 바보이기를 부정하지 않고 아둔함을 노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한 삶을 바보라고 한다. 아마도 저자는 크레타 사람들을 통해 삶의 진리와 영감을 얻지 않을까하는 상상마저 해 보게 한다.
우리는 보여 지는 것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인식할 것 인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고 스스로부터의 장벽을 쌓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일련의 거리감으로부터 발생한 긴장관계를 상대의 행위에 대한 인정과 상호소통을 웃음으로 대처한다.
그의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은 원대한 이상도 포부도 아닌 본질 그대로의 상태이다. 이것에 더해 웃음을 덧붙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삶을 의미한다. 겨울사냥을 떠나는 4대의 가족을 통해 원형적인 소중함을 열망하고 변하는 세상의 무게에도 홀로 자리를 지키는 카우보이, 양치기를 통해 변화의 능수능란함이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시한다.
로버트 풀검은 기상천외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사람이다. 집안의 기생하는 곤충들을 모아 올림픽을 개최하는가 하면 모르는 사람과도 격의 없는 농담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또한 일상에서 비롯된 모든 것들에 의문과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철학보다 더 철학적인 자세로 사는 사람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삶의 호흡을 조절하고 숨고르기를 통해 인생의 가치를 새롭게 재고하는 시간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철학은 어쩌면 머리 아프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인간의 존재의미와 사유를 통해 얻은 통찰은 알고 보면 아주 평범한 것인지도 모른다. 삶의 태도나 방식을 조금만 전이한다면 분명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것 같다. 행복이라는 것도 우리가 느끼고 대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이다. 적혈구 수치의 변화에 의해 행복이 좌우된다는 이론적 진실에 불구하도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