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라이크 미 - 흑인이 된 백인 이야기
존 하워드 그리핀 지음, 하윤숙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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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 중 타자에 대한 멸시와 조롱은 본질에서 연유하는 모양이다. 인류가 출현한 이래 보편적인 인습과 제도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 붙은 것이 인종 간 대립과 반목이지 않을까 싶다. 단지 바꿀 수 없는 것, 생래적인 차이로부터 말미암은 다름으로 구별 짓는 것은 어느 곳에나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고질병과도 같은 암적인 존재라 하겠다.

 


이 책 <블랙 라이크 미>의 저자 존 하워드 그리핀은 미국 남부의 전형적인 백인가정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가 흑인으로 위장하여 겪은 흑인에 대한 차별과 백인의 사악한 감정과 경계심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러한 미국사회의 인종 간 차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그 뿌리가 깊고 넓다. 그가 인종의 벽을 허물고자 목숨을 건 인종 간 끌어안기는 감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함 그 자체다.

 


"무엇을 위해 그런 위험한 일을 시도하였는가?" 라는 당시 주류 백인사회의 경멸적인 태도와 안일한 시선에 담대한 용기로 맞선 그의 행적은 신화적 일화로 수많은 미국인들의 가슴속 깊이 각인되어 기록되었다. 그의 위대한 도전은 인간의 비열함과 이중성에 담긴 괴기스러운 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일로 기억되었다.

 


저자의 눈을 통해 보고 느끼고 짓눌린 일을 불과 몇 백 그램의 활자로 읽고 있는 자신이 내심 부끄러워지게 하고 숙연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미국은 기회와 능력이 보장되는 꿈의 나라이다. 그곳에 아직도 봉건주의 사회에서나 있음직한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한다. 더구나 차별과 편견의 잣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주류백인사회의 비열한 시각은 가히 실망을 넘어 분노를 감출 길이 없게 만든다.

 


인종 간 편견과 차별의 시각은 비단 미국의 흑백 간 갈등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저자의 복잡다단한 삶이 잘 대변해 주 듯 2차 세계대전 당시 전 유럽을 공포로 몰고 간 소위 인종대청소, 홀로코스트는 미국의 흑백 간 차별과 비슷한 유형의 갈등이다. 이러한 갈등의 씨앗은 유대인에 대한 오랜 편견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미국 백인사회가 흑인에게 보여 준 차별은 독일인의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는 다른 상대적인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저자가 흑인으로 변장하여 지낸 7주 동안 미국의 남부지역을 관찰하며 경험한 사실은 핵심에는 이중적 양심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백인이었던 동안 보였던 백인들의 태도와 흑인으로 바뀐 뒤 그들의 태도는 교묘함으로 위장한 위선적 태도의 일색이다.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에 대해 연구하고 배운 지식인들조차도 흑인들에 대한 시선은 백인의 배려를 기초로 시작되어야 한다는 우월적 태도를 고수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것, 그것은 지옥과 다르지 않다. 마시고 싶어도 쉬고 싶어도 백인들의 따가운 눈총과 멸시를 이겨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쌓아온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멸시당하고 조롱당하는 비참한 삶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과 자유로 직결된다.

 


이러한 환경과 조건은 인종 간 갈등의 골을 깊게 드리우게 한 당시 미국 사회의 내밀한 모습이었다. 기본적인 인권조차 향유하지 못하는 흑인사회의 처참함은 바로 백인주류사회가 낳은 타자, 몰아내기 그 자체였다. 오랜 기간 동안 백인들의 노예로 살아 온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기구한 삶은 나아질 것도 물러날 것도 없는 벼랑 끝 그 자체의 원형적 삶이었다. 이러한 암흑과도 같은 그들의 삶이 저자의 의미심장한 행위로 흑인사회를 깨우고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기에 더욱 가치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반세기가 지난 이후 저자의 행적과 삶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은 미국이 선택한 새로운 희망의 지도자 버럭 오바마와 무관치 않으리라 본다. 흑인의 인권과 평등을 부르짖으며 무폭력저항운동을 벌이다 순열한 삶을 살아 간 많은 흑인 지도자의 치열한 염원이 이제 그 중심에서 표출되어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고 인권을 유린하던 차별법이 개정되었다 하더라도 쉽사리 백인들의 가슴 한 곳을 차지하던 차별의 시선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화합과 소통이 요원한 근원적 이유는 피부색을 떠나 인간이 가진 음험하기 짝이 없는 악행의 산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집단 성원 내에도 어떠한 구별과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자가 만든 질서라는 명분으로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인간본성인 모양이다.

 


우리의 과거에도 현재에도 다름에 의한 차별은 사회 곳곳에서 만연하고 있다. 피부색의 차별은 동남아인들의 타자로 돌려세우고 애매한 시선과 날선 차별을 시도한다.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근거 없는 고정관념과 경제적 약자에 다름 아닌 그들을 유린하는 그것은 집단배타주의의 빗나간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총체적인 역경과 경제적 혼란을 뛰어 넘을 중요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소통에 있다. 저자가 위선이라는 가면을 통해 바라보았던 처참한 기록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나처럼 검은'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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