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그리샴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번 그의 시간 속으로 흠뻑 젖게 한다. 빠른 전개와 다양한 인물설정으로 지루함 없이 긴장관계를 유지시켜 인간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더구나 지루하고 딱딱하기만 한 법정풍경을 주제로 말이다. 이번 작품 「어필」은 그가 가진 삶에 대한 철학과 깊이 뿌리 내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저자의 사상과 정치적 함의를 뚜렷이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성향으로 이 책 「어필」은 민주주의 국가의 대명사로 일컫어 지는 미국의 권력층 사회의 부조리와 민주적 절차의 수호에 따른 부작용 및 역차별을 여과 없이 소개함으로서 미국 비평가협회의 날카로운 시선과 이목을 받아 독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미국의 사법제도는 우리나라와는 역사적, 절차적, 구조적인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국가가 3심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같으나 재판과정의 참여와 재판관 임명방식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배심원제도의 채택으로 법리적 판단 외에 민주적 참여를 높여 사법부의 개방성을 엿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형평법재판을 통한 판사주재의 재판을 통해 심리가 가능케 하여 이해득실에 따라 재판채택의 다양성을 부여하고 있다.
소설은 유독물질을 무단 방출하여 식수를 오염시킨 트루도 그룹의 제조물책임에 관한 손해배상판결을 구하는 보우모우시의 피해자를 중심으로 출발한다. 법정대결을 통해 거대 자본집단과 결탁한 정치세력의 악취 나는 몰인간성에 집중하며 법정변호사 페이튼부부의 투철한 사명의식과 소송절차의 구조적 모순에 끝까지 저항해 나가는 선악대결의 전형을 따른다.
저자는 큰 틀 속에 다양한 인간군상을 등장시켜 미국사회의 선거구조, 재판구조의 구조적 모순을 유감없이 들춰낸다. 미국은 풀뿌리민주주의인 지방자치가 건실하게 발달되어 있다. 지방의회, 지방정부, 지방사법부의 중요 직책은 주민의 투표로 선출하게 된다. 이러한 선출과정에 이해득실관계에 있는 거대자본과 결탁하고 다수당이 편식하기 위해 오염된 정치놀음으로 뒤바뀌는 것은 어제의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정치브로커를 통해 허수아비와 같은 후보를 배출하는 지방의원, 주 대법관, 도지사 등은 행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제한된 반쪽의 대표로 추락하게 되는 모순적 현실을 생산한다. 이는 비단 미국사회의 문제만은 아니며 미국전체의 문제는 더 더욱 아닐지라도 간과해서 지나칠 수 없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도 낯익은 풍경임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
저자는 법치주의의 진정한 옹호와 사법제도의 독립이라는 숨겨진 진실에 대한 희망을 담고 대법원장 선출과정에 희생된 맥카시의 모습에서 통렬하게 현실을 꼬집는다. 또한 다수결의 원칙의 치명적인 허점인 객관성의 담보를 역이용한 거대자본주의의 사법부 통제에서 일그러진 사법정의에 분개하게 한다. 이렇듯 유전무죄에 대한 삐뚤어진 허망한 현실로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민주주의여, 고맙다. 시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해서 읽었다. 저자가 내포한 이야기 속 진실이 부유한 나라의 구조적 한계를 통찰하고 있으나 남의 일처럼 가볍게 넘길 소재는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또한 빠른 경제성장과 경제일변도의 정책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권사각지대를 형성하여 왔다. 현재는 제조물 등에 관한 책임법이 그 체계를 갖추고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피고(제조물회사)에 전가하여 피해자 우선보호를 실현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법의 구축으로 인권보호를 최우선 법익으로 끌어 올려 실체적 진실과 평등을 구현한다 하겠다.
하지만 재판과정의 접근의 엄격한 보수성 및 높은 장벽과 과다한 재판비용, 시간소요 등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임은 틀림없다. 덜 익은 제도보다 인권보호에 대한 제조물회사의 높은 윤리의식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현실이라 하겠다. 여기에 성숙한 권리의식과 참여의식은 헐겁고 엉성한 법의 테두리를 보다 나은 우리 옷으로 맞추어 나가는 첩경이 아닐까 한다.
이렇듯 이 책 「어필」은 민주주의 허점과 일그러진 인간군상에 대한 통찰이 탁월한 작품이라 하겠다.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 갈수록 공감하게 되고 어지럽게 얽힌 이해집단에 희생당하는 가진 것 없는 보우모우 희생자들의 심정을 가슴깊이 절절히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