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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평점 :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내리사랑은 같은 모양새인가 보다. 나의 아버지도 당신의 안위보다 우선하여 자식의 바른길로 향함을 제일로 두셨다. 그런 깊은 부정이 계셨기에 오늘에 내가 있음은 당연지사이다. 이런 선 굵은 사랑이 담긴 아버지의 가르침은 500년전 에도 환경과 모습만 달리 할 뿐 그 깊이가 달리 보이지 않는다.
이 책 「아버지의 편지」는 조선시대 최고의 선비인 이황, 백광훈, 유성룡, 이식, 박세당, 안정복, 강세황,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가 그들의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를 풀어 엮었다. 한문이 가져다주는 특유의 딱딱한 색깔이 짙게 깔려 있으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흔히 말하는 영판 우리네 보통 아버지들의 모습을 연상케 하며 저절로 늙은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알기 쉽게 풀어 써 하나하나에 해설을 더해 놓았다. 평소 그들에게서 보기 드문 곰살 맞은 모습이나 자식에게 연약한 마음을 내 비취는 인간적인 모습에서 아버지가 가진 어깨가 달리 보이게 하며 어머니와 다른 내리사랑에 새삼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이렇듯 한 시대를 풍미했던 쟁쟁한 선비들의 편지 속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맑은 정신에서 올바른 기운이 발현됨을 몸소 실천해 보인 위대한 아버지들이기에 남달라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있어 가난은 고통이 아닌 지조로 여기며 개의치 않았으며 오로지 학업에 매진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기에 전념하면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 말한다.
세대 간의 갈등은 어디에나 있는 불가피한 모습인가 보다. 매사 하는 것이 못미더워 보이고 여간해서 성에 차지 못하는 것이 아비가 가진 감출 수 없는 본시 마음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자식 또한 마땅치 않은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허나 이 속에 담긴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크고 도타운지 모르는 바 아님을 안다. 그 시절엔 몰랐던 아비의 마음을 아비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어리석음과 함께 말이다.
가난에 겨워 학업이 늦은 아들에게 젊은이들과 헛되이 보내지 마라는 퇴계 이황의 그윽한 충고, 진득이 학업에 매진하지 않고 쉽게 얻을 궁리만 하는 것은 허위임을 근엄하게 지적하는 서애 유성룡의 마음, 조근 조근 상세하게 독서의 방법과 목적을 일러 주며 다 잡아 주는 서계 박세당, 독서야말로 인간의 지극히 좋은 맛이라 추켜세우며 진득하기를 바라는 택당 이식과 구방심 공부에 힘쓰라는 순암 안정복선생의 가르침.
반면 이런 근엄하고 무뚝뚝한 가르침 뒤에 아비로서의 사랑과 인간미가 가득 묻어난다. 손수 직접 고추장을 담가 자식의 건강을 살피는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인 연암 박지원, 시시콜콜 생기는 소소한 일상에 애정을 기울이는 표암 강세황, 손주의 얼굴이 너무도 보고 싶어 오매불망한다는 엄살을 떠는 퇴계 이황과 연암 박지원의 손자 사랑에서 나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아버지의 편지」에는 아버지의 자상한 면모와 함께 자식의 학업이나 인생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자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하기 어려운 준엄한 질책도 담겨 있다. 여기에 더해 아비가 겪은 인생살이에 대해 자분자분 일러 주며 인생 선배로서의 격려를 곁들였다. 근래 보기 드문 좋은 책임에 분명하다. 요즘과 같이 아버지와 자식 간의 정이 살갑지 않은 이 때 곁에 두고 일독하기를 권하고 싶으며, 이 책이 주는 책 그 이상의 남다른 의미를 만끽 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