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역사 - 진실과 거짓 사이의 끝없는 공방
황밍허 지음, 이철환 옮김 / 시그마북스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은 너도 나도 법의 잣대에 맞추어 시시비비를 가리고 분쟁을 해결코자 하는 세상이다. 그로 인해 소송이 남발하고 사법적 정의 구현과 소송경제에 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해 평균 민사소송 건수만 백 만건이 넘어 선다고 한다. 이것이 법치국가가 지향하는 실체적 진실추구와 사법적 정의를 실현시키는 시스템의 올바른 정착인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 다 보면 여전히 일반인들이 제대로 된 법률서비스를 보장받기에는 취약한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차별적 대우가 발생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더구나 현학적이고 난독 불가에 가까운 판례 및 법률조문과 여기에 절차적 복잡성, 소송에 따른 경제적 손실 등 가히 선별적 접근만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총체적 불합리성의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가 보다. 이 책의 저자인 황밍허의 중국 또한 그러하며 미국은 그 심각성이 더 할 나위없다. 한마디로 소송천국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소송경제에 반하는 현실적 문제와 신뢰받는 법원이 되기 위해 추구하여야 할 혜안을 찾고자 각 나라별 법정의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살피고자 하였다. 나아가 중국이 오랜 전통문화를 가진 문화의 중심임을 은연중에 각인시키고 뒤쳐진 자국의 법률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저자의 애국심에 찬 열의를 엿 볼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법정을 중심으로 법정과 관련된 역사, 소송당사자, 재판관, 법정공방과정, 법정문화, 정의의 해석, 그 밖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심판을 중심으로 법치에 기반을 둔 각국 판례를 들어 전개하고 있다. 이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역사 속에 스며든 비화를 곁들였으며 현대 법치주의의 투쟁과정을 관련 사진과 자료를 통해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끔 조목조목 기술하고 있다.


두꺼운 책임에도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구성되었으며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글이다. 다만 이 책이 중국의 현재 사법부를 염두에 두고 엮은 책이라,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이 다소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유교문화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낯설게만 보이지 않으며 날로 발전하는 중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인다면 좋을 듯 싶다.


중국은 예로부터 유가사상이 지배적 가치관으로 자리 잡고 있던 터라 분쟁해결을 위한 소송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한다. 이를 통해 지방관은 소송을 직접 해결하는 것을 꺼려하였으며, 재판관으로 송사에 참여 하기는 하나 법률적 지식이 터무니없이 빈약하여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구조를 돕고자 형조비랑과 같은 요즘의 별정직 공무원(?)이 등장하였으며 더불어 일반인들의 소송을 보조하는 송사(현대의 변호사)가 자연스레 생겨났다 한다.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소개되고 있으며, 법치가 인본중심이 아닌 왕권중심의 도덕적 윤리관에 치우쳤던 어두운 역사와 이권에 결탁한 소송과정을 언급함으로서 인권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저자는 또한 현직 판사답게 근현대의 유명한 각국 사건의 판례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로 냉철하고 논리정연하게 담아내고 있다. 아테네의 현자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명한 격언을 남긴 소송비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망령에 얼룩진 나치전범재판과정, 우리의 아픈 역사와 무관치 않은 일본의 전범재판과정을 낱낱이 담았다.


또한 전대미문의 O.J.심슨 사건과 모순으로 점철된 사람과 원숭이에 관한 재판을 소개하였다. 이 두 사례 속에 담긴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사고와 성숙한 시민의식 및 법치에 대한 경외심을 알게 된다. 스스로 만든 규범(무죄 추정의 원칙)의 모순에 빠져 자가당착의 길로 빠지기는 하였으나 미국사회의 사법에 대한 개방성과 투명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단편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 서구 국가의 성숙한 법치에 대한 경외심과 그로부터 특권을 가진 자 없이 법 앞에서 만민이 평등함을 깨닫게 하여 준다.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서구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시민의식이 새삼 필요함을 못내 부러워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잘 만든 책이다. 실생활에 알아 두면 좋을 법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지루하기만 한 법과 친숙하게 다가 설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저자의 해박한 철학, 세계사, 중국사에 관한 지식을 덤으로 얻을 수 있어 부담 없이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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