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습격 - 영화, 역사를 말하다
김용성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현대인의 여가에 영화란 빠질수 없는 존재중의 하나가 되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두어시간 우리는 현실의 모든 잡념을 잊고 그 안에 빠져든다. 그렇기에 몰입이라고 할 만큼 영화의 매력은 절대적이다. 라디오나 TV가 없던 시절 영화는 사람들을 거의 유일하게 꿈과 이상의 공간으로 인도하던 수단이었고, 각종 첨단 매체가 쏟아지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그 절대적인 자리를 내어놓지 않고 있다. 도대체 어떠한 요소때문에 불과 이 땅에 생겨난지 100년이 조금 넘는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는 영화라는 매체에 우리는 일희일비 하는 것일까.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수도 있고, 현실을 극복하게 할 수도 있고, 가상의 현실을 비춰줄 수도 있다."
우리들의 앞에 주어진 현실은 개인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아마도 그것은 뜻하고 원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여주질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휴식이고 여가이다. 어쩌면 영화는 그러한 우리들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해방공간인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반드시 무얼 배운다거나 교훈을 얻으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저 킬링타임으로 보내기엔 그 시간이 조금은 아까워 보일수도 있다. 결국 영화 한편이 주는 효과는 그 영화를 어떠한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수 있다. 이 책 <제국의 습격>은 그렇듯 영화를 보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영화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으며 그 수많은 것들 중에는 우리의 역사 또한 담겨 있다. 그리고 또한 그안에는 숨기고 감추려 했던 인류의 치부 역시도 가감없이 드러나곤 한다. 침략과 수탈 어쩌면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코드이며 동시에 인류가 성장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러한 영화들을 선별해 그 아픔과 수난의 세계로 우리들을 인도하고 있다.

 

<제국의 습격>이라는 제목처럼 책은 근대 이후 서구제국들의 침략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 동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북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아픔의 역사는 잊고 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인류의 역사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이기도 하다. 책은 우선 해당 지역의 역사를 조망하며 그 시대와 공간을 그리고 있는 영화를 소개한다. 홍콩은 한 시대를 대표했던 단어인 냉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던 곳이다. 책은  중국의 원조를 받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번영의 시작을 알렸던 1962년의 홍콩을 '화양연화'에서, 공식적인 반환직전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시기인  1997년의 홍콩을 '차이니즈 박스'를 통해 보여준다. 물론 해당 영화들이 직접적인 정치적 상황이나 숨가쁘게 돌아가는 국제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그곳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겪었던 시대의 아픔과 혼란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책은 영화의 그러한 면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는 단 한작품만이 수록되어 있다. 흥행에도 사회적인 반향도 그리 크게 몰고 오진 못했지만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는 책의 제목에 부합하는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역사적 고증이나 사실여부를 떠나 '한반도'는 혼란했던 100여년전의 한반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서구열강과 새롭게 태어난 일본 제국주의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대한제국 황실의 모습에서 우리는 지나간 시대의 역사를 조용히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지역적인 거리는 아니겠지만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라틴 아메리카는 너무나 멀어 보인다. 그것은 아프리카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곳의 사람들에겐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않은 아픔의 시대가 있었다. 그것은 인디언과 원주민의 나라였던 북미 대륙 역시 마찬가지일듯 하다. 학창시절 세계사 수업시간에 마치 우리들의 일인양 자랑스럽게 배웠던 신대륙의 발견 뒤에는 총칼을 앞세운 문명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원주민의 학살이 있었다. 서구제국들은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문명을 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곳을 자랑스럽게 식민지로 건설한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조망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그러한 라틴 아메리카의 아픔을 생생히 전한다. 역사적 아픔은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오랜동안 서구의 식민지로 지내온 라틴 아메리카의 인구구성은 그러한 역사의 아픔이 그대로 나타난다. 책은 현대 브라질을 상징하는 '중앙역'과 언제나 혼란의 중심에 서있던 쿠바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소개하면서 정체성을 잃고 혼란속에 빠져 있는 라틴 아메리카 모든 이들의 오늘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제국들의 전장이었던 아프리카는 그 아픔의 강도에 있어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듯 하다. 무려 500여년에 걸친 노예무역의 공급원이 바로 아프리카였기 때문이다. 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에 관한 영화보다는 아프리카인이 겪어야 했던 또다른 아픔을 그린 영화를 소개한다. 노예에서 해방되어 조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통해 TIA(This is Africa!)라는 절망의 의미를 배운다. 아름다운 화면이 인상적이었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서구인의 시각으로 그려졌다면 감명깊게 보았던 '호텔 르완다'는 그들의 시선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본다. 그러한 시선에서 저자는 현재의 우리가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역시도 100여년전 서구인들이 아프리카를 바라본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지적한다. 우리 역시도 똑같은 아픔을 겪었음에도 겨우 살만해졌다고 그러한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지나간 시간은 그저 지나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과 시간의 묶음이 되어 오늘의 우리를 규정하고 있다."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또한 그저 흥미거리 오락거리라 생각하는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한함을 알려주는 듯하다. 다양한 시각은 우리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다 올곧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할 것이다. 책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저 평범히 보았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영화들 속에서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속에서 그 안을 살아갔던 어제의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게끔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영화와 역사의 만남에서 출발해 그 이면의 아픔을 이해하는 멋진 시도라 보여지는 이유라 느껴진다. 승자와 패자라는 시각을 떠나 그것마저도 모두 역사였으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함을 배웠던 좋은 책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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