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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폴라의 유혹 - 화가 남궁문의 산티아고 가는 길 - 봄 ㅣ 화가 남궁문의 산티아고 가는 길 계절별 시리즈 3
남궁문 지음 / 시디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세상은 혼자 왔다 조용히 혼자 사라지는 절대고독의 공간일런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일은 어찌됐든 자신의 책임이며 또한 그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은 그리 가까이 다가와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늘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원리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지만 이내 다가오는 또다른 하루에 우리는 그것을 금방 잊어버린다. 그렇듯 우리에게 삶은 익숙함의 연속이며, 그안에서 우리는 좀처럼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찾지 못한다. 그럴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만나는 새로움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프랑스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고 스페인 북부를 횡단해 성 야고보의 무덤에 이르는 800Km가 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기나긴 고행의 길이다. 중세 유럽인들의 종교적 열정과 속죄의 순례길이었던 그 길이 이제는 또다른 의미의 순례길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 책 <아마폴라의 유혹>은 벌써 이 산티아고 길을 세 번이나 걸었던 화가 남궁 문이 세번째 펴낸 책이다. 스페인에서 유학했던 경험으로 그는 2001년 처음 그 길을 걸었고 이듬해 <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책까지 펴냈다고 한다. 그는 2004년초에도 그 길을 걸었고, 이 책의 배경이 된 2007년에도 그 길을 걸었다고 한다. 세번의 경험이 다른 것은 각각 여름, 겨울, 봄으로 바뀐 계절뿐이다. 그는 40일이 넘는 그 고행의 길을 무엇 때문에 세번이나 걷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는 어떠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 그리고 항상 내 뇌리에 자리잡고 있었던 그 붉은 아마폴라가 핀 들판을 걸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바심까지 나던 나였으니까..."
이미 시중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많은 책들이 나와있다.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 순례를 통해 새로운 자신과 만났다고 이야기 한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 역시 어느날 일상에서 벗어나 그 길을 걸었고 그 순례의 경험을 통해 세계적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고, 독일의 유명MC 케르켈링 역시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흐트러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 되었다 이야기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 남궁 문은 특히 유별나 보인다. 그 힘들다는 고행의 길을 세 번이나 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세번째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친구의 권유에 의한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인해 그는 역시나 이전에 그러한 것처럼 혼자서 대부분의 길을 걷는다. 결국 저자는 화려한 아마폴라 꽃을 통해 여행의 기쁨을 만끽한다. 마치 오줌을 저릴 것같은 전율까지 느껴진다는 아마폴라가 그래서 이 책의 타이틀이 되었나 보다.
무엇보다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사진은 여행책자의 가장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마치 자신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진은 물론이고 화가라는 작가의 특이한 이력으로 인해 다양한 그림을 함께 할 수 있는 행운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거기에 그림과 사진을 조합한 포토샵 이미지들이 더해지면서 상상과 실제의 공간을 넘나드는 착각속에 우리를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길에 나 지신을 내팽개친다는 심정으로..."
세번째 길 임에도 하룻 밤 누울 곳이 없기도 하고 넘치는 욕심때문에 지쳐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길에서 만나는 동행자들로 인해 힘을 얻는다. 여행마저도 꽉 짜여진 일정표대로 소화하는 우리에게 때론 친구로 때론 경쟁자로 그 길을 걷는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혼자 걸어가지만 그 속에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존재한다. 저자 역시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름답게 펼쳐지는 풍경 만큼이나 빠질 수 없는 책의 커다란 부분으로 작용하기에...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지침서로는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자세한 일정도 디테일한 계획조차도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아마폴라의 붉은 빛 만큼이나 우리들을 유혹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소개에 급급한 책 보다는 좀 더 강한 흡입력으로 우리들을 산티아고 길로 이끄는 듯 하다. 그렇게 보까딜료와 오렌지 그리고 하모니카와 함께 하는 저자의 자유로운 여행은 부러움을 넘어 많은 매력들을 발산해 낸다. 아마도 그러한 면들이 현대인들에게 걷기여행을 보다 새로운 여행의 모델로 제시하고 또한 각광받게 한 것은 아닐까...
언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삶의 언저리를 휘감아 돈다. 하지만 결국 용기다. 모든 것을 던지고 떠나는 용기 앞에서 어쩌면 조금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쉽게 만난다. 그런면에서 계절별로 그 길을 걷고 그때마다 책을 펴낸 저자의 용기에 감탄할 따름이다. 세상의 끝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마지막 그림이 무척이나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이 남은 듯 저자는 가을의 산티아고 길을 떠나려 한다. 가을 산티아고 길의 정취는 어떠한 또다른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줄까 기대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