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어쩌면 언제나 같은 패턴이다. 바짝 마른 입술에서 나오는 갈라진 목소리처럼 그의 글은 딱딱하게 한이 서려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날카로운 수사도 그 흔한 인용조차도 없이 그저 시간의 흐름만을 쫓는듯 무미건조한 진행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를 그저 차가운 절망의 나락으로 인도할 뿐이었다. 희망도 없이 내일에 대한 그 어떤 기약도 없이 보이는 그대로 그는 표현하길 좋아한다. 그 자신 조차도 겨우겨우 적막이 지나간 세월의 흔적아래에서 조금은 담담히 현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자전거를 탈때나 겨우 즐거움을 표현하는 작가 김훈이 오랫만에 에세이집을 펴냈다. 지금껏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으려 하던 그가 이 책 <바다의 기별>을 통해 자신의 삶과 가족 그리고 언제나 힘들기만한 치열한 글쓰기의 일상과 일평생 그의 밥벌이였던 기자시절에 대한 기억 등을 조용히 들려주려 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작품을 통해서 작가와 만난다. 작가의 글은 그의 사상이며 또한 영혼이기에 그가 써낸 작품은 독자와 작가가 소통하는 공간이며 독자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세계를 탐구해 나간다. 그런면에서 보면 작가 김훈은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절망과 고통만을 보여주는 말라버린 그의 글에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그가 우리가 기억하고 싶지않은 우리의 치부를 들춰내는 남다른 능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닐까.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전하면서 그는 조용히 아버지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문학기행>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어쩌면 그가 보여주는 가장 완곡한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만든다. 딸의 성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이 그리고 장모의 죽음을 통해 그는 생명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각자가 지닌 생명은 당연히 개별적이겠지만 누구나가 맞이하는 죽음은 보편적이다. 하지만 결코 분리되지 않는 생로병사를 통해 결국은 죽음 역시도 개별적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하기도 한다.

 

'고향과 타향'을 통해 그가 일산에 산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원래 베스트셀러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었는데 몇 년전 어느 날 서점에서 <남한산성>이 손에 들렸고 단 하루만에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소설이 주는 그 절망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적이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그 처절한 이야기를 그렇게까지 살아 숨쉬는 글귀로 표현한 그가 무서웠다. 무엇보다 무서운 글귀는 '임금이 남한산성에 있다.'였다. 그래서 책을 던져 버렸다. 그 기억이 조금 사라질 무렵 후배가 사는 일산의 어느 주점에 갔다가 자리 앞에 놓여 있는 작은 깃발을 하나 보았다. '김훈 선생님이 좋아라 하는 자리예요.'라는 글귀가 자그맣게 적혀 있었다. 순간 떠오른 것은 작가 김훈이 아니라 우습게도 태권 V의 김훈이었다. 김훈도 모르냐는 주점 종업원의 경멸하는듯한 시선 때문에 때아닌 김훈 매니아 행세를 했던 생각이 갑자기 나기도 한다.

 

가끔 그의 글 서문에 나타나는 만경강이 늘 궁금했다. <칼의 노래>와 <밥벌이의 지겨움>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에서 그는 그의 글을 만경강에 바친다는 표현을 썼다. 마침 책 속에 수록된 '시간의 무늬'라는 글을 통해 조금은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힌트를 주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어렵고 난해한 글 속에서 그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일 뿐이다. 짧고 간결한 소설 작품을 통해 보이는 것만이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것임을 그가 알려주었기에 어쩌면 생명과 시간이 맞닿아있는 그 공간이 어쩌면 그에겐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하는 곳이 아니었을까라고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도심을 뒤흔드는 소방차의 행렬을 보며 그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베푸는 절박한 신뢰이며 사랑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어찌보면 대단히 감성적인 작가적 표현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막연한 환상이나 기대가 아닌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부터 기자시절 그들과 함께 겪은 체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는 그가 가진 인간에 대한 기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듯 했다. 오치균과의 대담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회상'과 '말과 사물'이다. 그가 살아왔던 힘든 나날들을 그는 되내이며 그는 절망의 기억들이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똑같은 절망속의 한 인간 이순신을 만난다. <난중일기>는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고 표현할 만큼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술회한다. 그는 그제서야 소통과 단절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언어는 인간을 소통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우리시대의 언어는 이미 정의라는 이름으로 무기화되어 오히려 소통을 단념한 단절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는 아쉬워 한다. 하지만 언어가 가진 허약한 소통력만이 우리를 좀 더 나은 세계로 인도해줄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말자고 그는 강조한다. 

 

"만약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에게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고귀함을 언어로써 증명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는 그 아름다움에는 이 세상의 더러운 악과 폭력 그리고 인간의 야만성이 공존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이야기한다. 그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쓰는 것이며, 자신의 소설 역시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며 언어가 가진 어쩔수 없는 취약성에 대해 말한다.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라 말하는 그에게서 여전히 글쓰기 그 내면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느껴지는 듯 하다. 그는 여전히 빈약하다 하지만 그가 빚어내는 치열한 작가로서의 삶을 통해 그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소통의 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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