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잃다
박영광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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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구에게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을 가진 개체들에게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듯 우리 인간들 역시도 어찌면 당연히 거쳐야할 수순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의 집착을 갖는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 남겨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과 함께 행복했던 삶을 접어야 한다는 아픔 때문은 아닐까. 박영광의 소설 <이별을 잃다>는 단 한순간도 뒤를 돌아볼 겨를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강력반 형사가 범죄자의 칼에 찔려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1인칭 시점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소설은 그가 가졌던 내면의 세계에 대한 묘사가 섬세히 묘사되어 있다. 더욱이 작가 자신이 현직 경찰이기에 그들의 알려지지 않았던 생활들을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간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며 축복이라는 것과 반대로 잔인한 아픔이며 괴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고 불행한 비극의 시간으로 나를 더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안다."
소설은 주인공 한진수가 갑자기 범죄자의 칼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고 영혼이 되어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그 순간 잠시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려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린 시절의 자신과 아직은 젊은 어머니를 만난다. 진수는 홀어머니와 함께 단둘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가 기억하는 엄마는 작지만 언제나 커다란 그늘이었고 편히 쉴 수 있는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그러면서 지금의 자신처럼 언젠가 어머니도 어린시절의 그를 만나러 올 것이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의 다시 시선은 다시금 아내와 처음 만나던 기억을 떠올린다. 나이 든 총각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는 슈퍼에 있었다. 한마디 말도 못붙이면서 그저 그는 무작정 슈퍼에서 끓여 주는 라면을 먹으러 갔던 자신을 바라본다. 

 

진수와 아내 수경은 행복하다. 둘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루어졌고 아들 지운과 딸 수진은 그들 사랑의 결실이다. 그저 행복하기만한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형사라는 진수의 직업 때문에 지운이가 태어날때도 몇 년만에 시간을 내어 놀이공원으로 나들이 갔을 때도 아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 뿐이었다. 가족에 앞서 범죄자를 쫓아야 했으며 언제나 계속되는 잠복과 기다림은 그에게나 그의 가족에게나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기도 했다. 그는 순간 오늘 아침 집에 들어갔던 것을 기억해낸다. 밥솥에서 나는 수증기의 소리와 밥 냄새가 가득하고, 그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아이들이 흘린 반찬 얼룩이 묻어 있는 곰 티셔츠를 입고 여전히 부엌에 서 있는 아내가 있고, 아직 선잠에서 깨지 못한 8살, 5살이 된 그의 아이들이 있는 정겨운 정경이 가득한 그의 보금자리이다. 너무나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지만 그것조차도 그에겐 언제나 어려운 일상의 모습이기만 했다. 그래서 였을까 그는 아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아침에 수진이의 어린이집 재롱 잔치에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지운을 데리고 참석하기로 아이들과 약속을 한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말이 있었지만 아빠가 데리러 온다는 말에 지운은 우산도 챙기질 않고 학교로 들어간다.

 

그의 눈엔 범죄자를 잡으러 가면서도 입가엔 미소만이 가득한 그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리고 수진에게 줄 꽃다발과 함께 넣은 작은 노란 엽서의 '우리 수진이 최고' 글귀를 바라보며 수진에게 전해지지 못했지만 그는 좀 더 멋지게 쓰지 못한 것을 후회할 뿐이다. 이제 그는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아빠를 기다리다 온 몸에 비를 흠뻑맞은 지운이, 아빠가 오질 않아 못내 섭섭한 수진이,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그저 오들오들 떨기만 하는 아내, 그리고 고향에 홀로 남아 그 비보를 온몸으로 받아아들여야하는 노모까지...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흘리는 눈물을 그는 그저 묵묵히 바라보아야 한다. 그때부터 소설은 눈물을 샘솟게 한다. 그가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니기에 그는 슬퍼하는 사람들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제 그는 가야 하지만 가지 못하고 있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몸을 부여잡고 통곡을 해도 어쩔수가 없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은 어쩌면 실제 경찰관들이 언제든지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작품 속의 한진수를 통해 우리에게 경찰관과 그들의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그것은 지금껏 우리가 영화속에서 만났던 경찰들의 모습과는 많은 대조를 보이고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경찰은 어쩌면 그저 하나의 특별한 직업으로 또는 지위를 이용해 부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정형적인 캐릭터로 희화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가 주인공 한진수를 통해 나즈막히 읊조리는 이야기들은 과연 그러한 우리의 인식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가 표현하지 못했던 가족들에 대한 가슴시린 사랑의 말을 보면서 그저 숙연해지는 마음만이 느껴질 뿐이다.

"...나를 닮은 사람이면 좋겠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나를 닮아 당신과 아이들이 쉽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나를 닮지 않아 쉽게 나를 잊어버리면 좋겠어.
그래야 해. 힘들겠지만 그래야 해.
내가 잊을게. 나는 그냥 당신 곁을 잠시 지나갔던 사람처럼, 나는 그때 한 번 담배를 사러 갔던 사람이고, 당신은 어쩌다 단 한 번 나에게 담배를 팔았던 사람이라고.
수경아!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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