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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흔히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도 그럴것이 대부분 우리네 소시민들의 삶이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하고 그렇게 힘겹게 살아나가는 바쁜 일상이 반복되고 게속 이어지면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현실을 돌아볼 여유를 제대로 찾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인생의 쾌락을 오로지 '놀이'라는 하나의 게임으로 즐기는 사내가 있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는 대단히 성공한 변호사이며 거기에 따르는 부와 명예 그리고 사회적 지위까지 어쩌면 우리사회에서 모든 것을 이룩했고 또한 그것을 누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자신의 현실마저도 그저 자신의 놀이에 필요한 부수적인 요소로 삼을 뿐이다. 이제 그의 인생 그의 놀이속으로 들어가 보자.
독일의 작가 크리스토퍼 하인의 작품 <나폴레옹 놀이>는 이렇게 인생을 그저 즐기는 놀이로만 인식하고 있는 남자 뵈블레가 어느날 살인을 저질러 형무소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면서 자신을 변호해 줄 변호사 피아르테스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 형식을 띠고 있다. 뵈블레는 자신과는 일면식도 없는 바크날이라는 남자를 지하철에서 잔인하게 살해했지만 그것이 불가피한 살해였고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살해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을 위해 최선의 변호를 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 정당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낱낱히 고백하는 심경을 편지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의 편지에 따르면 그는 중소기업인 사탕공장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사교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뽐내는 어머니 사이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공장의 후계자로 인식되면서 그에게는 비밀스런 놀이가 한가지 생기게 된다. 그것은 바로 여공들의 무릎위에 앉아 그들의 육체와 몸의 굴곡을 즐기는 비밀스런 놀이였다. 하지만 전쟁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가게 된다. 아버지의 공장은 물론 어머니의 목숨, 그리고 그만이 즐기던 비밀스런 놀이마저도. 하지만 그는 열두살의 자극 즉, 강렬하고 흔쾌히 다가오던 여성적 자극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러한 흥분된 자극이 자신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존재라고 믿게 된다. 패전 후 그의 아버지는 재혼하고 되고 그가 '후레자식'으로 부르는 의붓동생을 상대로 그의 놀이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대학생이 된 그는 공부라는 놀이에 집중하게 된다. 공부는 그에게 새로운 놀이였고 승리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에 그는 공부라는 놀이에 마음을 한동안 빼앗기게 된다.
그는 그렇게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법정에서의 재판은 놀이가 인생의 전부인 그에게 더할나위없는 놀이가 된다. 그의 철저한 준비와 탁월한 역량은 그에게 재판이라는 놀이에서의 연이은 승리를 가져다 준다. 아무리 불리한 재판도 이겨내는 그였기에 이제 적어도 법정에서는 그를 당해낼 검사나 변호사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또한 그의 승리는 그에게 많은 재산과 명성을 함께 가져다 주기에 이른다. 재판이라는 놀이가 실증날 즈음 그는 그가 벌어들인 많은 돈으로 투자를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많은 돈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다시금 절망감에 빠진다. 그 놀이의 규칙을 완전히 터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놀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인생마저 끝났다는 우울증에 빠져버리고 그것을 극복해보고자 어느 외딴섬의 별장을 사들여 그곳에 당구대를 설치해 놓고 당구라는 놀이에 심취하게 된다.
그에게 당구는 결코 새로운 놀이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조용히 집중해서 숙고하기 위해 놀이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는 당구를 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다음 놀이로 정치를 선택한다. 당구와 같이 부단히 변하는 상황이나 한정 지을수 없는 가능성의 수를 내재한 놀이가 정치였기에 그는 그의 인생에서 비교적 긴 기간인 이십여년을 정치판에서 보내게 된다. 그는 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놀이가 나폴레옹의 삶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나폴레옹 역시 연이은 승리로 대부분의 유럽이 자신의 수중에 들어오자 어쩔수 없이 놀이의 무대를 모스크바로 밖에 돌릴수 없었고 러시아 원정에서의 패배는 그를 세인트헬레나의 유배로 몰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것마저도 나폴레옹이 계산한 놀이였기에 자신도 나폴레옹의 길을 걷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해서 그는 전혀 모르는 남자를 살해하는 놀이를 감행하고 체포된다. 그는 편지의 한 부분에서 이 모든 놀이가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아직 놀이가 끝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앞으로도 두개의 놀이가 더 남았다고 이야기 한다.
작가가 만들어낸 뵈블레란 인물은 어쩌면 무언가에게 집착하는 광기에 빠진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는듯 하다. 우리들 역시 어떤 하나의 일에 크게 집착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시종일관 책에서 눈을 뗄수 없게 만드는 이 소설의 매력 역시 그러한 우리들의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서부터 놀이는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다. 결과론적으로 그것이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긴했지만 실제로는 외부에 의한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우리는 어쩌면 태초의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했고 그것이 정당하기에 자신은 풀려나야한다는 그의 주장마저도 게임의 일부라는 엄청난 반전은 작가가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를 게임의 상대로 대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은 의심해보고 싶은 여지를 남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