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속에서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는 그의 직업은 대필작가이다. 마치 유령처럼 유명인의 배후에 철저히 숨겨져 대중에게 자신의 의뢰인이 일반인들과는 다른 그들이 동경해마지 않는 삶을 살았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모습들만이 부각될수 있도록 그들의 삶을 인위적으로 치장시킨 모습으로 보여지게끔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일이기도 하다. 단순히 이야기만 듣고도 타인의 삶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그러한 과정들이 어쩌면 지루하고도 답답할수도 있겠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일을 즐기려하고 있고, 일의 성공의 보이는 시점이 다가올때쯤이면 오히려 의뢰인보다도 더 그들처럼 변모해가며 마치 그들의 삶이 자신의 삶이었던 것처럼 동화되는 가벼운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그러한 전율을 느끼기 위해서는 의뢰인도 깨닫지못한 삶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폼페이>와 <아크엔젤>의 연이은 성공을 통해 이미 대중적이고도 인기있는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라선 영국의 작가 로버트 해리스의 최신작인 <고스트 라이터>는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지만 그 실체조차도 명확하지 않은 대필작가라는 숨겨진 이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절대 알려질 수 없는 권력의 배후를 쫓는 작품이다. 해리스의 다른 작품들이 역사속에서 존재하는 인물들을 내세운 있을법한 팩션이었다면 이 작품은 분명 그로하지는 않다. 그것은 그 시대적 배경이 현재라는 점도 있겠지만 그가 고발하고 파헤치려는 대상이 권력의 심장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이름을 가진 등장인물이더라도 마치 실제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마도 해리스의 작품에 발견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긴박감일듯 하다.

 

돌풍이 세차게 불던 1월의 어느 겨울밤 미국 메사추세츠주 우즈홀에서 미사 바인야드라는 섬으로 가던 배안에서 한남자가 실종되고 그는 변사체로 해안가에서 발견된다. 사건은 단순한 실족사처럼 보였으나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러 온 사람이 영국의 전수상 애덤 랭임이 확인되면서 그 남자의 신원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그가 랭의 자서전을 대필하던 마이클 맥아라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랭의 자서전은 이제 주인공인 '나'에게 맡겨진다. 록스타와 축구선수 등 10여 명의 자서전을 대필하면서 이미 대필작가라는 그쪽업계에서는 어느정도 알려진 인물이었던 나는 그다지 랭에 대해 관심도 호감도 없었지만 1000만달러라는 엄청난 계약조건에 이끌려 맥아라의 후임이 되기로 결심한다. 작품의 집필을 위해 나는 자신의 소속사인 라인하트 출판사의 저택이 있는 마사 바인야드로 가는 배에 오른다. 맥아라가 걸었던 것과 똑같은 여정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랭과 만나고 인터뷰를 하면서 촉박한 마감일자를 맞추기 위해 작품집필에 매달리던 어느날 랭의 집권시절 외무상이었던 라이카트의 성명소식을 듣게 된다. 랭에 의해 해임된후 영국의 미국외교정책에 적대적이었던 그는 랭이 집권시절 이른바 '태풍작전'이라는 이름하에 불법적으로 파키스탄에 거주하던 영국시민들을 체포해 CIA에 인계하면서 그들이 고문을 받도록 조장했음을 고발한다. 랭은 라이카트에 의해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에 정식으로 수사가 요청되어질 위기에 처하고 랭은 그것을 막기위해 미국 권력의 핵심부인 워싱턴으로 날아간다. 그러한 어수선한 과정속에서 나는 우연히 전임자였던 맥아라가 조사했던 알아서는 안될 비밀이 적힌 메모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맥아라가 추적했던 랭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맥아라가 느꼈던 인간적 번뇌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이제 나에게 남겨진 것은 선택의 길이다.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감추어진 진실을 밝혀내는 폭로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철저하게 1인칭 시점인 이 작품은 그러한 소설의 묘미를 살리듯 쫓기는듯한 주인공의 심리적 내면묘사가 탁월하게 느껴진다. 랭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을 '각하의 유령입니다.'라고 지칭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현실의 일에 대해 누구보다도 빠른 파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전체에서 흐르는 분위기처럼 그는 유령작가라는 자신의 처지를 끊임없이 고뇌하기도 한다.
 "고객의 의도대로 불일치를 그려주고, 판단 역시 그들에게 맡겨라. 유령 작가는 절대 진실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집필하는 게 아니라 집필을 도와주는 것이다. …성폭력, 빈곤, 사지마비 같은 불행의 에피소드야말로 매상의 첨병이다. …훌륭한 책은 모두 다르지만 형편없는 책은 모두 같다. 소설이든 회고록이든 나쁜 책들은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섬을 빠져 나오기 위해 탑승한 차량에서 맥아라가 네비게이션에 남긴 의문의 주소를 발견하고 또다른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소설은 점점 흥미를 더해 간다. 구글 검색을 통해 미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는 대목에서는 실제 구글에 그러한 것들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긴박감은 작품내내 주인공의 주변을 감싸고 돈다.

 

지난해 10월 <고스트라이터>의 출간 당시 영국에서는 애덤 랭의 실제 모델이 토니 블레어 전 총리라는 뜨거운 논란에 휨싸이기도 했다고 한다. 테러와의 전쟁, 런던 지하철의 연쇄 폭발사건, 이라크 관련 자료 조작등의 사건들이 실제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던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가인 해리스마저도 부인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블레어 총리가 애덤 랭이 아니었을까라고 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 어느 정도의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국인인 래스가 자신의 나라 수상을 그렇게까지 비하하면서까지 작품을 썼다는 것은 우리의 정서로서는 약간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려 한 것은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달콤한 것만은 아닌 이기적이며 무상하며 그저 덧없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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