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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카드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3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앞만 보고 달려가는 단거리선수 처럼 현대사회는 우리들에게 잠깐의 숨돌릴 여유조차 제대로 주질 않고 있다. 날마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끊임없는 정보의 홍수들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예전에 우리가 가졌던 상상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시절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며 꿈을 꾸었고 그것은 우리들의 감성을 지배하는 가장 커다란 에너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어린시절의 감성을 잊고 산다. 단순히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 뿐만아니라 급격하게 변해가는 사회 역시도 우리들에게서 상상력이라는 힘을 앗아가고 우리들의 시선에 닿는 사물들을 그저 바라보이는 그대로 메마르게만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꾸어 놓아 버렸다.
이른바 '쇼트쇼트'라고 불리우는 초단편소설의 개척자 호시 신이치는 일관된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들에게서 잃어버린 상상력을 되찾아주려 하고 잇는 듯하다. 호시 신이치의 작품속에서 우리들은 현실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경험들을 다양하게 만나게 된다. 그저 상상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든가 혹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을 통해 좀더 풍부한 환상과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들을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안전카드>는 호시 신이치의 대표작 '플라시보 시리즈'의 열세번째권이다. 시리즈의 작품들이 모두 SF라는 한결된 방향을 쫓고 있긴 하지만 각각의 소재와 주제별로 어느 정도 구분을 지어놓은 듯하기도 하다. 우리는 이 책 <안전카드>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한다. 우리가 호시 신이치의 작품들을 보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일본색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소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작품속의 이야기들을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좀더 쉽게 받이들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에게는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바로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존재하고 또한 미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걸어왔던 과거의 가치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작가는 '과거'라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에만 급급하는 우리들을 비판하기도 하며,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모든 남녀가 전혀 다른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는 '출근'이라는 이야기를 통해서는 현대가정생활의 무상함을 꼬집는다. 어떤 요일은 세날난 아들이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요일은 맞벌이를 하는 현대적인 아내가 있기도 하며, 다른 어떤 요일은 독신인채로 자신의 인생을 즐기면서 새로운 연인을 만난다는 설정은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기만한 우리들의 자화상을 비판하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컴퓨터에 의해 모든 인사명령이 좌우된다는 '인원배치'와 그저 회사의 명령을 따라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도 돌아서야만 하는 '업무명령'은 기게적이고 단순하기만한 우리들의 직장생활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짧은 이야기속에서 우리는 호시 신이치가 만들어낸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만나게 된다. 끝없는 이야기 소재를 개발하는 작가의 역량도 대단하지만 이야기를 읽고 그저 흘려 보내기보다는 그안에 담겨있는 작가의 메세지를 찾아보는 것도 호시 신이치의 작품을 대하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또한 기묘하고 환상적인 체험을 통해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속에서 메마르기만한 우리들을 일상을 보다 창조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로 만들수 있지 않을까. 순식간에 읽히는 재미도 있겠지만 작품속에서 느껴지는 빠른 호흡은 우리의 짜증나는 일상과 틀에 짜여진 질서와 상식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