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아이라 재판소동
데브라 하멜 지음, 류가미 옮김 / 북북서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고대 그리스문명이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선사한 것은 비단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시대를 아우르는 절대왕정의 틈바구니에서 민주공화정이라는 정치체제를 꽃피우기도 했으며 개인과 개인의 분쟁을 법정에서 해결하려 함으로써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그러한 전통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현재의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만주주의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으며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현재 우리들이 행하고 있는 재판제도의 원형을 보여주기도 하고 있다. 이 책 <네아이라 재판소동>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년전 아테네에서 벌어진 하나의 재판을 통해 우리에게 당시의 사회상과 함께 당시 사람들이 살아갔던 모습들이 결코 현재의 우리와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듯 하다.
사건의 개요에 앞서 우리는 아테네의 재판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의 재판제도와 같이 피고와 원고가 존재하지만 변호사와 검사 그리고 판사까지도 존재하지는 않는다. 대신 모든 분쟁의 해결은 최소 501명이상의 배심원들이 쥐고 있으며 그들 역시 추첨에 의해 선발된다고 한다. 피고와 원고는 주어진 시간내에 자신의 주장을 배심원들에게 전달해야하며, 재판의 승소를 위해 증인을 채택할 수도 있으며, '시네고로이'라고 하는 자신의 동료를 자신의 연설 시간 일부를 할애해 대신 연단에 세울 수도 있었다고도 한다. 또한 재판의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리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가해지는 벌금이나 형벌은 양측이 제시한것 중에 보다 합당한 쪽으로 선택되어졌다고 하니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합리적인 측면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이 사건의 소송을 건 원고는 아폴로도로스라고 하는 아테네에서 상당히 재력과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소송상대인 네아이라는 겉으로 이 사건의 피고이지만 정작 아폴로도로스의 맞상대는 네아이라의 남편인 스테파노스이다. 사건의 개요에 앞서 재판의 주요인물인 네아이라는 현재의 시각으로본다면 고급창녀이다. 매춘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산업 중의 하나이며 언제나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할 만큼 당시의 아테네인들에게도 남성들의 욕구를 풀어줄 수단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네아이라는 그렇게 니카레테의 고급유곽에서 창녀로 길러졌고 창녀의 삶을 시작한다. 이후 네아이라는 사춘기가 막 지날무렵 새로운 주인을 만나 팔려나갔고 다시 이후 자신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인의 몸이 된다.
네아이라는 외국인임에도 아테네 시민인 스테파노스와 결혼생활을 유지했기에 아폴로도로스로 부터 고소를 당한다. 아테네의 법률은 외국인과 아테네 시민이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폴로도로스는 그러한 자신의 주장을 배심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네아이라의 인생뿐만 아니라 자식들까지도 거론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네아이라의 자식들인지 스테파노스의 자식들인지 아니면 둘 사이의 자식들인지에 대해 분명하게 알 순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스테파노스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자식으로 간주되었던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아폴로도로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불필요할 정도로 네아이라의 삶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하지만 네아이라 개인은 자신을 두고 벌어진 이 재판에 대해 자기자신을 변호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법정에 참여조차도 못했고 그저 재판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만 있었어야 했을 뿐이다.
아테네는 법정분쟁이 많기로 유명한 사회이기도 했지만 이 재판을 통해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듯 하다. 개인적인 원한때문에 상대방을 고소하기도 하고 법정으로까지 이끌어 내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자신과 함께 하는 친구나 친척 혹은 가족의 경우도 절대 예외가 아니었다. 이 네아이라 재판 역시 네아이라라는 개인보다는 원고측과 피고측인 아폴로도로스와 스테파노스간의 뿌리깊은 오해와 불신 원한으로 첨예하게 대립한 결과이기도 했다.
우리는 네아이라라는 창녀를 두고 벌어진 고대 아테네의 재판을 통해 그 시대의 사회를 읽는다. 그안에서 한 여인의 인권은 철자게 유린되어지고 발가벗겨진채 오로지 시기와 질투 그리고 대립과 반목이라는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코드만이 무성할 뿐이고 또한 그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함을 알려 주는 것같아 어쩐지 씁쓸한 마음만은 감출수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