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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페이스
아미티지 트레일 외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우리나라도 어줍잖은 조폭영화들이 인기를 구가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일반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그들만의 어두운 세계를 다루었다는 것과 무엇보다 원칙적으로 힘과 힘이 맞서는 남성적인 터치가 그 인기의 요인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한때 이상열기로 까지 작용하면서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영웅으로까지 미화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만나는 그들의 세계는 그리 이상적이지만은 아닐것이다. 갱스터무비의 대표작이자 교과서라 할만한 <대부>에서 조차 배신과 음모가 졸렬히 펼쳐지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한 사나이의 삶을 통해 암흑가의 배신과 음모를 파헤쳐보는 이 소설 <스카페이스>는 네브라스카 출신의 아미티지 트레일이 직접 시카고 암흑가를 취재하고 조사했던 많은 자료를 토대로 집필된 작품이다. 또한 두차례나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아메리칸 갱스터무비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특히 1932년에 이어 리메이크된 1983년작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배우 알 파치노가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영화로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작가와 제목이 전혀다른 두 개의 소설이 한데 묶여 있는 구성으로 출간되었다. 그중 하나가 앞서 소개한 스카페이스>이며 또 다른 하나가 호레이스 맥코이 원작의 <그들은 말을 쏘았다>이다. 해변에서 펼쳐지는 댄스마라톤이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소재로 펼쳐지는 <그들은 말을 쏘았다>역시 1969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는 작품중의 하나라고 한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서로 정체를 모르는 많은 젊은이들은 오로지 돈 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쉴새 없이 몸을 흔들어 댄다. 로버트 역시도 우연히 만난 글로리아의 권유로 그녀와 파트너가 되어 대회에 참가하지만 도통 그녀를 감싸고 도는 허무함과 무기력을 알 수는 없다. 치열한 댄스마라톤과 더비의 끝에서 글로리아는 로버트에게 자신의 무의미한 삶을 평온하게 끝내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녀의 진심을 목격한 로버트는 그녀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렇게 작가는 짧은 작품속에서 내일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시대상을 젊은이들의 의미없는 광란의 축제와 연결시킨다.
강렬한 알 파치노의 눈매가 기억나는 영화 <스카페이스>처럼 원작속의 토니 카몬테는 비정하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매사에 주의 깊고 정확하며 빠른 두뇌회전과 열정은 그를 지배하는 힘이다. 원하는 여자를 얻기위해 그는 거침없이 암흑가의 보스를 살해하지만 그녀가 또다른 남자와 있음을 발견하고는 둘 모두를 무참히 살해하기도 한다. 경찰의 추격을 피해 군에 다녀오면서 그는 얼굴에 흉터를 얻게 되고 이제 그의 가족마저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제 토니는 이른바 스카페이스 토니로 불리우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조니로보의 휘하에 들어온 그는 상대편 보스를 암살하고 마침내 로보의 조직을 물려받는다. 이제 그는 시카고 암흑가의 거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야망을 향해 달려가는 그이지만 차갑기만한 그의 마음 한켠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가 어릴적 이민온 대부분의 라틴계가 그렇듯 20년이 지나도록 미국이라는 나라에 제대로 조화되지 못하는 부모의 무능함은 여전히 불안감과 당혹감으로 그의 가족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볼 수가 없다. 거친 거리의 총격전끝에 상대세력에 납치되는 절대절명의 상황에서도 그는 그만의 야수본능으로 절대 움츠려들지 않는다. 20대의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보스로 우뚝선 그였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납치에서 탈출한 토니에게는 복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그는 거칠것이 없다. 그의 반대세력도 한때 그가 손에 쥐고 흔들었지만 그를 배신한 경찰마저도...
자신의 신분을 감춘채 거짓으로 가리워진 그의 아메리칸드림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하지만 그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몰락이 어쩌면 자족으로부터 비롯됐고 또한 그의 최후마저도 가족에 의해 행해졌기에...
두 편의 소설모두 철저한 시대상속의 허무함이라는 공통의 코드를 대변하고 있는듯 하다. 자본주의라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은 설익은 이면의 그림자내에 <그들은 말을 쏘았다>속의 글로리아처럼 끝내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채 냉소적인 삶을 마감하기도 하고 <스카페이스>의 토니처럼 시장경제라는 잘짜여진 틀의 뒷면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그가 그토록 그리던 사랑과 권력을 쟁취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벽에 부딪히며 세상을 마감하기도 한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지만 이제는 잊혀지고 있는 하드보일드와 느와르라는 그 시대의 정서가 알고 싶다면 차가운 냉소가 흐르기만 하는 이 두 편의 소설속에서 인간의 차갑고 냉혹한 이면을 만나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일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