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를 접하면서 늘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간다. 눈앞에 보여지는 빠른 사건 전개는 주변인들에게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에 우리는 그냥 그렇게 쉽게 스쳐 보내고 말지만 하나의 영화작품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주인공 뿐만아니라 조연과 많은 단역배우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스텝들의 노력에 의해 완성된다. 물론 영화가 성공되더라도 주목받고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주인공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묵묵히 주인공을 위해 또한 영화의 완성을 위해 기꺼이 협력하는 단역배우들의 노력을 우리는 잊고 있진 않을까.

이 책 <가마타 행진곡>은 아쿠카타와상과 더불어 일본문단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1982년 86회 아오키 문학상 수상작이다. 또한 이듬해 영화화되어 일본 아카데미 상에서 6개부문의 상을 휩쓰는 등 이미 일본 내에서도 완벽한 검증의 단계를 거쳐낸 작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가 김봉웅이라는 본명을 가진 재일교포 2세라는 점이며 이미 대중적인 지명도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작가이며 연출가라는 점이다.

1980년대 전설적인 시대극 <신선조>의 촬영장인 이곳 영화촬영소는 푹푹찔듯 너무나 덥다. 최고의 톱스타 다치바나를 제치고 생전 처음으로 주인공을 따낸 구라오카 긴시로는 촬영내내 신경이 곤두 서 있다. 칼을 맞고 쓰러지는 어느 엑스트라가 자신의 클로우즈업을 방해했다며 그에게 연신 주먹질이 한창이다. 일명 긴짱으로 불리는 구라오카 긴시로는 그렇게 언제나 폭력적이고 권위적이며 남들에게는 눈꼽만큼의 배려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긴짱에게 연신 주먹으로 얼굴을 얻어맞고 있는 사람은 이 영화의 엑스트라 무라오카 야스라는 무명배우이다. 야스는 그저 긴짱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기에 이러한 긴짱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긴짱의 기분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태도이다. 일본대 예술학부를 나왔지만 우연히 같은 작품에서 만난 긴짱을 보고 이 사람을 따르면 무언가 변할수 있다는 예감에 이끌려 그의 전속이 된다.

긴짱은 언제나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려 한다. 야스의 방에 걸려있는 제임스 딘 포스터를 보고 미국 건달이라 할 만큼 원래부터가 배운 것 없고 거친 탓이기도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그는 인정받는 연기력과 외모를 갖춘 스타이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쳐온다. 한때 잘나가는 주연급 배우였지만 지금은 정상에서 약간 밀려나있는 그의 애인 고나쓰가 임신을 한 것이다. 단순하고 이기적인 그는 그 위기를 극복하고자 고나쓰를 야스에게 맡겨 버린다. 야스에게는 그러한 모든 일이 꿈만 같다.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고나쓰와 같이 살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아예 긴짱은 자신과 고나쓰를 결혼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나쓰는 말도 안되는 이 현실이 그저 믿기지 않을 뿐이다. 메구미라는 갓 스물이 된 여자에게 긴짱을 뺏긴것도 분하지만 태어날 아기마저 내버리는 긴짱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좁아터진 야스의 방은 지난 3년동안 옥신각신하며 살았던 긴짱과의 생활에선 느껴보지 못했던 평화로움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학수고대 기다리는 긴짱의 소식은 없지만 야스는 고나쓰에게 너무나 헌신적이다. 돌아오지 않는 긴짱을 기다리다 지쳐 어느날 긴짱의 아파트에 몰래 숨어들어 실컷 운 다음 고나쓰는 야스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긴짱과 야스 두 개의 대비되는 캐릭터는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한없이 나약하기만 해서 때로는 바보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야스와 절대적이며 권위적인 긴짱의 뚜렷한 차이는 독자에게 야스는 무엇때문에 끝까지 긴짱에게 충성스럽고 헌신적이기까지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야스는 긴짱에게 얻어맞을 때 가마타 행진곡의 멜로디를 떠 올린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가마타 행진곡>은 2차 대전 이전에 있었던 마쓰다케 키네마 가마타 라고 하는 영화촬영소의 소가라고 한다. 노래가사에 맹목적인 헌신과 사랑을 담았다는 것처럼 야스는 그 멜로디를 기억해내며 다시 한번 힘을 얻으려 노력한다. 무작정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긴짱이 가부장적인 가장의 권위를 그려냈다면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야스의 캐릭터는 그저 권위에 쉽게 굴복하고 마는 대중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작가가 재일교포 2세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본다면 긴짱과 야스를 천황과 대중이라고 측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역자 역시 옮긴이의 말에서 '작가 자신도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 일본 땅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피차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절대적 권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순응해가는 대중에게 자립의 의지를 호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라는 말을 전하기도 한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의 하나이기도 한 '계란추락'에 앞서 야스는 속으로 되내인다.
"... 아무리 내가 별 볼일 없이 맞고 차이는 엑스트라였다고 해도 그 정도의 연기는 만들어 낼 수 있어. ...긴짱한테 말해. 괜히 나 봐준다고 대충했다가는 아주 내 손에 죽을 줄 알라고."

영원한 아웃사이더 일지도 모르는 엑스트라의 삶을 통해 작가는 자유에 대해 말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결국 작가가 말하려 했던 진정한 자유인이란 자신이 자청한 계단추락이라는 인생의 승부를 통해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려하는 야스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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