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
안토리오 솔레르 지음, 김현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평생을 사랑한 여인이며 그의 생애 전 작품에 걸쳐 문학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여인이기도 하다. 이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잡을수 없는 짝사랑의 대상을 베아트리체라는 표현으로 승화시키며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2004년 스페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달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 <춤추는 나의 베아트리체>는 청춘의 뜨거웠던 사랑의 아픔과 첫사랑이라는 아스라함을 영원히 기억하는 네 청춘들의 마지막 여름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가이자 신문 칼럼니스트인 안토니오 솔레르의 이 작품은 스페인 젊은이들의 성장소설이자 작가 자신이 겪었던 지난 시절의 애환이 녹아있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1970년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어느 이름 없는 바닷가 소도시, 이른바‘영국인 거리’와 그 주변이 이 네명의 청춘들이 마지막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공간이다. 우정과 사랑이라는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10대의 삶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하는 이들은 가슴 속에 저마다 터질듯한 심장을 갖고 있지만 그들에게 그것을 발산할 만한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그들의 마음처럼 소설의 작중화자인 '나'는 어쩌면 소설내에서는 철저한 주변인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격인 네명의 친구들에 늘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만 언제나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다가서는 경우는 없다. '나'역시도 몇명의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저 네명의 친구들처럼 단단한 결속력으로 뭉쳐있지 않기에 '나'는 늘 그들의 우정을 부러워 한다.

신장수술을 받기 위해 마을을 떠났던 미겔리토가 돌아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쉰네바늘의 바늘자국과 반달모양의 흉터는 그해 여름이 오기전 그에게서 공팥을 앗아간다. 13일이나 같은 병실에 누워있던 옆자리의 환자는 끝내 숨을 거두지만 그는 미겔리토에게 단테의 <신곡>을 남기고 떠난다.
"이 페이지에 씌어진 단어 하나하나는 한마리 새와 같아. 단어는 끝이 없어. 너는 하얀 종이위에 씌어진 단어나 마찬가지야. 너는 네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갈수 있어. 책을 닾기 전에, 하늘이 어두워지기 전에 날아올라야 해. 밤이 오기 전에."
13일동안 말이 없던 그가 미겔리토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쓰레기통에 내던져진 콩팥과 그에게 남겨진 단테의 <신곡>은 그에게서 시인이 되겠다는 외침으로 들려온다.

바람벽 파코는 누각과 수영장까지 갖춘 부잣집아이였다. 그러나 늘상 감옥을 들락거리는 아버지와 그 주변을 맴도는 아버지의 여자들은 그를 언제나 지치게 만들기도 했다. 대신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자동차 '닷지'는 그들에게는 비밀스런 상상과 로망을 안겨주는 공간으로 그들에게 자리한다. 멧돼지라 불리는 아마데오 눈니는 아버지가 사라지고 어머니마저 영국으로 돈을 벌러 떠나버리면서 할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게 된다. 가라데와 태권도 브루스 리로 대표되던 동양무술에 심취해 방안 가득 무술잡지를 쌓아놓고 때로는 뒷마당에서 할아버지의 머리위로 위험한 창던지기 연습을 하는 그마말로 반항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불만이 생기면 집안가득 오토바이 '모빌레트'의 매연을 가득채워버리는 눈니는 그런 녀석이기도 하다. 아벨리노 모라타야는 그나마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그저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는게 좋은 단순한 구석을 지녔다. 마음속으로 늘 상상속의 소녀를 그리기도 하지만 늘 멧돼지 아마데오의 고모 그들의 라나 터너를 연정의 대상으로 품는 녀석이다.

미겔리토가 돌아와 그들 모두 수영장에 갔다가 미겔리토는 발레리나 지망생인 룰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때 미겔리토는 <신곡>을 흉내내듯 그녀를 자신의 베아트리체라고 명명한다. 미겔리토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러면 그의 연인 룰리도 베아트리체가 되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누구가 됐건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뜨거운 여름을 즐기기 시작한다.

늘 가슴에 책을 안고 다녔지만 룰리의 삶은 그다지 평탄하지는 않았다. 무용수를 꿈꾸었지만 그마저도 가정형편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이 청춘들의 삶에도 고비가 찾아온다. 어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난생처음 비행기를 탄 파코는 돌아와서는 전혀 딴 사람이 된다. 란제리 판매원 루비로사의 등장은 루리와 미겔리토의 사이를 갈라놓는다. 떠나가는 사랑에 괴로워하던 미겔리토는 카르타고 투구 아가씨라 불리는 알미 아카데미의 선생을 그 상처를 달래줄 도피처로 찾는다. 그리고 찾아온 그 밤은 결국 네명의 청춘들의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리에서 일어나라, 갈길은 멀고 험하다."
미겔리토를 달래주는 카르타고 투구 아가씨의 말처럼 그들의 청춘은 뜨거웠지만 그해 여름은 어쩌면 그들 삶에 있어서 아스라한 추억의 페이지로 남는다. 먼훗날 바람벽 파코에게서 이 모든 이야기를 듣는 '나'는 그렇게 뜨거웠던 그해 여름을 기억해낸다. 그렇게 그 밤 룰리의 춤사위에는 이 세상의 모든 아스라한 율동과 함께 세상에 모든 분노가 담겨 있었다고...

누구에게나 청춘은 생각하기만 해도 설레이고 정열적이지만 또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훗날 뜨거웠던 그 여름밤을 기억하는 '나'라는 존재가 청춘들이 마지막 밤을 보냈던 그 여름을 회상해내는 이야기이다. 10대 젊은이들의 정열적인 사랑과 배신, 우정, 그리고 설레임과 불안으로 가득한 꿈을 여름날의 폭우처럼 그려내고 있다. 여름에 시작되면서 시작된 사랑은 여름이 절정을 맞으면서 불타오르고 마침내 가을비가 내리면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어른이 되어간다. 혼란스러운 시절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청춘이라는 가슴시린 시절을 기억해내는 우리 모두에게 이 소설은 젊은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여름비와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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