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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에그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6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이미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를 본 독자라면 오기와라 히로시가 어떠한 작가라는 것은 대충 눈치챘을 것이다. 이번 작품 <하드 보일드 에그>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는 소설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제목에 쓰인 하드보일드란 용어가 작가와는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내 발견하고 만다. 하드보일드란 비정함이나 냉혹함을 말하는 문학의 한 장르이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한 냉철한 삶을 살아가고 싶지만 현실은 늘 그렇지 못한 주인공 슌페이의 현실을 빗대어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탐정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도쿄로 올라온 슌페이는 출판사 외판원을 거쳐 마침내 탐정사무소를 열게 된다. 이제 슌페이에게는 자신이 늘 꿈꾸던 멋진 탐정으로서의 일상이 펼쳐질것만 같다. 하지만 위험한 범죄수사를 마다하지 않는 터프한 사립탐정이 되고 싶었던 슌페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 부터 집나간 동물을 찾아주는 동물전문탐정이 되어 있다. 그래도 묵묵히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찾아 주다 보니 이제 슌페이에게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 자신감이 넘쳐 슌페이는 개인비서를 고용할 생각을 하고 멋진 목소리와 수영복 차림의 사진이 돋보이는 다이너마이트 보디의 아가씨를 채용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멋진 비서와 달콤한 연애를 꿈꾸던 슌페이 앞에 나타난 다이너마이트 보디는 그저 젊은 여자의 목소리만을 흉내낼줄 아는 여든이 넘은 노파다. 하지만 이 노파는 어느새 슌페이의 사무실에 자리를 잡고 들어앉아 버린다. 회계사이며 일본에서 일곱번째로 면허를 취득했고 대륙을 오고 갔으며 멋진 의사 아들을 두고 있다는 아야라고 하는 할머니는 슌페이에겐 온통 의문 투성이이다.
어딜가나 수사에 방해가 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 아야지만 결정적일때는 언제나 나타나 슌페이를 돕곤 한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는 도시락은 아야의 필수품이기도 하다. 그저 떼어 버렸으면 하던 슌페이도 점점 아야가 필요하기도 하다. 의뢰가 들어온 개를 찾다가 우연히 살인사건의 배후를 알아낸 슌페이는 자신의 냉철한 추리로 미궁에 빠져버린 사건을 해결해내기에 이르지만 그 뒤에는 아야의 정체가 기다리고 있다.
계속해서 웃기기만 한 에피소드가 이어지던 이 소설에서 어쩌면 작가가 어쩌면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어 지기도 한다. 물론 그 안에는 노인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간 자신들과 함께 하며 가족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던 애완동물들을 함부로 방치해버리는 인간들의 행태를 따끔히 꼬집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실제 개를 유기해버리고 슌페이에게 찾아달고 의뢰하며 급히 떠나버린 야베 가족을 통해 극단적인 인간들만의 이기주의를 고발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일까지 저질러버린 가츠유키부부를 통해 인간들의 무책임성을 토로하기도 한다.
늘 아웃 사이더인 슌페이와 독거노인인 아야 콤비는 어쩌면 이 소설의 절정을 이루는 명콤비이기도 하다. 하드보일드 에그란 계란 완숙을 의미한다.
"정말 뭐랄까, 삶은 계란이란 건 사람 사는 세상하고 같아. 벗겨도 벗겨도 내용물이 안 나오니 말이야... 고생고생 해가며 벗겨야 겨우 내용물이 나오잖아. 하지만 아직도 흰자위 안에 있어."
세상은 하드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부드럽지 않으면 살 자격이 없다고 필립 말로가 말했다고 한다. 그저 웃기기만 하지 않은 이 소설은 그래서 우리에게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함을 일깨워 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