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 서른이 넘어서면서 인생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것은 철없고 즉흥적이기만 했던 20대를 떠나보내는 몸짓이기도 하며 이제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할 나이가 되었다는 어쩌면 슬프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한 상황을 이야기 해 준다. 뜨겁고 가슴 설레던 20대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잊지못할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아직도 제 짝을 찾지못한 이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

이도우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그렇게 나이 서른을 넘겨버린 네 남녀의 사랑을 조용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대학 4학년때 우연히 시작한 방송국 작가일이 그대로 직업이 되어버린 서른한살의 싱글 공한솔은 오늘도 친구인 자유연애주의자 리포터 한가람과 수다중이다. 개편이 되면서 한솔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인 글깨나 쓰고 거기에 시집까지 펴내기도한 피디 이건과 함께 '꽃마차'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같이하게 된다. 딱딱하고 쌀쌀맞을거란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두살이 한솔보다 많은 건은 씩씩하기도 하고 매사에 적극적이기에 한솔은 서서히 그에게 마음이 감을 어쩔수없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늘 희연이라는 스물일곱의 잘나가는 방송작가가 자신이 건에 대해 우선임을 항상 강조하기도 한다. 한솔은 가람을 만나러 나간 인사동에서 우연히 여자가 봐도 한눈에 반할만한 여자와 마주치고 그녀와 다정하기만한 머리 긴 도인같은 연인을 보곤 웃음짓기도 한다.

우연히 건을 따라간 카페에서 그 연인이 건의 오랜 친구인 선우와 애리라는 것을 한솔은 알게된다. 그리고 한솔은 애리에게서 기다림이라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낀다.
"난요... 가끔 선우가 별을 잘못 찾아온 사람 같아요."

애리와 선우와 건은 스무살때부터 함께하던 연인이자 친구였다. 하지만 선우와 건이 군에 있으면서 애리는 선우를 선택하고 건은 그렇게 이룰수 없는 사랑에 아파하면서 서른을 넘긴다. 끝없는 기다림에 지쳐버린 애리지만 그녀의 사랑에 포기란 없다. 어느날 훌쩍 인도로 떠나보낸 선우를 한없이 기다렸고 집안의 온갖 반대를 혼자서 꿋꿋하게 맞는다. 기다림이 독해서인지 애리는 절대 선우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애리의 눈물은 애리가 기다린만큼 다른 한편에서 애리를 바라보며 가슴졸인 건의 몫이다.

꽃마차의 열혈시청자이자 건의 할아버지이기도한 이필관옹은 한솔과 건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 둘 사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하며 일찍부터 외톨이였던 진솔에게 때로는 자상한 할아버지가 되주곤 했다. 그랬기에 할아버지의 죽음은 진솔에게나 건에게나 너무나도 힘든 충격이었고 결국 둘 사이를 다시금 이어주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사랑은 기다림이라고 했던가. 이 소설에는 여러가지 사랑의 모습이 보인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거부해 보려하지만 끝내 그 사랑에 다가서는 선우, 그렇게 긴 세월을 그저 한사람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애리, 가슴 아픈 운명을 알면서도 아무에게도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혼자서 눈물을 삼키고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의지를 보이던 건, 믿지 않으려 했지만 믿게 해주는 그에게 마음을 열었으나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것마저도 이해해 달라는 남자에게 차갑게 돌아섰던 진솔...

네가지 색깔은 각자 아름다운 사랑의 빛을 띤다. 그것은 아마도 네명의 남녀가 주어진 사랑에 너무나도 아파했고 각자의 방식대로 사랑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해 보인다.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오늘날 우리들이 처해있는 딜레마처럼 우리들의 가슴 깊숙히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사랑이라는 잊지 못할 마음의 짐을 하나쯤은 지니고 이렇게 세상을 살아나가나 보다. 그것을 곱씹고 되새기면서 우리는 지나간 날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마음에 고이 접어 놓기도 하는 것 같다. 또한 그러한 마음이 다가올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아닐까. 작가가 말했던 것 처럼 어찌보면 그저 평범해보이기만한 그들의 사랑이야기 이지만 그래서 더욱 우리들의 지나간 추억처럼 따뜻해 보이는 이야기인것 같아 이 늦은 가을을 더욱 따뜻하게만 느껴주게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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