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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주당천리
허시명 지음 / 예담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술이라는 존재는 어찌보면 인간에게 있어 신의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그 술이라는 존재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기도 하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 보다 이른 시간내에 타인과 친해질 수 있는 마법의 힘을 지닌 존재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 술이라는 존재로 인해 더욱더 유쾌해질수도 있고 때로는 슬픔을 달래기도 한다.
언젠가 가까운 친구가 어느 지방에 우연히 들렀다가 그 지방 술맛을 보고는 너무나 반해 바로 그 다음주에 그 구하기 힘든 술을 가지러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땐 속으로 얼마나 대단하길래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맛을 보고서야 친구가 왜 그러했는지 금방 알 수 있게 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이 책 <허시명의 주당천리>에 묘사된 것처럼 그 맛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는 그 기쁨을 아는 친구인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책엔 다양한 전국각지의 전통주 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제는 잊혀진 전설만으로 남아있는 안동의 고삼주를 시작으로 국내를 넘어 일본의 청주까지 그 역사와 제조방법 만으로도 향내에 취하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건 그 독특한 술의 향기만큼이나 짙게 배어나오는 전통을 느낄 수 있다. 문경의 호산춘의 경우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가문의 술답게 그 품위와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품격이 엿보이는 술처럼 느껴졌다. 그것을 그 술을 빚는 황규욱 씨는 신념이라는 말로 단언한다. 그 신념이 있기에 문경까지도 자존심이 세 보인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기도 한다. 호박으로 유명한 울릉도 나리분지의 씨앗술을 맛본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씨앗술을 한 잔 마시고 나니 입안에서 아주 활달한 향이 돌았다. 그 활달한 향은 천궁에서 나온 것이다..."
술에서 느껴지는 활달한 향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술맛을 글로는 표현하기 너무나 어려운 것인 것 같다. 또한 제주의 좁쌀 막걸리에서 느끼는 맛을 틉틉함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좁쌀밥을 먹었을때 처럼 거칠고 투박하지만 마시고 나면 경쾌한 맛이 그 맛이라고 한다.
이렇듯 우리 전통술에서 느낄수 있는 오묘함이란 직접 맛을 보고 느껴지는 표현하기 힘든 맛을 지니고 잇는 것이 아닐까 한다. 흔히 와인을 마셔야 고상한 대접을 받기도 하는 요즘 그래서 우리의 전통주가 더욱 사랑스럽고 반갑기까지 하다. 그간 전통주는 명절때 선물로 주고받는 고급주란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다. 물론 그만큼 귀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 맛을 잘 느끼지 못함일 것이다. 의외로 우리가 우리 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도 없음을 느낀다. 꼭 외국에 자랑할만한 술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먼저 그 맛을 알고 더욱 더 귀하게 여길줄 아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도 작은 애국이 아닐까.
가끔 지방을 방문할 때의 색다른 반가움은 그 지방의 소주를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아마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이기도 하겠지만 늘상 보는 참이슬에서 벗어나 화이트, 시원, 보배, 잎새주 등 소주만으로도 그 지방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기쁨이 아닐까. 여가생활이 늘어나고 주말마다 도시를 떠나 편안하고 조용한 곳을 찾고 있는 것이 현대의 트렌드이다. 산을 찾아가거나 문화재를 찾아 가기도 하고 아니면 유명한 맛집을 찾아 떠나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전국의 전통주를 찾아다니는것도 어쩌면 즐거운 주말을 기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꼭 주당이 아니더라도 술을 찾아 떠나는 기행은 그 술을 담아올수 있으니 맛을 찾아 다니는 것보다는 그래서 조금은 더 가벼운 흥분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흔히하는 말로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친구와 술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또 기쁜 일일까. 너무너무 군침이 돌아 쉽게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이 책을 안주삼아 오늘은 우리의 옛 술을 이야기하고 즐길줄 아는 문화를 가져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