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이라는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 하에 둘러쌓인 사회로 유교적 봉건주의 사상과 모든 사회제도 사상이 남성위주의 사회였기에 겉으로는 그러한 인습과 관습이 지켜지는 사회라고 인식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 그 자체가 사랑의 역사이고 보면 억눌리고 폐쇄적인 그 사회 안에서도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들은 언제나 처럼 존재했고 또한 인구에 널리 회자되기도 하는 지금과 똑같은 사회였다. 이 책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은 그렇게 폐쇄적이었고 닫혀만 있던 조선의 사랑이야기를 꺼내놓는 책이다. 그 가운데는 시대를 뒤흔든 스캔들이 있었는가 하면 오늘날까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아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가슴 아픈 사랑도 존재한다.
조선의 선비정신을 한마디로 하면 대나무같은 고고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고고한 선비들의 알려지지 않은 성추문 사건들은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위엄있게 묘사된 초상화의 그림속에서 걸어나와 희로애락을 가진 보통의 평범한 인간임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조선시대의 여인이란 그저 온실속의 화초처럼 문 밖 출입을 할때도 쓰개치마를 둘러쓰고 다니며 일부종사, 일편단심이란 단어로 그들의 삶을 억압당해 왔다. 대부분의 그러한 여인들의 삶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규방에만 갇혀있는 유폐아닌 유배생활들을 겪으며 결국엔 생면부지의 사내와 혼인해야하는 삶을 사는 여인들이 대다수였겠지만, 그러나 숭고하고 아름다웠으며 당시엔 파격적이기까지 했던 이 책의 주인공들의 사랑은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이야기들 중엔 오늘날 성 스캔들이라고 불리울만한 사건도 있다. 그것은 바로 당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감동과 어을우동의 사건일 것이다. 이들 두 사건은 세종과 성종시대라는 시간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비교적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두사람 모두 사대부의 아녀자였고 신분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많은 남자들을 자신의 치마폭에 감싸다 나라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결국 유감동과 어을우동은 자신의 몸을 내던지면서까지 시대와 당시의 인습에 대해 저항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시대를 앞서간 여인들이 잃어버린 그녀들의 정체성과 자아를 찾으려는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렇게 사회에 폭풍을 몰고 왔던 사건이 지나간 후 조선사회에 있어 남녀의 불평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 갔던 것 같다.
비운의 왕세자 양녕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였던 태종 이방원과의 대립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폐세자의 길을 걷고 만다. 그러나 어리를 비롯해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던 양녕의 바람기가 다소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세자의 자리를 내놓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버지였던 태종 역시도 아내를 12명이나 얻으며 자손을 번창하게 하여 왕실을 굳건히 하려했던 측면에 비춰본다면 양녕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으로도 보여진다. 그러므로 양녕은 사랑을 얻기 위해 세자자리를 포기했다기 보다는 아버지의 권력에 대한 욕심때문에 그렇게 됐다고도 볼 수 있는 불행한 왕세자였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부부란 등돌리고 누우면 그 거리가 지구의 한바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처럼 부부사이는 가깝지만 헤어지면 영원한 남남이 된다는 이야기를 일컫는 말일게다. 하지만 조선의 사회는 좀처럼 이혼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일찍 남편을 떠나보낸 여인네들 역시 좀처럼 개가가 허락되지 않던 사회였다. 결국 그러한 폐단은 정없이도 살아가는 불행한 부부를 양산해냈으며, 수절의 상징인양 곳곳에 열녀문과 홍살문이 세워지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삼던 시대였다. 선비들은 그러한 사랑의 대상을 첩을 두거나 기생집에 드나들며 풀기도 했지만 홀로 남겨진 여인들은 그 아픔을 곱씹으며 외로운 밤을 혼자 보내야만 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영양군 이응의 손녀 이씨부인은 남편감을 직접 고른 시대를 초월한 여인이었던 것 같다. 이씨는 반대하던 주변을 모두 물리치고 자신의 노비들까지 모두 내보내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평생동안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둘만의 변하지 않는 애정을 과시한 부부도 있다. 한날 한시에 같은마을에서 태어난 삼의당 김씨와 하립 은 하립의 과거준비 때문에 떨어져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들의 변함없는 사랑은 아직도 그들이 남긴 주옥같은 시와 문장과 함께 그들의 아름다웠던 사랑을 대변해 주는 듯 하다.
아침에도 낭군이 가신 길을 바라보고
해가 질때도 낭군이 가신 길을 바라보고
보고 또 보아도 낭군은 보이지 않아
하염없이 서성이고 있네
평생동안 끝없이 사랑하는 이를 기다렸던 기생 일선의 시이다. 시대가 변해가면서 사랑의 의미도 점차 퇴색되어가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원나잇 스탠드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남녀간의 거리낌없는 표현 또한 거리를 메우고 있다. 물론 그것들 역시도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코드의 한가지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사랑을 갈구했던 그들을 돌아보는 시선을 가져봄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