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앉아 금琴을 타고 샘터 우리문화 톺아보기 2
이지양 지음 / 샘터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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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노래와 춤을 아는 풍류를 아는 민족으로 전해져 왔다. 즉,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음악이라는 즐거움을 알고 표현해 낼 줄 아는 멋을 지닌 민족이었다. 음악이야 말로 인간의 희. 노. 애. 락. 을 가장 자연스럽게 어쩌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장르라 생각 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 표출되기에 음악이란 매개체를 통해 우리는 조상들의 옛 노래를 통해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메세지를 전해 받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산지수명한 곳이나 명승지에는 으레히 자그하한 정자를 세우고 꽃과 나무를 가꾸며 뜻이 있는 선비들과 함께 음주와 가무로써 자연을 노래하고 즐기면서 함께 호연지기를 키웠다.

음악에는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옛 선인들의 노래 또한 다양하다. 이 책에서는 문헌으로 전하는 지배계급 즉, 양반들의 노래 뿐만 아니라 구전으로 전해오는 당시 민초들의 삶이 녹아드는 여러 노래를 소개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우리 조상들의 멋을 전한다. 아마도 각각의 노래들은 시대의 아픔과 민중의 애환을 대변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문화는 중국 혹은 서양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다. 음악 또한 예외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그렇게 올곧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문화란, 그것의 의미를 알고 제대로 향유하는 사람들의 것이지, 처음에 어떠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 보더라도 가슴 뜨끔한 대목이 있지 않나 싶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화에 대해 걸핏하면 '사대주의'운운하며 조상들을 비난하기에 급급할 뿐, 정작 우리나라에 와서 몇 년간 체류하며 우리 문화를 아끼며 배운 외국인 보다도 더 모르는 문화적 고아가 아닌가?"
사실이기도 하다. 그저 우리의 고전음악을 접할때에는 이러한 문화 국적 의식들은 내려놓고 조상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기도 하다.

아마도 궁중에서 연주되던 제례음악들은 중국문화에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또한 우리만의 독특한 가락이 살아있기도 하다. <경풍년>에서 스며 나오는 절제된 기쁨은 참으로 은근하고 은밀하여 평화롭고 품위있게 느껴진다. 또한 조선의 군대 행진 음악이었던 <대취타>는 시작 부분의 호령소리 부터 유장하기도 하고 엄숙하기도 하여 자유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퇴계선생은 도산십이곡을 통해 벼슬살이에 분주하다가 잊고 지냈던 학문에의 매진을 후회하는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이제 다시는 다른곳에 마음 쓰지 않고 학문에 오롯이 정신을 집중하겠다는 다짐이 있는 시이기도 하다. 아마도 오늘날까지 우리 후학들에게 전하는 메세지이기도하다.

한편 민중들의 노래에는 당시 민중들의 정서가 그대로 남아 고스란히 전해진다. 일명 잡가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하는 이 노래들은 전문 소리꾼이나 예인들이 아닌 일반대중에 의해 시작 됐으며 당시에는 생각하기도 힘든 하룻밤의 연애를 노래한 <출인가>처럼 놀고보세 식의 무책임한 사랑타령의 노래가 있는가 하면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 노래가 더 많기도 하다. <바람은>이라는 노래는 내용이나 소리 자체에 처량함이 배어나와 이 노래를 부르는 기녀의 마음과 그 마음을 담아내는 표현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노래란 과연 무엇일까.
노래란 일부러 꾸미지 않은 자연의 소리, 자연스런 정감에서 출발한 것이라야 싫증 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다.
"노래란 그 정(情)을 말하는 것이다. 정(情)이 말에 움직이고 말이 글에 이루어지는 것을 노래라 한다. 기교의 빼어남과 졸박함을 버리고 선함과 약함을 잊은 채, 자연을 따르고 타고난 개성과 감성을 발하는 것이 '노래의 우수함'이다."
담헌 홍대용 선생이 대동풍요서라는 책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아마도 노래의 존재가치를 떠나 노래가 왜 존재하여야 하는지 간결하고 제시하고 잇다.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자연을 노래하고 그리움을 노래하고 삶의 애환을 노래했건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전통음악의 음률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학습현장에서 가르치는 궁상각치우와 가야금, 해금이라는 이름 그 외에...
사실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긴하다. 가장 흔히 접하는 TV에서 조차 국악 프로그램은 외면 받기 일쑤다. 나 역시 과연 그런 국악 프로그램을 본다면 바로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점점 서구화되어가는 우리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악을 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전통 지킴이의 역할을 수행해 내는지도 모르겠다. 마당놀이가 우리 전통의 음악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잇겠지만 대중적인 참여도를 봤을땐 어느정도의 흡인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즉, 전통적이고 틀에 박힌 것 보다는 역시 아래로부터의 대중문화 코드에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까 한다. 덕수궁에서 울리는 궁중제례음악 보다는 신명나고 흥이나는 우리 가락이 대중들에게 흡수되는 차이가 훨씬 다를 수 있기에...

월드컵때 우리 응원단상을 지휘했던 사물놀이패를 기억 할 것이다. 그 요란한 소리에 맞춰 우리는 지칠줄 모르는 응원문화를 보여 주었고 하나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 소리에 맞춰 어깨춤이 움직이고 흥이절로 나는걸 보면 역시 우리몸엔 우리 가락이 배어 있는듯 하다.

우리의 음악은 우리의 역사와 같이 해왔다. 지은이의 말대로 정말 우리 음악을 알고 싶다면 나 역시 이론으로 무장하기에 앞서 피리나 퉁소 같은 악기를 연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단가 한 곡, 사설시조 한수 정도쯤 읊을 수 있는 안목과 교양을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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