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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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막장이라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작가의 필력덕에 무한감동의 문학작품으로 승격된 사례가 아닐까.

그리고 좀 알송달송..... 작가가 쓰지 않은 이야기는 나는 잘 모르겠다. 초반부터 그래서 아버지는 누구인가 흥미진진하게 읽어왔는데....대체 누구인가.

나는 그녀가 말하는 상식에 대해서 생각했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단일한 게 아니라 여러 개다. 가족이 기억하는 유년과 친구가 기억하는 유년과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이 모두 다르리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중에서 가장 합당한 과거를 선택하면서 지금의 자신에 이르렀으리라. 이치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지는건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과거가 여러 개인 사람에게나 가능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며칠 동안 굶고 다닌 사람에게는 길에 굴러다니는 동전 한 닢도 너무나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단 하나의 과거도 없는 내게는 아무리 터무니없고 불합리하며 비이성적일지라도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하찮은 사실 하나를 지키기 위해 상식적 세계 전체와 맞서야만 하는 순간도 찾아오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 P44

나는 인생의 불행이 외로움을 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불행은불량한 십대들처럼 언제나 여럿이 몰려다니죠. - P71

하지만 개인의 불행은 건기나 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곳방글라데시에서 저는 수많은 개인사적인 불행을 만났습니다. 불행이란 태양과도 같아서 구름이나 달에 잠시 가려지는 일은 있을망정 이들의 삶에서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거기 늘 태양이 있다는사실을 잊습니다. 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불행을 온몸으로 껴안을 때, 그 불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신의위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그 길뿐입니다. - P130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면 우리들의 사랑 이야기‘는 전혀 아름답지도, 애틋하지도않았습니다. 우리 사랑이라는 게 겨우 그 정도였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아니라 제 글솜씨가 아름다운 집도 변소로 묘사하는 수준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알겠더군요. 아름다움이란 솜씨의 문제이고, 솜씨는 어떻게바라보느냐의 문제라는 걸. 그렇구나. 괴로웠다고 생각하면 괴로운 글을 쓰는 것이고, 행복했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글을 쓰는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P138

"왜 검모래를 둘러보라고 하느냐면, 희재양이 내게 이루 말할수 없을 정도로 질 낮은 인간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에요. 내가 선생으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렇게 훌륭하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물론 이런저런 결함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인간으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보수 세력들이 나의 당선을 막기 위해 어떤 터무니없는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열한 짓거리에 흔들릴만큼 엉망의 인생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인간적인 연민이 들 뿐, 내 도덕성에는 어떤 흠집도 나지 않습니다."
......
"정지은과 관련해서 도의적으로는 모를까, 도덕적으로 내가 비난받을 만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너는 그 말이 혼란스럽다. 도의와 도덕의 경계는 과연 어딜까? - P175

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우리는 점의인생을 살고 난 뒤에 그걸 선의 인생으로 회상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과거의 점들이 모두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점들을 밟고 나가느냐에 따라서그들의 인생은 지금보다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다. 하지만 너 같은 경우는 완전히 다르다. 과거의 점들이 모두 발견되지않았다는 점에서 네 인생은 몇 번이고 달라지리라.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는 말이 아니라 너라는 존재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예컨대 진남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뒤, 이따금 어린 시절의일들이 다른 의미를 띠면서 떠오를 때가 있었다. 입양 초기 걸음마를 겨우 배웠을 무렵부터 너는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에릭이 일하러 나갈 때마다 늘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조르곤 했었다는 말을 앤에게서 자주 들었다. 너는 자신이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는것은 바그너보다 브람스를 더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개인적 취향이라고.
개인적 취향에 불과했던 그 일은 진남을 방문한 뒤부터 중요한의미를 띠게 됐다. 너는 자신의 취향이 무의식, 즉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과거의 어떤 우연한 점에 의해서 결정됐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진남이라는 항구도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바다를 좋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이전에 보이지않던 점들이 발견될 때마다 그 점들을 잇는 새로운 선들이 그어졌고, 네 인생은 그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이 달라질 때마다 너라는 존재도 바뀌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카밀라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 소녀에서, 동백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이 있었기 때문에 카밀라라는 이름을얻게 된 입양아를 거쳐, 아이를 낳으면 ‘희재‘라는 이름을 짓겠다.
던 열일곱 살 여고생의 딸까지. 새로운 점들은 너라는 존재를 그처럼 가변적으로 만들었다. 문제는 과거의 그 점들을 통제할 방법이 네게는 없었다는 점이다 - P178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값싸게 즐길 수있는 고독이란 게 없어. 돈을 지불하지 않은 고독은 사회 부적응의표시일 뿐이지. 심지어는 범죄의 징후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 선생들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서 지내는 학생에게서 자살이나 학교폭력의 가능성을 읽고, 이웃들은 친구나 가족의 왕래가 없이 살아가는 1인 가구의 세대주가 잠재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만 하잖아. 우리 시대의 고독이란 부유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럭셔리한 여유가 된 거야. 고독의 재발견이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고독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요가나 명상 같은 프로그램이나 오가닉 상품들이 뭐가 있는지 한번 알아봐." - P214

낮과 밤은 이토록 다른데 왜 이둘을 한데 묶어서 하루라고 말하는지. 마찬가지로 서른 이전과 서른이후는 너무나 다른데도 우리는 그걸 하나의 인생이라고 부른다. - P220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걸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 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 P251

주님은 내게 죄를 사해주는 분이 아니라 복수할 권한을 빼앗는 분이었다. 나는 갑자기 무력해졌다. - P261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못했을 테니까요.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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