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정말 쇼비뇽 블랑같은 오후였어 - 연극보다 드라마틱하고 와인보다 향기로운 43가지 인생 레시피
신리 지음, 이희숙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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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보그 > 지의 음식 평론가인 제프리 스타인가튼이 쓴 [ 모든 것을 다 먹어본 남자 ]를 보면 현재 파리의 레스토랑 트렌드는 오랫동안 화려한 명성을 자랑하며 현대 요리 문화를 주도했던 오트 퀴진들이 차례로 문을 닫고, 낮은 가격에 대중성을 표방한 음식점인 오트 비스트로가 그 자리를 급속하게 대체해 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앙토넹 카렘에서부터 시작되어 에스코피에가 기틀을 확립하였고 이후 19~20세기에 걸쳐 저명한 요리 장인들인 화려하게 꽃을 피운 미식 문화의 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대 이후 미식의 수도로 군림해 온 파리에서 이러한 세기적인 격변이 일어나고 있고, 현대 미식의 수도라는 영예조차 파리에서 뉴욕으로 발빠르게 옮겨지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이제는 식사의 보조가 아니라 완연하게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완성한 프랑스 와인의 기세는 오히려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세계화로 인해 극단적이 된 소득의 양극화 추세로 인해 세계 부(富)의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부상한 미국과 아시아의 부유층과 상류층 사이에서 와인에 대한 감식안과 미감, 고가 와인 수집이 필수적인 소양처럼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기 타다시 - 오키모토 슈의 만화 [ 신의 물방울 ]이 국내에서 만화책으로써는 이례적으로 대히트를 친 데에는 와인에 관심을 가져보려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장 쉬운 와인 입문서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라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대형 마트에서 와인 코너가 다른 주류나 음료 코너보다도 훨씬 더 큰 데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세계적인 경제 불황과 위기에도 사그라들기는 커녕 오히려 더 확산되어 가고 있는 이러한 와인 붐을 타고 소믈리에나 와인 애호가들의 와인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사이에서 이 [ 그날은 정말 쇼비뇽 블랑같은 오후였어 ] 는 유난히도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대부분의 와인 책들이 3~40대 직장인이나 40대 중반 이상의 중년 남성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큼지막한 판형에 분위기 있는 와인 바와 고가의 와인 보틀들을 찍은 화려한 컬러 사진을 푸짐하게 싣고, 중간중간에 전문적인 각주들을 곁들여 권위를 강조한 것과는 달리, 이 책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판형에 책 전체에 걸쳐 와인 보틀이나 와인 잔의 사진은 단 한 컷도 없으며, 그 대신에 아기자기하고 예쁘장한 올 컬러 그림들이 매 쪽마다 곁들여져 있어서 한 눈에 보기에도 여성들을 주된 독자로 한 책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노안이 오기 시작하는 50대 이상의 남성분들은 거의 읽기 힘든 8포인트의 작은 서체로 빼곡하게 채워놓은 편집이 특히나 더 말입니다.
 

예상대로 이 책을 쓴 사람은 서래마을에서 와인가게인 ‘맘마키키’를 열고있는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싱글맘’ 신 리 씨이고, 그림을 그린 사람도 여성 일러스트레이트인 이희숙 씨입니다.
 

책의 외형이나 모양새에서 짐작되었던 것처럼 이 책은 와인 애호가들을 위한 본격적인 와인 소개 책이나 진지한 와인 에세이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와인이 모티브나 배경으로 살짝씩 등장하는 와인 미셀러니에 더 가깝습니다.

 
 

짧은 글은 원고지 2~3매, 긴 글은 원고지 7~8매 분량인 각 장들은 캐나다와 미국, 남미, 유럽 등을 넘나들며 연극학을 전공한 뒤 연극배우 겸 연출가로 활동해 온 저자가 국내와 해외에서 만났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겪었던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주된 소재로 삼아 가볍게 써내려 간 수필들인데,  

 

“...그러다 알게 됐어요.

백 명의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다 보면

나의 눈동자엔 빛이 사라진다는 것을요.

누군가에겐 좀 덜 괜찮은 사람이어도,

누군가에겐 좀 덜 만족스러운 사람이어도,

나의 우주가 멈춰버리는 건 아니라는 것도.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건

삶이 가져다준 가르침이었어요.

마음의 노래를 따라가다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 도착하기도 해요.”

처럼 적지않은 나이에 여러 국가를 옮겨다니며 연극이라는 수익성이 낮고 불안정한 직업을 택한 싱글맘인 저자가 특히 힘주어 말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의 소중함에 대한 고백들이 특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친한 여자 후배에게 들려주듯 조근조근한 말투로 써내려 간 글투와 거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예쁜 그림들의 어울어짐도 멋지고요.
 

와인에 관한 이야기는 저자가 유학 시절에 처음 접하고 이후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마셨던 와인에 얽힌 정겨운 기억들과 ‘맘마키키’를 열면서 와인에 맞춰 내놓았던 다양한 요리와 안주들에 담긴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일반적인 와인 서적들처럼 특정 와인의 명칭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고 피노 누아, 쇼비뇽 블랑, 샤르도네, 카베르네 쇼비뇽, 메를로 같이 주된 포도 품종의 명칭 정도만만 언급되어, 어려운 와인 레이블과 에티켓, 빈티지가 주는 부담감이나 스트레스없이 포도 품종에 따른 맛과 기분의 차이 정도에만 중점을 두고 있어 묘사해 놓아, 가벼운 마음으로 읽고 기억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줍니다. 



 

와인 전문가나 매니아들이 보기에는 다소 가볍고 피상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와인을 어렵고 부담스럽게 인식하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책을 읽고 있노라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 와인 한 번 마셔 볼까?’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맛깔스러움이 담뿍 담겨져 있습니다.
 

덧붙임 : 신 리 씨는 아마 해외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보신 것 같은데(71쪽), ‘미와자키 하야오’씨의 ‘마술 가게 마녀 키키’는 국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 마녀 배달부 키키 >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어 있답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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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통해 본 생활 경제학>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중국을 통해 본 생활경제학
왕위 지음, 이지은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 중국을 통해 본 생활 경제학 ] 이라...다소 아리송한 제목이지요?

제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제는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서 무시하지 못할 덩치로 확실하게 한 축으로 자리잡은 ‘초대형 루키’인 중국의 존재가 우리를 비롯한 기존 자본주의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책 같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 생활에서 ‘Made in China'를 빼놓으면 일상 생활 자체가 곤란해 질 정도가 되어버린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책의 저자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런 추측들이 모두 무색해지고, ‘중국의 일상 속 경제학 이야기’라는 앞 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요약 문구를 보면 더욱 아리송해 집니다. 우리보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 일본인들의 실생활 속의 경제라면 몰라도, 평균적인 생활 수준에서 우리와 아직은 많은 차이가 나는 중국인들의 생활 속에서 어떤 경제학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런 의문들은 저자의 프로필과 서문을 읽어보면 이내 풀리게 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왕위는 청소년 경제 칼럼니스트로써,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중국인들의 일상 생활을 통해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경제학의 원칙과 원리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즉, 이 책은 중국인들을 위한 ‘쉬운 경제학 입문서’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중국이 이제는 당연히 자본주의 경제 체제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사실은 중국은 여전히 계획 경제를 중심으로 하고 거기에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부분적으로 허용한 ‘사회주의 경제 체계’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최근 1~20년 사이에 급속하게 자본주의 경제 기재들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와는 반대 편인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토대로 하고 있는 국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경쟁과 선택, 가치와 투자, 물가와 통제, 이윤과 서비스 같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원칙과 작동 원리들이 반 세기 이상 사회주의 경제 체계에 익숙해져 있던 중국 인민들에게는 전혀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여겨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이 책은 이처럼 오랫동안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만 살아 온 중국 인민들에게 자본주의 경제의 원칙과 제반 원리들을 중국인의 일상적인 삶 속의 여러 예들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 씌여진 ‘자본주의 경제 교육용’ 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근본적인 의문이 생깁니다. 오랫동안 사회주의 경제 체계 속에서 살아오다가 급격하게 도입된 자본주의적인 경제 개념들로 인해 당황하고 심각한 부적응 현상을 보이고 있는 중국 인민들에게는 물론 유효하겠지만, 해방 이후 줄곧 자본주의 자유 경제 체계 속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이 책이 무슨 효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에 대한 답변은 좀 궁색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반복해서 설명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 원리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경제학 입문서로써 이 책의 가치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 경제학 콘서트 ] 같은 기본에 나와있는 책들에 비해서 말이지요. 


 

그 대신에 이 책의 묘미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이 책에서 예로 들어 소개하는 중국인들의 일상 생활 속의 모습들 중 상당 수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던 중국의 감춰진 모습들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리고 중국인들의 경제 관념을 설명하는 예들에서는 아직도 여전히 자본주의적인 경제 관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중국인들의 전통적인 관념과 사회주의적인 관념이 뒤섞여 있어 외국인들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독특한 관념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예들을 몇 개 들어보면, 중국에서는 동네 가게보다 대형 슈퍼마켓의 병 음료 가격이 더 비싸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우리 생각과는 정 반대이지요(그 까닭은 대형 슈퍼에서는 냉장을 시켜놓고 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추석 전에는 월병 가격이 급등하는데, 월병을 대량 구매하는 주요 고객은 국가 기관과 기업체이고, 구매자가 직접 먹기 위해 월병을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아예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즉, 국가적인 차원에서 뇌물의 보편화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의 뒤에는 모든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희소성의 독점’과 일반인들은 주택 담보 대출이 어려운 금융 시스템, 그리고 모든 과정에서 소요되는 뇌물이나 불법 거래 같은 불법적 비용들 때문이라고 아예 내놓고 말합니다.
 

명절 연휴에는 이동 수요가 급격하게 늘기 때문에 철도부는 이윤 최대화를 위해 일시적으로 요금을 인상하고(?), 열차표 대행 판매소와 암표상을 거치면서 가격은 더욱 올라가기 마련(?)이라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면서도, 암표상을 단속해야 한다는 말은 아예 하지 않습니다.
 

3~5% 이상이나 초과 항공표를 팔면서도 좌석이 차서 탑승을 하지못한 승객에게 아무런 배려나 혜택도 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고요.
 

1 + 1이라고 해놓고 전혀 관련없는 싼 물건이나 소품, 유통 기간이 지난 물건을 끼워주거나, 아예 ‘그건 배달을 해준다는 말일 뿐’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광고와 판매 행태, 세일 때면 시장에서 산 싸구려 물건에 유명 브랜드 마크를 달아놓고 판매하는 행위, 팜플랫에 적혀있는 ‘판매 업체에 최종 해석권이 있습니다’라는 황당한 문구, 제대로 적용은 커녕 제때에 접수조차 되지 않기 일쑤인 여행자 보험,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내려가는 기차 안 도시락 가격 같은 믿기 힘들 정도로 황당한 예들은 중국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 시장 경제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더 기다려야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예들을 읽으면서 중국의 미숙한 경제 관념을 드러내놓고 비웃기에는 결혼과 가정 생활의 예들에서 보여지는 전근대적인 행태들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거의 그대로 적용되는 말들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있는 전근대적인 구습들을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이 책은 원래 저자의 의도인 ‘자본주의 경제 교육’의 역할은 다소 미흡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거대한 시장인 중국에 관심을 가지고 추후 진출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나 현재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중국인의 사고 구조와 속내를 사실적으로 알려주고 있어 ‘중국인이 본 한국 상인’이라는 글(http://blog.naver.com/hajin817/memo/60106905648)과 함께 본다면 무척이나 흥미롭게 유익하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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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어둠/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자본주의 역사로 본 경제학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 - 인간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6가지 문화심리코드
김헌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 경제학 개론 >을 수강하면 가장 처음에 접하게 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바로 ‘호모 에코노미쿠스 Homo Economicus’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경제학자들이 설정한 '소비와 지출을 언제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계획과 기준에 따라 행하는 이상적인 소비자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과연 보통 사람들이 소비를 할 때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처럼 언제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소비 형태를 보일까요? 결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돈을 쓰며 자신의 의지로 자유로운 환경에서 소비를 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일반인의 소비 양태의 상당 부분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이해할 수 없는 선택과 행동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 까닭은 인간의 소비 양식에는 경제적인 합리성과는 다분히 상반되는 심리적이고 무의식적인 경향성이 이면에 존재하고, 인간은 이 심리적인 측면의 변동성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합리성이라는 외연이 지배하는 인간의 소비 심리의 내면에 존재하며, 소비 심리의 방향을 굴절시키는 이러한 심리적인 측면을 입증하기 위해 과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은 오랫동안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사회학 같은 연관 학문들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해왔으며, 최근에는 대뇌 자기공명장치(MRI)와 같은 과학적인 장비들을 사용해 소비 심리가 변화할 때 뇌의 특정 부위에 변화가 있음을 증명하는 뇌신경 경제학적인 방법을 통해 과학적인 논거를 구축하고 있는 단계로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심리학적인 요소들을 문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관찰하고 분석하여, 경제 행위와 소비의 이면에서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과 그 작용 방향을 풍부한 실제 예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들을 언어, 정보, 돈, 이익, 시공간, 선택이라는 6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각각의 경우의 예들을 들어가며 실증해 나갑니다.
 

언어’에서는 인간의 언어가 형성해 내는 ‘이미지 프레임’이 소비자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움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언어의 프레임보다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이미지 프레임이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한 효과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촉각과 청각, 시각, 후각 같은 1차적인 감각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마케팅 방식이 거둔 의외의 높은 효과들을 그 심리학적 배경에 대한 설명을 토대로 해설해 줍니다.
 

정보’에서는 정보의 비대칭 현상, 인지일관성 등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게되는 현상들과 함께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가 오히려 소비자에게 딜렘마를 불러 일으켜 선택을 포기케 하는 결과를 낳음을 흥미로운 실험 데이터를 통해 보여줍니다.
 

’에서는 불안정한 수입이 낳는 비합리적인 소비와 그에 따른 빈부의 악순환, 불황기의 뒤에 축적된 갈망에 의한 폭발적인 소비 증가 등의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익’에서는 공짜 마케팅의 심리학과 ‘선한 소비’의 피로감, 자기 통제력과 자신감이 선택에 미치는 영향, 자기 합리화에 따르는 인지부조화, 고독감이 촉진시키는 소비 심리 등을 소개하고 설명해 나갑니다.
 

시공간’에서는 의외로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날씨나 방향성 같은 뜻밖의 요소들의 예를 들어 보이며, 마케터들이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좌, 우 뇌의 인지 능력의 차이에 따른 디스플레이와 광고 전략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정크 푸드나 저질 문화를 소비함으로써 쾌락을 느끼는 ‘킬티 플레저 현상’, 공포심을 자극하여 효과를 얻는 마케팅 전략 등을 여러 예를 들며 설명해 줍니다.
 

선택’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비싼 유명 오케스트라의 공연 티켓이나 스타벅스 커피, 외제차와 고급 브랜드 의류, 와인 등의 가격 책정 뒤에 존재하는 차별화와 과시 심리, 그리고 그와는 정반대로 집단주의에 함몰된 한국인들의 몰개성 현상, 그리고 다시 그러한 군집화의 틈을 노린 마니아 시장과 역발상 마케팅의 심리학적인 토대 등을 변증법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책은 주류 경제학의 합리적인 경제관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예측 밖의 의외의 경제와 소비 행동 뒤에 숨겨져 있는 심리학적인 요인들을 행태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설득력있는 분석과 설명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국내 저자에 의한 책인 까닭에 < 넛지 >, < 경제학 콘서트 >, < 블링크 >, < 상식 밖의 경제학 > 등 기존에 발간되었던 국내외의 경제 서적들에서 낯익은 예시와 통계들이 자주 인용되는데, 다양한 예를 발판삼아 설득력있는 논거들을 구축하는 데에 비교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 행위의 내면 심리나 심리적 마케팅 기법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읽어볼 만 한 책이라고 여겨집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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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금융사기
켄 피셔 & 라라 호프만스 지음, 곽보경 옮김, 김학균 감수 / 쿠폰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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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에 대해 형법의 조항을 찾아보면 제347조에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형법 250조 살인죄의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와 비교해 보면 일견 범죄의 질이나 형량이 다소 낮은 것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기를 당한 주변 분들을 보신 분이라면 다들 동감하시겠지만, 살인이나 강도, 절도가 한 두 사람의 목숨이나 재물을 불시에 빼앗는 것과는 달리, 사기를 당한 집은 가족 모두가 일순간에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거리에 나앉게 되고, 이후로도 홧병과 가족 간의 불화로 인해 결국 가정이 산산조각으로 파괴되는 처참한 과정을 밟게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 피해의 정도는 살인죄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살인이나 강도 등에 비해 사기는 범죄의 입증이나 증거 확보가 어렵고, 거기에다가 어지간한 일로는 법정이나 검찰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 떄문에 실제로는 거의 한 집 걸러 한 두 명 꼴로 본인이나 주변에서 사기 피해를 당하지 않은 집이 오히려 드물만큼 사기 피해 사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기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거나 사기꾼을 잡아 처벌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는 점은 사기꾼들이 활기치고 다니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기 범죄는 경제가 활황일 때보다는 불황일 때 훨씬 더 많이 발생하고, 민주적인 정부일 때보다 권위주의적인 정권 아래에서 만연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일본의 거품 경기가 붕괴된 뒤에 수없이 많은 사기 피해가 양산된 것이나 지난 2008~9년의 금융 공황 때 미국에서 많은 사기 사건이 폭로된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3, 5공화국 때와 IMF 직후에 사기꾼들이 활개를 쳤던 기억이 있죠.

일반적으로 사기는 젊은 층이나 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든 개인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주로 퇴직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퇴직금 사기가 많지만, 투자와 재테크의 중심이 적금이나 저축보다 펀드나 주식, 채권 등이 대부분인 미국에서는 이러한 펀드나 주식, 채권 등을 이용한 투자 사기 혹은 금융 사기가 매우 많고, 그 기법 또한 무척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이 책 [ 금융사기 How to smell a Rat ] 는 월스트리트에서 37년 동안 자산 운용 화사를 직접 운영해 온 투자 전문가이자, 25년 동안 < 포브스 > 지에 포트폴리오 전략에 관한 칼럼을 연재해 온 금융 전문가인 켄 피셔금융 사기와 금융 사기범을 파악하는 방법과 금융사기를 당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금융사기를 당하지 않는 근본적인 방법으로 다섯 가지의 핵심적인 요소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첫 번째는 재무 설계사가 투자 자산의 수탁 업무를 함께 담당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피하고, 투자 업무와 수탁 업무를 반드시 분리시켜 재무 설계와 자산 수탁을 각각 별개의 회사에 위탁할 것을 가장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그리고 자산을 타인의 자산과 혼합하는 것을 절대로 막고, 24시간 인터넷으로 실시간 확인이 가능한 신뢰할 만한 대형 수탁 회사에 예치하라고 권합니다.

두 번째는 지나치게 좋은 실적은 거짓이기 쉬우므로 경계하라고 말하는데, 지속적으로 고수익을 기록했다는 경우는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흔히 한 번도 주가 지수보다 낮은 수익이나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투자사의 말에 혹하기 쉬운데, 투자 수익률은 시장 상황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주가 지수와 연동되어 수익과 손실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상식인데, 수상쩍을 만큼 손실이 없이 수익만을 지속적으로 달성했다고 말하고, 평균 수익률이 주가 장기 평균보다 월등하게 높은 경우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대로 된 재무 설계사라면 반드시 S&P 500이나 MSCI, 나스닥, 코스피, 코스닥 등의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한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면서 벤치마크와 유사하거나 약간 더 좋은 수익률을 목표로 하는 것이 보편적이며, 시장의 변동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정상이므로, 시장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않고 지속적으로 높은 수익만을 기록했다면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투자사가 당신에게 투자 전략이 이해하기 어렵고 모호하거나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투자 전략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기꾼들은 흔히 화려한 전문 용어로 점철된 복잡한 투자 기법을 자랑하거나 파생 상품, 공매도 같이 위험성이 높은 기법을 내세우는데, 절대로 자존심 때문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지말고 알아들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라고 말합니다.

네 번째는 실적과는 사실상 관계없는 한정된 고객 유치나 수탁수수료 면제 같은 요소를 혜택인양 내세우는 경우에도 경계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사기꾼들은 흔히 ‘당신만을 예외로’, ‘투자 하한액 이하의 투자금을 받아준다’, ‘ 수탁수수료를 감하거 면제해 주겠다’고 유혹하곤 하는데, 제대로 된 투자 설계사라면 일정 비율인 수탁료가 필수 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을 투자 하한액으로 잡을 리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유명 인사와의 교우 관계나 거액의 자선 활동, 화려한 사무실 등의 명성은 투자 수익과는 아무런 실질적인 관련이 없고, 오히려 제대로 된 투자 설계사라면 바쁜 일과 때문에 그런 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으므로, 화려한 명성이나 외형에 현혹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다섯 번째는 투자 중계 회사나 제3의 회사에 실사를 맡기지 말고 반드시 본인이 직접 투자사를 실사할 것을 권합니다.
SEC는 수사 기관이 아니므로 사기꾼을 사전에 색출해 내지는 못하지만, SEC에 등록되어 있고, Form ADV 등을 꼼꼼하게 검토해 보면 수상쩍은 부분들을 대부분 감지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 펀드나 펀드 오브 펀드 같은 경우는 모호함과 위험성이 높은 대신에 수탁료를 이중으로 거둬가므로 반드시 피하라고 합니다.

이런 모든 주의 사항들을 상세하게 설명한 후, 저자는 제대로 된 재무 설계사를 구하기 위해 재무 설계사에게 질문해야 할 항목들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금융 사기인 피라미드 사기, 즉, 폰지 사기는 주로 약세장에서 드러나는데, 미국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대 폭락을 한 지난 2008~9년에 발각된 메도프와 스탠포드를 비롯한 쉬랭커, 코스모, 포르테 등의 거액 금융 사기꾼들은 한결같이 화려한 명성과 외형으로 투자자들의 주의를 흐리게 한 뒤 천문학적인 금액을 착복했음을 밝히며, 저자는 화려한 수익률이나 혜택, 명성 등에 현혹되지 말고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철저하게 조사하고 꼼꼼하게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자산을 스스로 안전하게 지켜 나가기를 권장합니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투자 기관과 수탁 기관의 분리는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의무 조항으로 되어 있으므로 일단 안심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와 은행들은 ‘글로벌화’를 핑계로 위험한 미국식 금융 기법과 제도를 무분별적으로 도입하고 있어 무조건 신뢰하기는 힘든 상태이므로 언제나 주의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격언처럼 자신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족 전체를 나락에 떨어뜨릴 위험이 큰 금융 사기꾼에게 걸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금융 지식을 쌓으면서 과도한 이익의 유혹을 피하고 벤치마크와 연동된 안전한 수익률을 목표로 삼는 투자의 원점을 잊지 않는다면 사기꾼의 시야에 노출되는 위험을 최대한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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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어둠/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자본주의 역사로 본 경제학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요타의 어둠 - 2조 엔의 이익에 희생되는 사람들...
MyNewsJapan 지음, JPNews 옮김 / 창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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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앨빈 토플러가 1970년대 초에 일찌감치 예언했던 것처럼 현재 세계 경제의 최첨단에 서있는 것은 IT를 필두로 한 정보 통신과 하이테크 산업이고, 1900년대를 견인해 왔던 컨베이어 벨트로 상징되는 로우 테크의 공장 굴뚝 산업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양화된 구식 산업이 된 지 오래입니다. 20세기 동안 미국 산업을 대표해 온 GM과 포드 등의 거대 자동차 메이커들은 사실상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청산 단계에 오래 전부터 접어들었고, 에디슨 이후 소비자 가전을 상징해 온 GE도 잭 웰치 시절에 이미 백색 가전을 한국이나 중국에 넘기고 원자력 등 새로운 분야로 옮겨간다는 결정을 내렸으며, 컴퓨터의 상징과도 같던 이름인 IBM도 중국 자본에 넘겨진 것이 벌써 한참 된 이야기입니다. TV의 발명국인 미국 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TV들은 모두 한국의 삼성이나 LG, 혹은 일본의 소니 제품들이고, 미국의 TV 메이커는 단 하나도 없는 것이 오늘날의 분명한 현실입니다.
 

특히 미국 공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분야는 명목상으로는 GM과 포드, 크라이슬러 등 과거의 거인들이 여전히 생산을 지속하고는 있지만, 실제 판매 댓수는 일본 자동차들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지가 벌써 수 십년이 지났고, 2007년에는 마침내 토요타가 판매 댓수 기준으로 GM과 포드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라섰습니다.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 메이커가 된 토요타 자동차에 대해서는 국내에도 무려 60권이 넘는 많은 책들이 번역, 출간되어 있으며, 그 책들은 한결같이 토요타의 생산과 관리 기술을 칭송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들을 꼼꼼히 읽어보면 토요타의 성공의 비결은 대부분 원가 절감과 재고 절약, 생산 프로세스의 표준화와 가속화, 경영진과 사원들의 효율성 극대화 등에 주로 치우쳐져 있고, 정작 중요한 요소인 자동차 설계나 생산 과정에서의 획기적인 혁신이나 발명은 의외로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미국보다 인건비나 물류 비용이 결코 낮은 것이 아닌데, 근본적인 제품 자체의 혁신없이 단지 경영과 생산의 효율화만으로 종주국인 미국을 제치고 내수 시장에서는 물론 수출과 해외 생산에서 모두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라선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하는 것이 그동안 토요타식을 칭송하고 추종하는 책들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이었습니다.
 

특히 토요타가 자랑하는 'Just In Time' 방식은 방대한 생산 라인을 운용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지진이나 전쟁, 파업같은 돌발 사태가 발생하면 모든 생산 라인이 일시에 멈춰버릴 수 밖에 없는 현대 기업으로써는 생각하기 힘들만큼 유동성이 극단적으로 제한된 매우 위험한 방식이라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올해 초 미국에서 토요타 자동차의 대규모 리콜 사태가 발생했고, 그 조사와 사건 전개 과정에서 결국 토요타가 가지고 있던 내부의 부정적인 결점들이 차례로 터져나오거나 폭로되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혁신에 기초를 두지 않고 극단적일 정도로 경영과 생산 과정에서의 효율만을 강요했던 이면에는 전근대적인 강압과 폐쇄성이 존재했고, 그것들이 바로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자동차 업계의 이익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다소 과장스럽게 TV 뉴스에서 토요타 사태를 연일 보도하고 있는 와중에 출간된 이 [ 토요타의 어둠 ] 은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토요타의 어둡고 부패한 내부를 속속들이 폭로하고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발간 일자가 올해 3월인 만큼 시류에 영합해 급조된 책이 아니냐 하는 의심도 있겠지만, 사실 이 책은 일본에서는 2007년에 발간되어 상당한 충격을 던져주었던 책인 만큼 오히려 국내 발간이 늦어진 감이 있을 정도입니다. 토요타를 무조건 칭송하는 책들이 무려 60여 권이 넘게 발간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구나 말입니다.
 


이 책은 일본의 독립 인터넷 신문인 MyNewsJapan에서 연재되었던 기사를 단행본으로 묶은 것입니다. 2004년에 설립된 MyNewsJapan은 일체의 광고를 받지 않고 있으며 일부 유료회원제와 대형 포탈 사이트에의 기사 제공으로 운영되는 대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매체인데, 이런 특성을 가진 매체이기에 이런 내용이 기사화되고 단행본화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책의 맨 앞에서 먼저 설명됩니다. 
 

르포라이터인 저자들은 토요타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이후 많은 취재원들로부터 취재를 거절당하고 메이저급 출판사와 잡지사들로부터도 한결같이 기사 기고나 단행본화를 거절당한 일들을 소개하고, 일본 국내 언론들이 토요타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는 아예 싣지 않거나 최대한 작고 기계적인 언급으로만 다루곤 하는 이유가 바로 연간 1,000억 엔(약 1조 2000억원), 계열사까지 합하면 무려 4,500억엔(약 6조원)이 넘는 막대한 광고료를 무기로 신문에서부터 인터넷 매체까지 광범위하게 통제하고, 언론들도 알아서 기는 어두운 커넥션에 있음을 폭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막대한 광고비를 집행하고 연간 2조 2천억엔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토요타 직원들의 생활을 알아보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토요타의 젊은 직원들은 나고야에서도 1시간이나 떨어진 오지에 위치한 토요타시에서 지은 지 50년이 넘는 낡은 기숙사의 다다미 4장 반짜리 방과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합숙을 하며, 퇴근 후에도 주변의 모든 것이 토요타로 둘러싸인 토요타시 내에서 마치 ‘작은 북한’ 같은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거의 일반 사회로부터 격리된 생활을 감수할 만큼 세계 1위의 자동차 메이커답게 월급이나 처우가 업계 최고 수준이냐하면 그게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졸 입사 후 4년 차 ‘전문직’이 잔업 수당을 합쳐 연봉 450만엔 정도이고, 입사 10년 차가 되어도 잔업 수당을 포함해 연봉 640만엔 정도 수준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연봉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우리나라보다 GDP가 4배 이상 높은 일본의 비싼 물가 기준에서 본다면 깜짝 놀랄만큼 낮은 연봉이고, 언론사나 금융기관 연봉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저임금입니다. 토요타의 임금 체계는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지도록 짜여있어 부장급이 되면 연봉 1,600엔 선이 되지만, 나중의 높아지는 연봉으로 젊은 시절 전체를 중소 기업보다도 못한 월급을 받으며 과도한 생산 업무에 시달리는 것을 감내하도록 유도하는 것 자체부터가 이미 비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낮은 월급 체계에 더해 잔업은 엄청나게 많아서 하루 평균 4시간 정도의 과도한 잔업을 해야민 합니다. 무려 월 평균 110시간에 달하는 과도한 잔업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점은 토요타의 사원들의 시간과 능력에 대한 살인적인 쥐어짜기입니다. 
 

토요타는 각 직급별로 강제로 떠맡겨지는 각종 위원회를 비롯한 업무 모임들에서의 역할과 직제 모임, 노동 조합 업무들 뿐만 아니라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창의적 아이디어 제안을 비롯하여 에키덴이라는 전사 차원의 역전 마라톤 대회, 5인제 간이 축구인 풋살 대회, 바비큐 대회 등에 무조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이런 모든 업무 관련 모임들을 업무 외 개인 행동으로 분류해 일절 수당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단체 행사는 어김없이 휴일에 진행되며 당연히 휴일 근무 수당은 나오지 않아서, 결국 매일 3~4시간의 수당없는 업무와 휴일을 몽땅 차지하는 회사 행사들로 인해 사생활이나 휴식은 완전히 포기해야만 하는 극한적인 상황을 모든 사원들에게 강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토요타에서는 법정 국경일조차 인정하지 않는 소위 ‘토요타 달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심야 수당을 주지않기 위해 비상식적인 시간 대로 짜놓은 2교대 근무와 극도로 과도한 과외 업무와 각종 행사로 인해 피폐해진 끝에 결국 30세에 과로사한 우치노 겐이치의 사례를 들어 토요타의 살인적인 사원 쥐어짜기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토요타의 젊은 사원 과로사나 자살 비율은 비상식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토요타는 과도하게 강제된 초과 근무로 인한 과로사가 명백한 우치노씨의 근로 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통상의 퇴직금만을 지불하였습니다. 여기에다가 회사가 엄청난 수익을 거두어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도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사원들의 불만들을 강압적으로 찍어 누르기만 하는 ‘어용 노조’의 협박과 토요타의 입김이 절대적인 노동기준감독서와 나고야 지방 법원도 근로 재해 인정을 거부하여 유족들을 절망시킵니다.
 

이러한 어용 노조와 회사의 횡포에 맞서 새로운 노동 조합인 ‘전토요타 노동 조합’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 또한 회사의 폭력적인 압력으로 인해 엄청난 어려움 속에서 투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토요타의 직원 처우는 21세기 세계 최고 기업의 현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여서, 사내에서 웹 서핑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음은 물론이고, 사적으로 배출한 쓰레기는 퇴근할 때 집으로 가져가라고 하여 회사 전체에 쓰레기통마저 없을 정도이고, 최저 임금에도 한참 못미치는 금액으로 착취하고 있는 외국인 연수생들에게는 화장실 1분 이용에 벌금 15엔이라는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처우마저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토요타 사원들에 대한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처우는 그 이상으로 관련 협력 업체나 하청 업체, 그리고 해외 공장에도 적용되어, 북미 토요타 사장의 여비서 성희롱과 필리핀 공장에서의 스트립쇼 사건이 연이어 터진 데다가, 해외 공장의 노조에 대한 폭압적인 행태로 인해 수 십개 국에서 ‘반 토요타’ 시위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문제가 되고있는 토요타 자동차의 결함과 관련해서도 토요타 자동차의 리콜 현황을 분석한 결과 리콜율이 무려 99.9%에 달해 토요타차의 성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폭로합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불량률과 리콜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담당 관청인 국토교통성은 이러한 사실을 꽁꽁 숨겨놓고 일절 발표하지 않아, 일본의 가장 큰 문제인 관청과 기업의 과도한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결국 해외에서의 치명적인 대규모 리콜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음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위에서 열거한 내용들을 쭉 살펴보면 자동차 생산 세계 1위라는 토요타의 화려함이 결국은 살인적인 수준의 노동집약적 착취 구조 위에 쌓여진 것이고, 그 실상이 어용 노조의 압력과 관청의 비호, 언론 장악을 통해 철저하게 은폐되고 있었을 뿐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살인적인 노동 시간과 이에 따른 수많은 사원들의 사망이나 퇴직, 사원들의 처우는 일절 보살피지 않고 오직 회사측의 입장에 서서 위압적으로 통제하기만 하는 어용 노조, 정경 유착으로 인한 관청과 정치권의 비호, 막대한 광고비를 통한 언론 장악 등의 행태들이 너무나 낯익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와 똑같은 행태를 판박이처럼 보이며 세계 1위를 되뇌이는 대기업이 우리나라에도 있죠. 바로 삼성입니다.
 

굳이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와 < 삼성을 생각한다 >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주변의 삼성 직원들이 1년 내내 거의 휴일없이 새벽부터 한밤 중까지 강도높게 일하다가 결국 건강을 해쳐 퇴직하곤 하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단순히 이 책을 토요타라는 한 회사의 기형적인 행태를 폭로한 것만이 아니라 기술 혁신없이 오직 극도의 노동력 착취 토대 위에 수익만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비인간적인 마인드를 지닌 거대 생산 기업의 공통된 전근대적 운영 형태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의 신호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이 책의 내용들은 < MBC PC 수첩 >을 통해서도 간추려져 방송되었다고 합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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